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정보 전쟁의 시대는 끝났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정보는 누구든 어디서나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무엇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찾아낸 정보가 양질의 자료인지 아닌지, 심지어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단 점이다.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고르고 분별할 줄 아는, 일종의 정제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사람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정보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세계 속에서 무분별하게 수용된, 질적으로 저하된 정보가 재생산되기도 한다. 이는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별되지 않는 디지털적 주체의 특성에 따라 불가피한 결과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현시대에도 도서관이 주목받는 것은 이러한 정제된 정보에 대한 수요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을 채운 수많은 정보들은 인터넷에 비해 더 다듬어진 형태다. 쉽고 편리하지만 정확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디지털 세계의 정보들과 달리, 도서관의 자료들은 여러 차례의 정제 과정을 거친다. 방대한 자료의 양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양질의 정보를 찾을 수 있기에 디지털 세계에서 정보에 대한 보완책으로 기능한다.

 

도서관은 단순히 정보만 얻는 공간이 아니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회가 제공하는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도서관의 이념이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비디오 아티스트 故 백남준이 주장했듯 예술은 사유재산이 아니다.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으로서 공유 가능해야 하며, 공유함으로써 예술의 가치가 시민들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선순환적 구조는 도서관의 이념적 토대와 맞닿아 있다. 도서관 또한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은 (예비) 시민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통해 기능이 확장될 수 있다.

 

도서관과 예술이 공유하는 동일한 토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게 예술은 그저 하나의 분류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이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 모두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도서관과 예술을 결합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우리는 도서관 안에서 예술이 확장되고, 공공재로서의 예술이 실현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또한 도서관은 길게 늘어선 책장 넘어 다양한 문화예술을 채운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도서관이 문화와 감각의 옷을 입는다면: F1963 도서관

부산의 F1963 미술관은 1963년부터 2008년까지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그러나 2016년 재건축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F1963은 부천의 아트벙커B39와 더불어 문화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곳은 전시관, 공연장, 카페, 레스토랑, 정원 등의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되었다. 2016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지만, 도서관은 그로부터 3년 뒤인 2019년에 들어섰다. 문화 재생 공간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는 F1963의 도서관은 도심 속 쉼의 공간을 추구한다.

 

부산 유일의 예술 전문 도서관인 F1963의 도서관에는 미술/사진/건축/음악 장르의 서적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내 유명 미술관의 전시 도록도 있지만, 13,000여 권의 소장 도서 가운데 80% 이상이 외국 출판물로, 다른 도서관에 비해 더욱 많은 희귀 서적과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내 도서관답게 F1963 도서관은 자료를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청각 공간과 소규모 강연을 위한 강의실, 학술회의가 가능한 세미나실도 보유하고 있다. 시민들 간 상호 소통을 지향할 뿐 아니라, 도서관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강연 등도 선보인다.

 

이렇듯 F1963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으며, 전문성 있는 예술 관련 서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복합문화공간이 설립된 이후에 생겼고, F1963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단 점에서 도서관 자체로서의 공공성이 옅은 편임에도 평소 접근하기 힘든 희귀 서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참고로 도서관은 현재 유료 회원제로 운영 중이다. 도서관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F1963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F1963 도서관 © 부산 F1963
F1963 도서관의 내부 모습 © 부산 F1963

우리 도서관에 예술가가 산다: 의정부미술도서관

예전의 미술 전문 도서관은 일반적으로 미술과 관련한 자료를 보관하고 공유하는 미술 전용 자료실에 머물렀다. 그러나 국내 최초 미술전문 공공도서관이란 타이틀로 2019년 11월에 문을 연 곳이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미술관과 공공도서관이라는 상충적인 정체성을 융합했다. 미술 전문 도서관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국내 주요 미술관의 도록과 다른 기관에서 대출하기 힘든 미술 관련 원서를 대량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서의 목차까지 검색이 가능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도서관을 찾는 일반 이용자를 배려한다.

 

실제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을 모은 호크니 빅 북(Hockney Bigger Book)을 소장하고 있으며, 다양한 작품들의 고화질 컬러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신사실파의 동인인 故 백영수 화백을 모티브로 설립된 미술관인 만큼, 신사실파 작가들의 작품의 수록된 자료들을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희귀 자료를 소장하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공유한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최유진 관장은 “보고 싶어도 비닐에 싸여 있어 볼 수 없었거나, 접근하기 어려웠던 미술 도서를 계속해서 같이 읽고 싶었다”고 말하며 모두를 위한 예술도서관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러한 도서관의 설립 취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 아시아 미술 서적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이 2,000여 권의 소장 자료를 기증한 것은 모두를 위한 예술 도서관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가치는 희귀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0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력을 보유한 만큼, 도서관의 건축적 가치 또한 놓치지 않았다. 전면을 유리창으로 구성해 광장에서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구현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을 원형 계단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도서관의 폐쇄적 이미지를 탈피했다.

