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우리에게 홍콩이라는 도시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개미집처럼 흩어진 골목에서 풍기는 습한 공기나 푸른빛의 빌딩 숲을 껴안은 바다, 혹은 달콤하고 바삭한 에그타르트나 어딜 가도 바쁘게 움직이는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앞으로는 홍콩을 떠올릴 때면 곧바로 하나의 랜드마크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찾을 때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도시에 M+ 뮤지엄이 개관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구룡 최남단에 자리 잡은 M+ 뮤지엄은 넓은 수평의 플랫폼 위에 수직의 타워가 서있는 독특한 형상이다. 5,000여 평 부지에는 해안 산책로와 공연장, 갤러리, 호텔과 레스토랑을 갖추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LED가 외벽을 둘러싼 채 미디어 아트까지 선보인다. 게다가 홍콩과 아시아 작가뿐 아니라 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작품까지 모두 한곳에 모았으니, M+ 뮤지엄의 행보 하나하나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

2021년 11월에 개관한 M+ 뮤지엄은 1998년부터 정부 주도로 진행 중인 서주룽 문화지구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다. 12만 평에 달하는 매립지 위에 조성된 대규모 문화 예술 단지에는 하나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필요했다. 따라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어떤 분야의 미술관을 개관할지 논의했는데, 글로벌 문화를 주도하는 도시인만큼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전부 아우르자는 결론이 도출됐다. 20세기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갖춘 21세기형 기관, 즉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more than a museum)을 만들게 된 것이다.

 

M+ 뮤지엄은 어마어마한 스케일뿐만 아니라 공간 설계 부분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M+ 뮤지엄의 총괄 큐레이터 정도련은 건축 디자인보다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가 우위에 있는 공간을 원했다. 뮤지엄에서는 건축 양식의 독특함이 아닌, 그곳에 놓인 작품이 가장 눈부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를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 스위스의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과 영국의 도시계획 회사 TFP 파렐스(TFP Farrells), 건축개발사 아럽(Arup)은 전시 공간의 규모와 비율, 관람객과 직원의 동선, 관람 환경에 대한 설계까지 섬세한 손길로 어루만졌다.

 

또한 그들은 공간 구성의 다채로움도 놓치지 않았다. M+ 뮤지엄에는 큰 규모의 기획 전시를 위해 마련된 웨스트 갤러리(West gallery)와 크고 작은 갤러리 아홉 개가 조합된 노스 갤러리즈(North galleries) 외에도 이스트 갤러리즈, 사우스 갤러리즈가 마련되어 있다. 저마다 다른 크기와 비율을 가진 갤러리들은 콘크리트 구조를 노출하거나 대나무로 마감하는 등 공간의 구성 재료가 다양하며, 실내로 유입되는 자연광의 양과 질 또한 다채롭다. 이에 대해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파트너 윔 월샤프는 “예술을 보여주는 방식, 인식하는 방식은 변화하고 미술관은 언제나 그것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유연한 느낌을 준 것”이라 설명했다고. 전례 없는 유형의 건물인 만큼 기획부터 완공까지 오래 걸렸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 값진 결과물을 얻었다.

그들의 시그니처가 된 다양성

지금까지 M+ 뮤지엄의 겉면을 찬찬히 살폈다면 이제는 속을 들여다볼 차례. M+ 뮤지엄은 현대 시각문화를 담아낸 콘텐츠에 주목한다. 시각문화란 쉽게 말해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뜻하는데, 회화와 조각 등의 순수미술부터 디자인과 건축, 영화 등의 대중문화까지 아우른다. 하나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보통의 미술관과 달리 M+ 뮤지엄에는 다양성의 가치가 큰 줄기를 이룬다.

 

때문에 그 줄기를 따라 분야와 국적을 넘나드는 작품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우선 M+ 시그 컬렉션은 스위스 출신의 컬렉터 율리 시그가 M+ 뮤지엄에 기증한 1,500여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 웨이웨이, 팡리준, 웨민쥔 등 지난 30년간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외에도 시각미술, 디자인과 건축, 영상을 아우르는 M+ 컬렉션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과 관련한 사진, 도면, 서신 등의 기록물들을 소개하는 컬렉션 아카이브즈도 대표적이다.

 

컬렉션 아카이브즈에서 꼭 빼놓지 않고 관람해야 할 것은 바로 아키그램(Archigram). 아키그램은 미래지향적인 건축 경향을 뜻하는데, 아키그램 건축가들은 시각적인 드로잉과 글을 통해 참신한 개념을 제시하는 데 큰 관심을 두었다. 재료와 디자인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거듭하며 건축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키그램의 시발점은 영국임에도 불구하고, 1960~1970년대 작업물의 90%는 M+ 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다. 시장 가치에서 외면받는 건축 및 디자인 유물들을 M+ 뮤지엄이 먼저 나서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낳고 M+ 뮤지엄이 지킨 귀중한 기록물은 현대의 우리에게 짙은 영감을 준다.

M+ 뮤지엄은 온라인 전시회도 진행한다. 예술가와 다큐멘터리 작가 그리고 홍콩 시민들이 참여하여 홍콩의 상징적인 네온사인을 기록한 “Mobile M+: NEONSIGNS.HK”, 15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온 “Mobile M+: Inflation!”, “Mobile M+: Live Art”까지 흥미로운 아트 프로젝트들을 2012년부터 온라인 및 오프라인으로 진행해 왔다. M+ 뮤지엄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컬렉션 일부의 이미지와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M+ 뮤지엄의 내부 전경 © M+ Museum
Shifting Objectives : Design from the M+ collection(2016), By Umeda Masanori, Ettore Sottsass, and Uchida Shigeru. © M+ Museum

미술관은 단순히 전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작가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람객은 작품을 즐기고, 공간은 물성의 가치와 함께 문화인의 에티튜드를 가르쳐준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수많은 상호작용이 오가며 가치의 교환이 이루어지다 보면, 도시의 사람들이 미술관을 지키고 다시 미술관이 도시의 고유성을 지킨다. M+ 뮤지엄은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홍콩이라는 도시의 색깔을 짙게 만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홍콩에 불어올 반가운 새 바람은 M+ 뮤지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에서 비롯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