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중국 경제 성장 동력이 ‘값싼 노동력’이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자산운용사에서 보유한 수익률 상위 종목의 해외 펀드 포트폴리오에는 중국의 혁신 기업이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혁신 기업이 포진한 나라다. 그 배경에는 디지털 혁신을 활용한 전자상거래발달과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시장이 있다.
2015년 중국의 도시화율(전체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인구 비중)은 55.6%로 82.5%인 한국에 비교해 아주 낮다. 중국의 인구를 약 14억 명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6억 2천만 명은 농촌을 비롯한 촌락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20세기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남중국해 연안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일어났고, 상대적으로 농촌 지역은 현재까지도 많이 낙후되어 있다. 더군다나 넓은 영토를 가진 중국의 특성상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각각의 촌락들을 묶어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디지털과 플랫폼이 이러한 과거의 한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디지털 플랫폼이 농촌의 상업을 일으키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센터”
가장 먼저 농촌에 눈을 돌린 곳은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2009년 ‘타오바오촌(村)’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농촌 경제에디지털 생태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낮은 인터넷 보급률과 함께 디지털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농촌 주민들이 더 넓은 시장에 나설 수 있도록 디지털 기업 ‘알리바바’가 먼저 나선 것이다.
‘알리바바’는 지역 거점에 인터넷 쇼핑몰 개설 및 전자상거래 운영 지식을 교육하는 센터를 세웠고, 농촌 전용 타오바오 페이지를 오픈하여 농민들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하고 홍보하는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마을 전체 가구 수의 10% 이상이 타오바오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그 거래액 규모가 1,000만 위안(한화 약 18억 원) 이상인 곳은 ‘타오바오 촌’이라고 부른다.
‘타오바오 촌’ 프로젝트를 진행한 8년 동안 중국의 농촌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먼저 성공적인 농촌 타오바오 사업자가 탄생하면서 디지털 혜택을 받지 못했던 농민들이 사업가로 변신하여 창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장 반응이 좋은 상품을 중심으로 점차 기업화 되어갔고, 2016년 기준 ‘타오바오 촌’에 등록한 기업은 5천여 개에 달한다.
농촌에 불어온 기업화에 의해 지역 경제가 점차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서 농촌의 경제 수준 향상은 물론 일자리 창출 효과도 가져왔다. 즉, 디지털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해주면서 도·농 간의 정보 불균형은 물론 경제 격차를 해소해주고 있는 셈이다. ‘알리바바’의 뒤를 이어 우수한 품질의 농촌 상품들을 개발하고, 이를 도시의 소비자들과 연결해 주는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행복한 우편, 요우러(邮乐, Ule.com)”
‘알리바바’가 농민을 디지털 생태계에 편입시켜 ‘소상인’을 키워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요우러’는 이미 농촌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오프라인 구멍가게를 온라인 디지털 범주에 두는 O2O 전략을 취했다. 홍콩 소재 미디어 기업인 ‘Tom Group’과 중국 국영 우편 회사인 ‘China Post’는 스마트폰과 대규모 전자상거래 서비스 출현으로 농촌의 커머스가 변화하는 것을 목격했고, 2010년 ‘요우러’를 공동 설립했다.
도시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딘 농촌에도 ‘타오바오’ 등을 통해 상품을 살 수 있게 되자, 그간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던 영세 구멍가게들의 폐업이 속출하였다. ‘요우러’는 이런 구멍가게를 거점으로 농촌 지역에 특화된 O2O 리테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지역 내 물류 허브 임무를 수행하는 구멍가게
‘요우러’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농촌 마을에 이미 점조직처럼 존재하던 구멍가게를 물류 허브로 사용하는 것이다. ‘요우러’는 이 구멍가게와 농촌의 고객들이 이어질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고객들은 여타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듯 ‘요우러’ 사이트에 접속하여 원하는 상품을 주문한다. 다만, 주문한 상품은 China Post 집배원이 ‘요우러’ 창고에서 마을까지 하루 안에 배송해 준다. 집배원의 배송이 여의치 않으면 ‘요우러’에 가맹된 구멍가게에서 직접 배달해주기도 한다. 모두가 얼굴을 아는 신용 사회인 농촌 마을 공동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을 주민들은 도시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내다 팔 수도 있다. 상품을 배송하고 돌아가는 길에, 집배원은 마을 주민들이 ‘요우러’ 가맹 구멍가게에 내다 놓은 상품들을 수거하여 도시의 물류창고로 입고시킨다. 인접한 마을까지의 교통도 편치 않은 마을 주민에게 새로운 시장에 접근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요우러’는 이제 조금씩 디지털의 수혜를 입기 시작한 농촌 주민들에게 세상의 창을 더욱 넓혀주고 있다.
