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공식 선언한 이후, 언택트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이제는 식료품에서부터 고가의 명품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행위가 전혀 낯설지 않다. 미술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 온라인 미술시장 거래액은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한 14조 6천억 원을 기록했다. 미술시장에서 온라인 점유율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팬데믹 발생 직후, 해외 아트페어들은 행사 취소와 연기를 반복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2020년도 미술시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65개 해외 아트페어 중 61%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2020년 3월 개최 예정이었던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은 몇 차례 연기를 발표하다 결국 오프라인 아트페어를 취소하고 온라인 뷰잉룸(Online Viewing Room, OVR)을 열었다. 2020년 아트페어 시장은 상하이 아트페어(SHAF) 정도를 제외하곤 정상화되지 못했고, 2차 대유행의 시작으로 늦은 회복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해외 아트페어는 온라인 뷰잉룸(OVR)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팬데믹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외 주요 아트페어인 아트바젤(Art Basel), 프리즈(Frieze), 피악(FIAC) 등은 발 빠르게 온라인 뷰잉룸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프라인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경우에도 온라인 뷰잉룸을 함께 활용했다. 온라인 환경은 제2의 전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컬렉터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 뷰잉룸은 뉴스레터 등을 통한 알람 기능과 쉬운 접속 환경을 제공한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 작품 설치 이미지, 질의응답 기능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며 비교적 손쉬운 작품 판매 도구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아트페어들은 온라인 뷰잉룸과 같은 서비스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코로나 이후 해외 온라인 미술시장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020년 온라인 미술시장 거래액은 전년 대비 2배 증가하면서 미술시장에서의 온라인 점유율 또한 2019년 9%에서 2020년 25%로 성장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는 미술품 구매자의 44%만이 온라인 채널로 미술품을 구매했다면, 2020년에는 67%가 온라인을 이용했다. 특히 컬렉팅 기간이 3년 이하인 신규 구매자의 경우 82%가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온라인 미술시장의 성장은 사실 아트페어보다는 경매시장의 발 빠른 대응에 힘입은 결과로 보인다.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와 같은 경매사들은 코로나19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미술시장의 여러 주체 중 가장 타격을 덜 입었다. 코로나 이후 경매사들은 시즌별로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공개 경매 대신 여러 차례 온라인 경매를 여는 방식을 사용했고, 전 세계에 동시에 송출되는 생방송 경매(live streaming)를 선보이면서 고가의 작품 낙찰에 성공했다. 특히 MZ세대를 신규 고객으로 유치하는 데 성과를 보였다. NFT와 같은 디지털 미술품 등 경매 시장에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코로나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주요 아트페어가 경매사들처럼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온라인 채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팬데믹이 종료되어도 온라인이라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뿐더러 젊은 세대로 갈수록 온라인 플랫폼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 뷰잉룸에서 제공하는 형식은 이전에도 미술시장에서 사용하던 방법 중 하나다. 갤러리의 딜러가 컬렉터에게 이메일로 PDF 파일 형태의 작품 정보를 보내고 작품 구매를 결정하게 하는 방식이 온라인 뷰잉룸으로 진화한 것이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온라인 뷰잉룸은 갤러리 딜러인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가 2017년 선보인 것으로, 제한된 시간 동안 한 명의 작가와 작품만을 볼 수 있는 형태였다.
다음으로는 2018년 6월 가고시안(Gagosian)이 아트바젤이 개최된 열흘 동안 온라인 뷰잉룸을 개설한 사례가 있다. 가고시안은 작품 설명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직원과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마치 아트페어에 방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오프라인 아트페어 환경을 재현했다.
팬데믹 이후에는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거의 모든 갤러리가 온라인 뷰잉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갤러리들은 보다 많은 자본을 투자하여 실제 전시 공간처럼 뷰잉룸을 꾸미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에는 시스템 문제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사용자경험(UX), 다양한 사진과 영상, 흥미로운 글 등의 콘텐츠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특히 실제로 작품 공간을 걸어 다니며 체험하는 것 같은 환경을 만들거나, 작품의 설치 감도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기능 등 사용 환경 개선 과제가 남아있다. 온라인 뷰잉룸 시스템을 구축하기 힘든 중소형 갤러리의 경우에는 아트시(Artsy), 아트넷(Artnet), 퍼스트딥(1stDibs), 소더비 갤러리 네트워크(Sotheby’s Gallery Network) 같은 외부 플랫폼을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아트바젤은 온라인 뷰잉룸을 가장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아트페어 중 하나다. 아트바젤은 아트바젤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플랫폼을 개설하고, 예술 작품을 온라인으로 전시했다. 스위스 아트바젤은 매년 6월 개최되는데, 작년에는 9월로 연기되어 개최됐다. 당시 미국이 스위스 여행 자제 권고를 내려 갤러리 직원이 참여하지 못해 부스에 비치된 태블릿 PC로 갤러리 직원과 화상통화를 연결하기도 했다. 오프라인 아트페어와 함께 온라인 뷰잉룸 <OVR : Portals>를 개최하였으며, 전 세계 29개국 94개의 갤러리가 참가했다.
아트바젤의 온라인 뷰잉룸은 아트바젤 웹사이트와 아트바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접속할 수 있다. 개별적인 관심사에 따라 검색 필터를 이용할 수 있고, 작품 제작 연도와 지역, 소재, 가격대 등도 설정이 가능하다. 작품을 선택하면 룸에서 직접 감상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는데, 갤러리 배경과 함께 작품이 실제 비율로 보인다. 작품의 세부 이미지를 확대하여 클로즈업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작품 세부 사항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즐겨찾기에 추가한 갤러리나 미술 작품을 SNS로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작년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은 팬데믹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팝업 프로젝트로, No.9 Cork Street라고 명명한 공간을 2021년 10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운영하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개최 여부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런던에 지점을 열지 않은 갤러리들에 공간을 대여하는 방식을 활용해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또 프리즈 런던은 언월딩(Unworlding)이라는 새로운 섹터를 선보인 바 있다. 이는 중간 규모의 신생 갤러리 열 곳을 소개한 것으로, 팬데믹 영향으로 인해 줄어든 참여 갤러리 수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아트페어가 시도하는 다양한 모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피악(FIAC)은 2020년 행사를 취소하고 2021년 3월 행사를 온라인으로 대체한 뒤, 10월에 그랑 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에서 오프라인 페어를 개최했다.
물론 미술 작품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반드시 실제 작품을 보고 구매해야 한다는 견해가 아직 존재한다. 영국의 보험회사 히스콕스(Hiscox)가 미술시장 분석기업 아트택틱(ArtTactic)과 2013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밀레니얼 구매자의 46%는 여전히 온라인 미술품 구매에 회의적이라고 답했다.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는 작품의 실물을 확인할 수 없어서(75%), 작품 상태가 불안해서(67%), 작품 품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59%), 위조품 구매가 불안해서(51%) 등이 있었다. 미술 전문가와 대면 상담을 할 수 있는 경우, 구매 의향이 높아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아트페어의 온라인 뷰잉룸 활용 사례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뷰잉룸은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전시를 쉽게 체험하게 만들고, 관람객의 작품 구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작품 이미지와 설명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었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실제 전시 공간을 온라인에 구현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컬렉터의 성향을 담은 데이터를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산업 또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온라인 뷰잉룸을 단순한 세일즈 채널로 운영하기보다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미술품 구매 경험이 학습됨에 따라 온라인 뷰잉룸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