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은 연대에 대하여

이 시기쯤 되면 올해의 전망과 추세에 대해 매년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 주목하고자 하는 슬로건은 바로 느슨한 연대다. 이는 각자 지향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연결성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먼 거리도 아닌 하나의 공감대를 통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연대의 목적은 더 멀리 가기 위함이다. 속도가 유효했던 건 고속 성장 시대에 한해서였다. 그 시대를 넘어 우린 더 멀리 보길 원한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건, 또한 일보다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역설적이지만 더 멀리 가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한 여정이 중요한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필요한 건 함께의 가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요즘이다. 다만, 종래에 유효했던 함께의 전제조건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 성수동에서 런칭한 멤버십 커뮤니티 코사이어티(Cociety)는 그런 맥락에서 유의미한 사례가 된다. 크리에이터를 타깃으로 하는 이 서비스의 취지와 컨셉은 간단하다.

 

당신이 영감이 되는 곳, cociety

코사이어티는 모든 사람이 누군가의 영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교류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꿈꿉니다. 이들이 모여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성장하는 곳, 그곳이 코사이어티입니다.

– COCIETY

 

우리가 필연적으로 소속된 사회 society를 전제로 한 연대가 아니라, 마음이 맞는 사람이 함께 모여 유기적으로 협업하며 성장하는 공동 사회 co-society야말로 코사이어티가 지향하는 바다. 이를 위해 마음 맞는 사람이 연대할 수 있는 툴과 공간을 제공한다. 코사이어티는 혼자도 좋지만 여럿이 모였을 때 일어나는 시너지의 힘을 중시하고,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시너지를 위한 방편으로 미팅과 업무를 위한 오픈 스튜디오,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커피 라운지,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할 야외 정원, 크고 작은 행사를 위한 넓은 홀 등을 소속 크리에이터에게 제공한다. 다양한 문화행사와 전시, 북 토크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크리에이티브한 영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공간을 채워간다.

 

결국 창작과 관련한 사람들이 좋은 영감을 주고받아 시너지까지 일으키는 토대, 바로 코사이어티가 꿈꾸고 지향하는 공간이다. 언뜻 보면 공유 오피스 개념의 연장 선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업의 형태에 대해 이들은 명확히 선을 긋고 있는 듯 보인다. 공간을 제공해 임대료를 수취하는 것이 우선순위인 공유 오피스와 달리, 코사이어티는 협업과 시너지가 주목적이자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공간은 크리에이터의 시너지를 위한 하나의 무대다. 이들의 새로운 영감을 위해 각종 트렌디한 행사와 프로그램 기획하는 것이 코사이어티의 주요 미션인 셈이다.

코사이어티의 커뮤니티 공간 Ⓒ cociety

고민하는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도 30대에게 와닿을 연대라면 바로 월간서른을 꼽을 수 있다. 커뮤니티의 타이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곳은 불안한 이 시대의 30대에게 직장 밖의 세상의 모습을 알려주고 공유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지금, 앞날을 고민하는 30대가 모여 향후의 계획과 그것을 염두에 둔 커리어를 쌓도록 도와주는 곳이기도 하다. 단순한 이직과 경력관리 차원을 넘어 자신만의 적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자생력을 기르는 것이 월간서른의 지향점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간단하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마다 월간 서른의 멤버가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각자 훗날을 위한 자기 점검과 통찰을 거쳐 계획을 수립한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이들은 서로 간의 다양한 삶의 방편을 확인하는 한편, 직장 너머의 삶에 대한 계획을 그린다. 이들의 모임은 영상과 책으로 콘텐츠화되어 많은 이에게 공유되기도 한다. 월별로 다양한 분야의 연사를 초청해 30대 회원의 더 높은 시야를 위한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디자이너부터 스타트업 대표,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난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월간 프로그램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영감을 불어넣는다. 때문에 취미와 취향 공유에 그치는 단순한 커뮤니티를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대안형 교육기관이라고까지 불린다.