‘요우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두 가지
첫째,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 자본을 연결하다
이미 영업하고 있는 상점과 전국 방방곡곡 촘촘히 짜여있는 우편 서비스를 결합하여 물류와 O2O 거점 자본을 들이지 않고 연결하였다. 디지털이 보편화 되면서 동네 영세 상점들과 우편 서비스 모두 현대인들에게 잊혀 가는 산업군 중에 하나인데 ‘요우러’는 이 둘이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훌륭하게 착안하여 농촌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도시처럼 인구가 많지도 않고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농촌 마을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이룩할 수 없기에 ‘타오바오’나 ‘텐센트’도 꿈꾸지 못한 농촌지역 1일 배송을 ‘요우러’는 기존의 재래식 서비스를 이용하여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셈이다.
둘째, 기존 전자상거래에 존재하던 ‘차가움’을 극복하였다
온라인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익명성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된다. 물론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도입하여 상호간의 신용문제를 막아주고 있지만, 대면 거래가 점점 줄어드는 현재의 추세를 돌아볼 때 온라인에서의 거래는 아직 인간적인 면모가 조금 아쉽다.
반면, 구멍가게는 디지털이 보급되기 이전에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이용하는 유통 채널이었고, 가게 주인과의 신용을 통해 많은 단골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멍가게는 고객들이 믿고 물건을 찾으러 올 수 있는 상점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도시인들과 같은 첨단의 상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접할 수 있다. 이것이 ‘요우러’만이 가진 O2O 서비스의 특별함이다.
‘데이터 기업’을 지향하는 ‘요우러’
‘요우러’에 가입한 농촌 구멍가게는 30만 개가 넘는다. 중국 전역에 70만 개 이상의 농촌 마을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요우러’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도 매우 높다. 더욱이 수십만 개의 상점에서 취합되는 데이터의 양은 하루에도 어마어마하다. ‘요우러’는 앞으로 수억 명에 달하는 비도시권 소비자들의 소매 데이터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규모뿐 아니라 질적으로 ‘요우러’가 발전할 가능성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집한 데이터로 ‘요우러’는 개별 지역의 수요 패턴을 파악할 수 있고, 새로운 상품이나 브랜드를 테스팅하기 적합한 지역들을 선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빅데이터가 쌓이게 되면 ‘요우러’는 도시의 소비재 기업들에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요우러’는 데이터 수집과 플랫폼 기술을 지원하는 IT 기업에 지속해서 투자를 아끼지 않고, 구멍가게 점주들의 리테일 역량을 향상하기 위해서도 큰 노력을 쏟고 있다.
‘요우러’는 중국처럼 수억 명의 인구가 각기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 사는 나라에서 가능한 디지털 O2O 선례를 남겼다. 오프라인과의 연계가 필수적인 O2O 서비스의 특성상 지역 거점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일은 적지 않은 자본과 수익적 불확실성이 따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선도기업들도 아직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파일럿 매장들을 운영하며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단계에 있다. 아직 개발도상국에서는 선진국형 O2O의 실현이 현 단계에서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우러’가 보여주었듯이 이미 구축된 전통적 리테일 채널과 사회 간접시설이 결합한다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꼭 O2O라는 것이 새로 지은 월마트처럼 깨끗한 매장에 반듯하게 정리된 창고의 모습으로 구현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인도와 러시아, 브라질처럼 많은 인구와 넓은 영토, 그리고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대국들에서 또 다른 ‘요우러’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