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예술 상품의 가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 드라마, 웹툰 같은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세계인들의 일상을 파고들며 그 시장 규모를 넓히는 중이다. 수출 분야도 마찬가지다. 특히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관심이 뜨거운데, 공연예술을 사고파는 장터인 해외 아트마켓에 진출하는 사례 역시 늘고 있다.
해외 아트마켓은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공연 쇼케이스(showcase)를 선보이거나 작품 전시 부스 등을 설치해 작품을 사고파는 공연예술 견본(見本) 시장을 지칭한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문화 산업적 관점에서 예술 작품을 유통하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술가, 예술단체, 제작자, 기획자, 극장 관계자, 축제 관계자들은 아트마켓이라는 시장에서 만나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작품을 거래한다.
아트마켓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첫째, 견본시형으로, 작품 홍보 및 판매뿐 아니라 쇼케이스, 학술행사, 네트워킹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는 형태다. 가장 대표적인 아트마켓인 캐나다 공연예술마켓(CINARS)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축제 연계형은 공연예술 축제와 협력하여 진행되는 형태로, 시비우 국제 연극제(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처럼 루마니아 페스티벌 기간에 아트마켓을 운영하는 식이다.
셋째, 아트마켓 기능 축제는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같은 대규모의 축제 기간 중 기획자와 공연 단체와의 만남의 장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형태다. 공연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일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견본시 형태와 달리 정식 초청이 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축제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넷째, 네트워크 총회는 유럽공연예술회의(IETM)나 미국공연기획자협회(APAP)의 경우처럼 정보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전문가 모임을 일컫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트마켓은 단연 캐나다 공연예술마켓(CINARS)이다. 시나르는 1984년 공연예술 제작자, 매니저, 에이전트 등 민간부문에 의해 시작된 행사로, 공연예술을 국내 시장에서만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하에 설립되었다. 전 세계 지역의 예술가, 제작자, 기획자들을 수용하면서 공연예술 분야의 문화작품 창작을 활성화하고, 몬트리올을 국제적인 공연예술 중심도시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시나르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8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운영을 맡고 있다. 이들은 캐나다 공연예술 분야의 장르별 전문 프로듀서로서, 전 세계의 공연예술을 수출입하는 직접적인 창구로 활동한다. 자국의 공연예술단체를 소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무용, 연극, 음악, 혼합 장르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작품을 공식적으로 선정하여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나르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짝수 해마다 열리며, 전 세계 60개국의 예술 관계자들이 150개의 전시 부스와 30여 개의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꾸민다. 2020년에는 제19회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제20회 행사는 2022년 11월 7일부터 닷새간 열리며, 관람은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캐나다 몬트리올 지역에서 개최되는 또 다른 아트마켓으로 문디알 몬트리올(Mundial Montreal)이 있다. 문디알은 음악에 좀 더 특화된 아트마켓이다. 콘퍼런스와 페스티벌을 겸하는 음악 마켓으로, 월드뮤직 쇼케이스 행사가 강점이다. 월드뮤직은 각 나라의 민속음악을 대중화한 장르를 통칭하는 말로 프랑스의 샹송, 포르투갈의 파두, 스페인의 플라멩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홈페이지에서 뮤지션들의 라인업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 프로그램과 네트워크 행사로 이목을 끌고 있다. 본래는 캐나다 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마켓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미국, 유럽 등지의 음악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외국팀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한국의 월드뮤직그룹 공명과 고래야, 노선택과 소울소스 meets 김율희도 쇼케이스에 선정된 적이 있다.
2022년 문디알 행사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개최되는데 대면 행사는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비대면 행사는 11월 7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된다. 대면 행사로는 30여 개의 쇼케이스와 콘퍼런스, 네트워킹, 네트워킹 디너, 비즈니스 미팅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는 한국의 3인조 밴드인 신노이가 쇼케이스 공연을 펼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해외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유럽 지역의 아트마켓 중에서는 스웨덴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비엔날레인 비부 페스티벌(Bibu Festival)이 눈길을 끈다. 비부 페스티벌은 스웨덴에서 2년마다 개최되는 비엔날레 축제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예술을 선보이며 공연, 세미나, 워크숍, 포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스웨덴 청년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관객 토양을 튼튼히 하여 이들의 시각을 넓히고 영감을 얻게 한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북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아 국제적인 축제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2020년 축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취소되었으며, 2022년 5월 약 4년 만에 헬싱보리(Helsingborg)에서 행사가 개최되었다. 한-스웨덴 공동제작 어린이 공연인 <네네네>가 2020년 축제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행사가 취소된 관계로 지난 4월 합동 프레젠테이션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선보인 바 있다.
한편 호주의 워마들레이드(WOMADelaide)는 워마드(WOMAD)와 아들레이드 페스티벌(Adelaide Festival)이 합작해 1992년에 시작된 문화예술축제다. 매년 애들레이드(Adelaide) 지역의 보타닉 파크에서 진행되며, 전 세계에서 모인 약 400여 팀의 뮤지션과 아티스트, 댄서가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펼친다. 2010년부터 연간 행사로 전환됐다. 전통음악, 현대음악, 무용, 시각 미술, 거리극,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아우른다.
보타닉 파크가 배경이 되기에 가족 친화적이고 환경 우호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성인 티켓 구매자 한 명당 12세 이하의 어린이 2명을 함께 데려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2022년 행사는 3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3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워마들레이드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것으로도 주목받았다. 제로 웨이스트는 포장 및 자재를 재사용해 자원을 보존하는 것으로, 워마들레이드는 축제 현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퇴비로 전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기후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시장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또한 거래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단순히 공연예술 작품을 사고파는 형식의 유통시장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창작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류하는 장으로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트마켓이 제작 전 작품에서부터 완성 작품의 쇼케이스까지 두루 선보이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아트마켓은 국제 교류를 주도하고 각 지역 예술가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조적인 작품 활동을 알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공연을 관람하는 수용자 입장에서도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유수의 페스티벌은 이미 가지고 있는 명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서 시장의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닷새 남짓한 기간 동안 다수의 작품이 기획자들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됨으로써 예술적 가치와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