 

공간은 단지 이들 모임의 물리적 배경으로 의미 있을 뿐이다. 그 자체로 기능하거나 커다란 효용을 제공하지 않는 점에서, 종래의 공간 기반 커뮤니티와 차별점을 가진다. 새로운 배움을 향한 30대의 니즈와 맞물려 회차마다 평균 1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하고 있으며, 그 세가 점차 더 불어나고 있다. 자신만의 관심사를 매개로 한 30대의 응집력이 월간서른이라는 느슨한 연대를 통해 표출됨을 짚어볼 수 있다.

월간서른의 인사이트 제공자로 참여한 김지영 대표 Ⓒ 월간서른
월간서른의 인사이트 제공자로 참여한 윌림 대표 Ⓒ 월간서른

요즘 젊은이와 직장인은 혼밥과 혼술을 비롯해 뭐든 혼자 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지독한 고독 대신 적당하고도 느슨한 연대인 듯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무언갈 하길 좋아하는 일련의 활동이 각광 받는 건, 외로움을 향한 자기표현이라기보다 오히려 복잡하고도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성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변한 듯 보였지만 우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절대 변하지 않았던 셈이다. 단지 지나치게 가까웠던 그간의 거리가 문제였다. 여기에 단순한 학연과 지연을 넘는, 보다 생산적인 관계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같은 관심사를 전제로 서로에게 영감과 시너지를 주는 커뮤니티의 판이 깔리기 시작했다. 목마르던 사람들을 무섭게 흡수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적 한계에 갇혀 있거나 막연히 온라인상에서 부유하던 커뮤니티들이 화면 밖으로 나와 현실 세계에 안착하는 것 아닐까.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젊은 크리에이터, 현재와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30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하려는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음 세대와 소통하는 청년 크리스천 커뮤니티, WELOVE

위러브 크리에이티브 팀(WELOVE CREATIVE TEAM, 이하 위러브)은 종래의 공간적 배경인 지역 교회를 넘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미디어 및 SNS의 영역에서 다음 세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창조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예배를 꿈꾼다고 자신을 표현한다. 위러브는 그들이 지향하는 컨셉처럼 젊은 크리스천 크리에이터들이 SNS와 미디어를 통해 찬양과 CCM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장이다. 다만 온라인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범위를 확장해 전국 각지에서 예배를 도모하고 실황을 중계한다. 보수성 가득한 기독교계에서 젊은 크리스천의 지지와 관심을 기반으로 나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종래의 기독교에서 공간의 한계는 좀처럼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크리스천의 가장 큰 전제조건은 소속된 교회였으며, 크고 작은 교회들은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세를 구축하고 일구는 선순환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타 영역과 마찬가지로 종교 역시 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젊은 층은 각자의 종교색을 공유하면서도 자신에게 부합하는 예배를 찾기 시작했다. 위러브는 그들의 바람이 현실화된 예배이며, 그들에겐 교회이기도 했다. 교회가 단순히 건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들에게 든든한 토대가 되어준다. 얼마 전 세간의 이슈가 되었던 명성교회 세습화를 비롯해서 지역과 공간에 기반한 종교적 기득권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기득권은 자신의 발등을 찍으며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덕분에 새롭고 참신한 예배의 욕구가 위러브 같은 새로운 매체의 연대로 집결되는 요즘이다. 기독교라는 서로의 공감대를 기반으로 단순한 찬양 공유를 넘어 젊은 층이 연대한 예배 플랫폼 위러브는 거대한 파도를 만들고 있다.

내가 속한 지역과 공간이 주는 한계가 명확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선 나만의 지향점이 존중받기 힘들었다. 함께 도모할 누군가를 찾기 역시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온라인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공간과 지역적 제약에서 해방된 듯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상의 연대는 거대한 파급력만큼 깊이의 한계도 명확했다. 너무 먼 거리 역시 시너지를 일으키기에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 느슨한 연대의 시기가 오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각자의 관심사가 한 곳에 모이고 있다. SNS와 공간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된다. 중요한 건 나만의 관심사에서 우리만의 관심사로 범위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 시너지가 맹렬히 불꽃을 튀기며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커뮤니티는 그런 시너지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자신을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추는 대신, 이제 다른 선택지가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 마음 맞는 연대를 찾는 것. 더는 어려운 일이 아님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길 바란다. 그 깨달음이 빠를수록 조금이라도 더 빨리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싣고 모두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