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창의성과 상상력을 보존하고 계발하기 위해 설립된 프라다 재단의 어린이 교육 프로젝트이다.
▪ 어린이들은 유연하게 설계된 공간에서 예술, 건축,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상호작용하며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워크숍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어린이들이 놀이와 탐구를 통해 스스로 배우고 발견하도록 돕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이다. 문제는 성장한 후에 어떻게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느냐이다.
Every child is an artist.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we grow up.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어린아이를 상상해 보자.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도를 표현한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유가 떠오른다. 피카소도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가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재성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보존하고 계발해 온 창의성과 예술성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무한한 창의성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제2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와 역사가 수도 로마(Roma)에 집중되어 있다면,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와 예술, 그리고 패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프라다, 보테가베네타, 베르사체 등의 럭셔리 브랜드의 본사가 있으며 <모나리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주 활동 무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밀라노는 아직도 유구한 패션, 문화 그리고 예술의 중심지이다.

프라다, 패션을 넘어 문화로
밀라노에 본사를 둔 럭셔리 브랜드 프라다(Prada)는 많은 사람에게 멋진 패션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패션 사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문화기관인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이다. 프라다 재단은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는 1993년에 이 재단을 설립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데 예술과 학문이 꼭 필요한 도구라고 믿었다. 이들은 패션처럼 빠르게 변하는 산업 속에서도 단순히 유행을 쫓기보다는 예술과 문화를 필두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는 프라다 재단의 활동을 통해 인간 문화를 그 모든 다양성과 복잡성 속에서 탐구하고자 했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연구가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여러 방식으로 고민해 왔다. 이 질문에 대해 점점 더 시의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내가 재단을 통해 스스로에게 설정한 가장 근본적인 목표이다.
Right from the start, through the Fondazione’s activities I aspired to investigate human culture in all its variety and complexity. Over these thirty years, I have wondered in different ways how artistic and intellectual research can impact people’s lives. Searching for increasingly topical answers to this question is the fundamental objective I have set myself with the foundation.
–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
그 결과 프라다 재단은 미술 전시뿐 아니라 건축, 철학, 영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을 확장해 왔다. 밀라노, 베니스, 상하이, 도쿄 등에 전시 공간을 두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전시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경과학 연구까지 영역을 넓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전 중이다. 이처럼 프라다 재단은 문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라는 믿음을 근간으로 한다. 패션을 넘어선 이들의 철학은 프라다 재단의 모든 활동에 담겨 있다.


