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39일간의 여정 끝에 막을 내렸다. 코로나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됐음에도 8만 5천여 명의 참여자가 방문했고, 감염 사례 없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비엔날레에는 69명(팀)의 미술가와 30여 명의 이론가가 참여했으며,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가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다. 인류 공동체의 삶의 양상을 탐구하고, 공동의 생존을 위한 예술적 실천을 살피는 시간들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다소 난해하다는 평도 있지만, 다변화하는 사회상을 미술이라는 틀로 바라보며 광주라는 지역을 역사적으로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전시장에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들이 제공됐다. 광주비엔날레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전시관별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의 목소리가 담긴 다양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해당 영상들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계속 제공되고 있어 평소보다 짧았던 전시 기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출품작에 대한 설명이 수록된 전시 도록도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데,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어 유용하다. 오디오 가이드 어플리케이션인 큐피커(Qpicker)를 통해서도 작품과 작가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광주극장,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 총 4곳의 전시장에서 열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은 광주비엔날레가 출범한 1995년부터 핵심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 곳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전시관 내 세분된 5개의 대형 갤러리를 통해 ‘함께 떠오르기(갤러리 1)’, ‘산, 들, 강과의 동류의식(갤러리 2)’, ‘욕망 어린 신체, 분과적 경계 넘어(갤러리 3)’, ‘돌연변이에 관해(갤러리 4)’, ‘행동하는 모계문화(갤러리 5)’를 주제로 다뤘다. 특기할 만한 점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갤러리 1을 비엔날레 최초로 무료 개방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연대를 통한 치유’가 중요한 키워드인 만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연결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서구 중심의 근대화나 이분법적인 사고 구조에서 벗어나 다중 지성을 갖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동안 주변부로만 인식됐던 토착 민족의 고유한 지성을 함께 살펴보자는 취지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서구 중심, 부계 사회 중심이었다고 한다면, 두 명의 여성 총감독은 비서구와 주변, 모계 사회와 여성, 공동체와 퀴어의 목소리를 보여 주는 작품을 선택한다.
갤러리 1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오우티 피에스키(Outi Pieski)의 작품 <보빗Ⅱ/함께 떠오르기Ⅱ>가 그 예다. 멀리서 보면 딱딱한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손으로 짠 직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토착민들이 사는 지역들은 근대화를 거치며 점차 신앙이 기독교화되고, 의복도 획일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미족의 문화적 유산으로서 공동체 의복을 표현하고, 자기 결정권과 연대감을 시사한다.
오우티 피에스키의 작품에서처럼 공예(craft)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 특징이다. 공예는 그동안 여성만의 것으로 치부되거나 미술의 범주 내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폄훼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비엔날레의 참여 작가들은 바느질이나 옷 만들기 같은 기법을 사용한 공예 작품들을 다수 선보이면서 여성 주변부의 목소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파시타 아바드(Pacita Abad)의 <100년의 자유: 바타네스에서 홀로까지>는 염색된 면직물에 바느질한 대형 벽걸이 작품으로, 오랜 시간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필리핀의 독립을 기리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그는 단추, 스팽글, 프린트, 직물, 조개, 비즈 등 일상에서 발견한 여러 재료를 서사적으로 엮으며 공동체의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관한 언급에 있다. ‘산, 들, 강과의 동류의식’이라는 갤러리 2의 전시 주제처럼, ‘생태’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인간과 자연, 생태와 환경 등은 광주비엔날레뿐 아니라 국제 비엔날레에서 최근 4~5년 사이에 자주 논의되던 담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지구의 조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인류세 개념을 중심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한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경향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맞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샤머니즘과 토착신앙도 이번 비엔날레를 구성하는 주요 축 중 하나이다. 민중미술의 선구자인 민정기는 신작 <무등산 가단문학 정자도>(2020)를 통해 무등산 근처에 자리 잡은 정자의 존재를 추적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 혼란스러운 상황과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장소로 기능했던 곳이다. 민정기는 <무등산 천제단도>(2020)에서도 천제단 부근의 사원을 샤머니즘 전통의 공간을 넘어 한국인 영혼의 기원으로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를 포용하는 동시에 무등산의 긴 영적 역사를 포착한다.
이외에도 한국의 샤머니즘 유물과 주요 민화를 소장하고 있는 샤머니즘박물관과 가회민화박물관의 의례용 부적, 제의적 회화 같은 소장품들을 전시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원시적 샤머니즘의 에너지를 발견하려 한다. 이 밖에도 안젤로 플레사스(Angelo Plessas)는 무당 도담과 협력해 초기 형태의 ‘테크노-샤머니즘’을 인터넷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와이파이 네트워크와 전기 통신이 수반하는 전자기파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하는 제의 의상인 ‘누비 만다라’를 입고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샤머니즘을 사이버 공간으로 매개하려는 그의 시도가 흥미롭다.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 양림산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도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양림산은 일제 강점기 항일 의병 투쟁을 비롯해 군사적·지정학적 거점으로서 역사의 복합적 층위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곳이며,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과거 풍장터로 사용되던 자리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제주 4·3 사건에서 비롯한 감각적 기억, 민주화 시위, 다원적 신화론 등을 주제로 삼는다. 가령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는 ‘후각’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감정을 연결하고자 한다. 그는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제주 지역의 폭력의 역사와 영적 유산에 대해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감독 좌성환의 도움으로 제주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트라우마의 연대기를 발견해 내고, ‘돌’에 ‘냄새’를 새겨 넣는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광주라는 지리적 특성에 주목한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광주 정신을 시각 매체로 승화하는 프로젝트인 ‘광주비엔날레 커미션(GB 커미션)’을 통해 선보인 구 국군광주병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문화재단 투어는 ‘기억’에 대해 연대할 수 있는 공감과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창립 이래 5·18 민주화운동의 문화적 가치를 이어왔고, 2018년부터 시작된 GB 커미션은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김성환, 이불, 마이크 넬슨, 치하루 시오타, 호 추 니엔 등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광주 정신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마이크 넬슨은 구 국군광주병원을 처음 방문한 날 경첩, 문, 전등 스위치, 세면대 등과 같은 병원 건물의 자재들을 통해 한국사를 대면한다. 작가가 보기에 이러한 물건들은 5·18민주화운동과 국가에 관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려주며, ‘증인’으로 기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거울의 울림>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의 증인을 ‘거울’로 상징화하고, 거울을 병원에서 떼어내 다시 전시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새로운 시야를 제시한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이처럼 인류 공동체의 삶의 방식과 연대를 제시하는 주제전을 비롯해 광주 정신을 다층적으로 맥락화한 GB 커미션 특별전으로 광주만의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비엔날레는 개최지의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특징을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나타내고, 지역 주민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을 이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광주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그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국제성이 잘 드러났다. 또한 비엔날레는 동시대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전시 주제로 삼고, 정체성의 문제와 소외된 공동체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낸다. 그동안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각각의 공동체는 모계문화나 퀴어 등 새롭게 떠오르는 공동체와 결합함으로써 연대하고, 연대를 통해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