 

1층 아트 그라운드(Art Ground)는 광장을 떠올리게 하는 개방감 있는 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자유롭게 책을 읽고 소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규모 미팅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다. 2층 제너럴 그라운드(General Ground)에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한 어린이/유아 열람실과 종합자료실이 있다. 3층의 멀티 그라운드(Multi Ground)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 때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고,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미술과 관련된 전시, 강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또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일반 이용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만을 운영하지 않는다. 신진 작가들을 선정해 작업실을 대여해주는 오픈 스튜디오 또한 진행 중이다. 예술가와 시민이 같은 공간 안에서 책을 읽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예술가가 우리 사회에 가까이 있음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처럼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전문 미술 서적을 소장하고, 그것을 시민에게 공유할 뿐 아니라 도서관 자체를 “책이 있는 광장”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보를 제공하는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의정부 미술 도서관의 전경 © 의정부미술도서관

읽는 도서관? 듣는 도서관!

예술 특화 도서관에는 미술 전문 도서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21년 6월에 개관한 의정부 음악 도서관은 타 도서관에 비해 예술 관련 서적 비중이 높다. 예술 전반에 관련된 전문 서적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음악에 특화되어 있다. 6,125점의 CD와 1,111점의 LP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문적인 각종 음악 서적의 대출이 가능하다.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음악 서적의 장르적 특수성을 고려해 새로운 분류법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A부터 G까지는 장르로 구별하고, M부터는 악보로 구성한 뒤 세부적인 기준으로 음악 관련 자료를 분류하는 식이다. 또한 <사서 컬렉션>을 운영해 책의 분위기에 걸맞은 음악을 함께 전시하기도 한다. 책과 음악의 성공적인 결합 사례다.

 

이곳 역시 위의 두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자료를 갖춘 도서관일 뿐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도 기능한다. 건축 초기부터 공연장과 음악 감상이 가능한 공간을 설계하고 실제로 도서관 내에 공연장을 마련했다. 음악 전문 서적을 보관하고 대여할 뿐만 아니라 음악도 즐길 수 있다.

 

공간 활용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1층 북스테이지에 있는 오픈 스테이지에서는 독서할 수도 있고 연주회를 감상할 수도 있다. M층에는 입문자와 전문 연주자의 실력 차이를 고려해 배치된 악보와 컬렉션이 있다. 1층과 M층은 의정부미술도서관과 유사하게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두 층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천장을 허물었다. 개방적인 광장의 느낌을 구현했다. 3층에 위치한 오디오룸, 뮤직홀, 스튜디오 A, B 룸은 다양한 공간 활용을 통해 시민들이 음악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뮤직홀은 공연장이지만, 공연의 여부와 무관하게 상시 오픈되어 있어 시민들이 해당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음악만을 듣고 싶다면 오디오룸에서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A, B룸을 통해 음악을 직접 연주하거나 만들 수도 있다. 참고로 스튜디오 A룸은 컴퓨터 음악 작업을 체험할 수 있으며, 스튜디오 B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스튜디오 공간은 예약 없이 당일 이용이 가능해 완전히 열린 공간의 성격을 띤다. 3층에 위치한 스페셜룸에서 들리는 음악이 아래층의 자료실과 열람실에 들리지 않도록 설계해, 도서관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유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전문적인 공연 기획도 진행한다. 지금까지 오보이스트 윤성영의 공연과 지역 시민들이 직접 연주하는 버스킹 STAGE280 등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2021년 7~8월에는 공연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내부적인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9월부터 북 콘서트를 재개했으며, 11월에는 클래식 장르 연주자를 섭외해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 관련 규제가 완화된 이후부터는 더욱더 활발한 연주회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전문적인 음악 서적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음악을 향유하고, 시민 연주자를 초청해 공연을 기획하는 등 상호교류의 장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1층에 아이들을 위한 아동도서 존을 별도로 만들어 아이들이 어른과 또래 모두와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들어 교육적 기관으로서 도서관의 기능을 실현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공간 속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도서관은 책 읽는 조용한 공간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상호 소통은 가급적 절제해야 하며 혼자 고요히 책을 읽는 공간으로의 고정관념이 강했다. 그러나 상호 교류와 소통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지금 시대에 도서관도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기에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서관의 열린 변화에 예술을 결합한 결과가 바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예술 전문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기획하고, 소장하며, 공유한다. 예술 관련 전문 서적뿐 아니라 예술적인 공간과 다양한 체험을 누리게 된 시민은 도서관의 역할이 보다 확장되길 바라고, 그것은 도서관에 실제로 반영된다. 이러한 선순환적 구조는 도서관이 어떻게 현시대에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민들에게 예술 서적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에게는 작업실을 대여해 주는 예술 도서관의 모습은 내일의 도서관이 걸어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