마음의 지도가 펼쳐지는 공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Accademia dei Bambini)는 프라다 재단이 2015년에 기획해 지금까지 운영 중인 어린이 대상의 교육 프로젝트로서 “어린이를 위한 학교”라는 뜻이다. 신경소아과 전문의 지안네타 오틸리아 라티스(Giannetta Ottilia Latis)가 이론적 및 운영적 기반을 마련하여 설립한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단순한 체험 공간을 넘어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기주도적 학습을 촉진하는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아이들이 예술,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워크숍이 진행되는 공간에서부터 이목을 사로잡는다. 워크숍 공간은 건축가이자 교수인 세드릭 리베르(Cédric Libert)와 엘리아스 게논(Elias Guenon)의 지도하에 프랑스 국립 베르사유 고등 건축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d & architecture de Versailles) 학생들이 설계했다. 기획자들과 건축가들은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유연성(flexibility)”에 주목했다. 고정된 프로그램이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공간의 특성상, 프로그램에 맞춰 새로운 구성을 취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과 워크숍 구성과 특성에 맞춰 공간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적 특징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 교육의 핵심은 전통적인 교육 형태를 탈피한 것에 있다. 이들의 교육적 접근 방식은 “몬테소리 교육법”과 그 궤를 같이한다. 유연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맹점이다. 따라서 각 워크숍은 특정한 예술 이론이나 전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자유로운 놀이와 창의적 표현을 통해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지향점은 더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몬테소리 교육법과 차별화된다. 그러나 단순히 예술 교육에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워크숍의 진행자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선발된다. 건축가, 예술가, 과학자, 음악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마에스트리(Maestri)”로 참여하여 어린이들과 함께 워크숍에 뛰어든다. 마에스트리는 단순 지식 전달을 넘어 어린이들과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상호작용하며, 어린이들의 잠재성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진행한다.
각 워크숍은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배움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감각하고, 사고하고, 탐구하고, 발견하는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와 교수자의 상호 활동을 늘려가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지향점은 이러한 점을 보완하려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빛깔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리와의 워크숍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모든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질문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도록 초대한다. 이곳에서는 예술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과 탐구심을 키우는 언어임을 매 순간 경험하게 된다.
빛의 비밀을 탐구하는 “La Luce(빛)” 워크숍에서는 건축가 알레산드로 페드레티(Alessandro Pedretti)의 안내 아래, 어린이들이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며 빛의 구조를 만들었다. 빛은 어디에나 있으며 예술가, 과학자, 건축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와 표현 대상을 탐색해 왔다. 어린이들은 자연광에서부터 인공조명까지 빛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빛을 활용해 그림자를 만드는 활동을 통해 빛과 친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뒤이어 투명한 막과 색유리, 반사면을 활용해 어린이들이 창의적으로 빛의 조형물을 만든다. 무한한 창의성에서 시작한 어린이들의 조형물은 아카데미의 공간을 마법 같은 빛의 정원으로 변모시킨다. 빛은 단순한 광원이 아닌, 움직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다시 태어난다.
빛을 활용하지만 La Luce와는 다른 워크숍도 있다. “Sogni(꿈)” 워크숍에서는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인 일라리아 투르바(Ilaria Turba)가 아이들을 꿈결 같은 세계로 이끈다. 아이들은 프로젝터 앞에서 간단한 동작을 취하거나 사물의 위치를 옮겨가며 공간을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빛과 그림자를 이해한다.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하여 만든 다채로운 조각들과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필름(diapositive)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 뒤 캐러셀 프로젝터의 빛을 통해 공간에 자신의 창조물을 투사한다. 현실의 작은 조각이 모여 꿈이 만들어지듯, 아이들이 만든 작은 조각들이 모여 형성된 다채로운 색채와 그림자의 만화경 속에서 어린이들은 손짓 하나, 발걸음 하나에도 공간이 변화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경험한다. 이 워크숍은 어린이들의 상상이 어떻게 물질로 구현되고 어떻게 다시 사라지는지를 부드럽게 보여준다.
“Facciamo finta che…(~인 척해 보자)” 프로젝트에서는 Parasite 2.0 스튜디오가 제안한 독창적 플레이그라운드가 펼쳐진다. Parasite 2.0 스튜디오의 스테파노 콜롬보(Stefano Colombo), 유제니오 코센티노(Eugenio Cosentino), 루카 마룰로(Luca Marullo)는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 기간에 활용할 실내 건축물을 주로 설계하는 건축가이다. 이 워크숍에서 아이들은 하나의 부족(tribe)인 것처럼 역할놀이를 수행한다. 부드럽고 다채로운 모듈을 옮기고 조립하며 마치 자신의 몸과 환경을 함께 변형시키듯 새로운 건축적 형상들을 창조해 낸다. 또한 함께 참여하는 다른 아이들과 협업하고 건축 자재를 분배하며 협동심도 기를 수 있다. 놀이와 건축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이 실험은 어린이들에게 물질의 유연함과 구조의 가능성을 몸소 체득하게 해준다.
그리고 “별빛이 반짝이던 어느 겨울밤(Sotto il lume delle stelle)” 워크숍에서는 싱어송라이터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가 이탈리아 작가 리나 슈바르츠(Lina Schwarz)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들을 들려준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기획자 지안네타 오틸리아 라티스를 기리기 위해 기획된 이 워크숍에서 나탈리 머천트는 손수 각색한 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포크 음악 앙상블인 도모 에미그란테스(Domo Emigrantes)가 함께한 이 워크숍에서 어린이들은 가사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탈리 머천트와 연주자들, 그리고 악기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음악적 경험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음악과 시, 그리고 별빛이 어우러진 이 시간은 어린이들에게 감성의 언어가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알려주는 따뜻한 순간이 된다.
또한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단지 어린이의 체험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각 프로그램의 흔적은 단편적인 이벤트로 소비되지 않고 교육 철학이 지속되고 재현될 수 있는 구조로 정리되고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워크숍의 장면들은 <MOMENTI> 비디오 아카이브를 통해 영상으로 기록되며 아이들이 느끼고 만들어낸 순간들을 정리한 <Piccoli Maestri> 시리즈는 2020년 이후의 활동을 중심으로 아카이빙되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Arte Postale>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의 창작 결과물을 엽서 형식으로 전시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되었다. 이처럼 기록과 전시는 교육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록물은 참여한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만들어낸 경험을 다시 만나는 통로가 되고, 외부의 교육자와 기획자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주는 사례로 기능한다. 결국 이 실험실은 단지 지금 이 순간의 상상력을 북돋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지까지 고민하는 셈이다.


더 많은 상상, 더 반짝이는 내일
아이와 함께 밀라노를 방문해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워크숍을 경험시켜 주고 싶다면 주말을 고려해 보자.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매주 주말마다 문을 연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워크숍과 창의적 활동을 제공한다. 참가를 원하는 어린이는 프라다 재단 웹사이트 내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 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하며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제공된다. 참가자는 주로 4세부터 10세 사이의 어린이들로 구성되며 연령에 따라 그룹이 나뉘어 운영된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더 많은 어린이에게 경험의 장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23년부터 밀라노 내 유치원과 초등학교로 프로그램 참여의 기회를 더욱 넓혔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어린이가 혁신적인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고 입소문을 타고 학교 단위의 프로그램 신청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맞춰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 단체를 위한 특별 워크숍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프라다 재단은 이러한 확장 흐름을 계속 이어가며 2025년에도 주말 테마 워크숍과 수요일 학교 단체 워크숍을 통해 더욱 많은 어린이에게 예술을 통한 탐구와 표현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넘어 예술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표본과 같다. 이곳에서의 워크숍은 창의성이 있는 아이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감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이는 모든 아이가 예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화적 권리(right to culture)의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감각하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경험은 일부 아이들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공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프라다 재단은 이러한 철학을 사적 후원이나 일회성 기획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기 위해 아카이빙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 학교와의 연계를 확대해 왔다. 이는 창의적 교육을 넘어 예술을 기반으로 한 포용적 문화정책이 어떻게 설계되고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다시, 상상의 힘을 믿는다는 것
아이들은 세계를 배워가는 존재이자 세계를 새롭게 그려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의 실험실은 그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도, 결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없는 이곳에서는 모든 감각이 열려 있고 모든 가능성이 허용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 그 유연함 속에서 아이들은 생각하고, 만들고, 질문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간다.
아이들이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느냐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놀이가 곧 배움이고 감각이 사유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 일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아 데이 밤비니는 단지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 이상으로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가 잊고 지나친 감각과 태도,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아이들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 이곳에서의 작은 경험이 언젠가 누군가의 창의성을 지탱해 줄 기억이 되길. 그렇게 상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