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일부가 된 웹툰
반복되는 아침 출근길,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의 눈은 스마트폰을 향한다. 언뜻 보이는 화면 위에는 재밌는 영상, 오늘의 뉴스 등 가지각색의 콘텐츠가 펼쳐져 있다. 그중 스마트폰 속 작은 그림과 말풍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빠른 전개 속도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웹툰(Webtoon)의 독자들이다. 출퇴근길을 이용해 웹툰을 감상하는 이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을 만큼, 웹툰은 우리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웹툰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었다. 물성이 있는 책이 아닌 디지털 기기로 만화를 보는 일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만화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는 것이 정석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루었다. 다음 단행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설렘도 만만치 않은 재미였다. 그에 반해 웹툰은 스크롤을 내리는 순간, 순식간에 장면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매체의 변화를 신기해하는 동시에 낯설어했다. 웹툰의 그림체나 단편적인 스토리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이들은 다시 만화책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대중은 만화책이 아닌 웹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일상에 자리할 만큼 익숙해진 엔터테인먼트에는 강력한 힘이 부여된다.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콘텐츠야말로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웹툰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웹툰 서비스가 본격화된 지 18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웹툰은 온라인을 벗어나 드라마・영화・글로벌 시장 등 다양한 영역으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의 웹툰 시장이 이토록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웹툰, 상상 그 너머를 공략하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대를 기록했다.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K-웹툰 시장이 이토록 거대하게 성장하게 된 데는 스마트폰 대중화의 영향이 컸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웹툰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다른 콘텐츠들과 견주어 볼 때 접근성 측면에서 우위를 선점하다 보니, 사람들은 출퇴근길 같은 일상 속에서 웹툰을 찾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PC의 간소화 버전인 스마트폰의 보편화는 웹툰 콘텐츠 성장의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다.
스마트폰 보편화와 같은 외적 요인 외에도 웹툰 콘텐츠 성장을 견인한 또 다른 주역에는 웹툰의 스토리 라인이 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영화 장르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술적 한계나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한 제약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웹툰은 상대적으로 제작비나 제작 규모 등으로 인한 제약이 적다. 능력이 되는 한 작가의 다양한 세계관을 자신만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는 과정 중에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와 여러 스토리가 탄생하기도 한다.
웹툰에는 로맨스・액션・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일상・미래 등 작가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따라 생겨난 수많은 장르가 존재한다. 게다가 독자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장르의 작품들을 섭렵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시장 원리 탓에 웹툰 작가들은 콘텐츠가 많을수록 독자의 수가 증가하는 정비례 곡선을 그리게 된다.
또한 웹툰 장르의 다양성은 드라마와 영화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N <여신강림>, JTBC <이태원 클라쓰>, 영화 <신과 함께> 등 웹툰을 기반으로 한 여러 드라마와 영화가 이를 증명한다. 색다른 장르와 이미 확보된 수요층은 드라마・영화계에 웹툰 작품 영상화 열풍을 일으켰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웹툰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이슈가 된다. 웹툰 주인공과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 리스트에서부터 각색에 대한 의견까지, 독자들은 웹툰 원작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낸다.
K-웹툰의 글로벌화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웹툰은 미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K-POP, K-드라마에 이어 바야흐로 K-웹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글로벌 웹툰의 강자로 불리는 네이버 웹툰의 경우, 2020년 글로벌 이용자 수가 7,200만 명에 달했다. 같은 해 유료 콘텐츠 거래액은 8,200억 원을 달성했다. 글로벌 이용자 국적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지역은 아시아권에 해당했다. 그러나 네이버 웹툰은 미국 MAU(월간 순 사용자 수)에서도 1,000만 명, 유럽·남미에서도 MAU 550만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수치는 아시아・북미・유럽 전반에서 K-웹툰을 이용하는 독자의 수가 상당히 많아졌음을 나타낸다.
웹툰의 아시아권 진출은 비슷한 정서와 문화를 기반으로 확산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K-웹툰은 아시아 권역을 넘어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 웹툰이 해외에서까지 인기를 얻으며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 웹툰 김준구 대표는 tvN <월간 커넥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K-웹툰의 세계화 비결에 대해 말했다. 먼저 김준구 대표는 미국과 한국에서 웹툰을 소비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정적인 이미지와 스크롤을 이용한 동적인 형태의 결합이 적절히 융합된 것과 멋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등이 K-웹툰이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누린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준구 대표의 인터뷰 내용처럼, 실제 미국 내 네이버 웹툰 인기 순위는 한국 웹툰 인기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 호평을 얻은 작품들은 영문판 인기 순위에서도 TOP5 안에 속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미국과 한국 간의 장르와 문화 간극이 점차 해소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최근 네이버 웹툰은 글로벌 시장에 더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세계 최대 소셜 스토리텔링 플랫폼 왓패드(Wattpad)를 인수하고, 글로벌 웹툰 플랫폼 태피툰(Tappytoon Comics)을 운영하는 콘텐츠 퍼스트(Contents First)에 334억 원을 투자하는 등 여러 기업을 인수했다. 국외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대한민국 웹툰의 글로벌화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장세는 과연 K-웹툰 시장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더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렇듯 웹툰 시장은 국내를 넘어 점차 해외 시장 개척로를 뚫으며 확장되고 있다. 웹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림이다. 참신한 스토리와 많은 이의 눈을 사로잡는 작화는 웹툰 업계의 가장 큰 자산이다. 이렇듯 성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시점일수록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확장된 시장을 뒷받침할 탄탄한 기반을 성립하는 일이다. 웹툰 시장의 기반은 작가와 기업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다. 이를 위해 웹툰 업계는 작품에 대한 보상을 지금과 같이 유지할 것인지,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전과 아마추어 리그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 시스템 체계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규모가 확대되고 해외 작가들도 뛰어드는 만큼, 향후 웹툰 시장을 뒷받침할 만한 든든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양질의 웹툰이 꾸준히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바탕으로, 웹투니스트들의 상상력과 함께 무한히 뻗어나갈 K-웹툰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