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매년 6월, 좋은 책을 찾는 사람들과 좋은 책을 소개하려는 사람들이 한 데서 모인다. 바로 서울국제도서전 이야기다. 서울국제도서전은 1954년부터 70년간 계속되어 온 우리나라 최대 책 축제다. 책을 주제로 독자, 작가, 학자, 출판사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자 책을 키워드로 현시대가 품고 있는 담론을 다양한 형식으로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도서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한국의 책을 세계에 소개하고 반대로 다른 나라의 좋은 책들을 한국에 알리는 문화 외교의 장이기도 하다.

 

2022년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반걸음(One small step)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번 주제는 반걸음으로 걸어도 쉬지 않으면 느린 거북이도 천 리를 갈 수 있다고 얘기한 순자(荀子)의 말이 모티브가 되었다. 코로나라는 재앙, 기후변화 위기, 그리고 심화되는 불평등 등 다양한 어려움 가운데 지금 내딛는 작은 걸음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또한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작은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 지혜와 영감을 품은 다양한 책들이 분명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지난 2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방식을 혼합해 이전보다 축소된 규모로 행사를 치렀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더욱 나아진 까닭에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도서전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오프라인 도서전을 준비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소통할 수 있었던 그날의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마켓(전시 부스)에는 국내외 190여 개 출판사가 참가했다. 2019년, 41개국 430여 개의 출판사가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규모지만 팬데믹 중이었던 2021년, 75개 출판사가 참여한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다양한 출판 단체의 참여는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종류의 책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대형 출판사들은 단독 부스를 마련해 각 출판사의 최신 출간 서적과 주요 시리즈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다른 중소형 출판사들 또한 각자의 부스에서 새로 발간한 책들을 소개한다. 참여한 출판 단체 가운데에는 과학 전문 서적 출판사나 소속 교수들의 학술서적을 주로 출판하는 대학 출판부들의 연합체도 포함되어 있어 각 전문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도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특별히 책마을이라는 공간을 마련해 작은 규모의 독립출판사들이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소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곳에서는 출판사가 저마다의 색깔을 살려 출간물을 홍보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 출판사는 자신들의 시집을 구입하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각자 마음에 드는 시구를 알려주면 아날로그 타자기로 타이핑해 선물하는 작은 이벤트를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최 측에서는 독립 출판을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마련해 독립 출판물만이 지닌 매력이 무엇인지 대중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규모에 따라 다양하게 마련된 여러 출판사 부스 © 직접 촬영
주빈국 콜롬비아 :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형제의 나라 © 직접 촬영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주빈국이 있다. 매해 주빈국으로 초청된 나라의 대표적인 책들과 함께 책을 중심으로 한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문화 교류 및 관계 등을 점검하기도 한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은 한국과 수교 60주년을 맞이한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에서는 매년 4월경 남미 최대 규모의 도서전인 보고타국제도서전이 열리는데, 올해 우리나라가 이 행사에 주빈국으로 참여하여 두 나라 간 활발한 문화 교류를 도모하기도 했다.

 

콜롬비아는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데, 그들의 문학도 자연 못지않게 다양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번 도서전에서는 콜롬비아의 고전문학, 오늘날의 콜롬비아, 콜롬비아와 한국 이렇게 세 주제로 콜롬비아의 책과 문화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오갔다. 이 시간을 위해 콜롬비아에서 9명의 작가가 한국을 직접 방문해 독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중에는 한국에 살며 경험한 내용을 엮은 에세이 <외줄 위에서 본 한국>으로 유명한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밤 기도>로 잘 알려진 소설가 산티아고 감보아,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동유럽 기행>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있다. 이처럼 서울국제도서전은 매해 주빈국 초청을 통해 책이 다른 나라와의 문화 교류를 위한 중요 매개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책캐스트다. 책캐스트는 흔히 말하는 강연, 세미나, 토크콘서트와 같은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광장의 모습을 지향한다. 책이라는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목적의 전시회가 아니라, 책을 하나의 마중물로 삼아 이를 바탕으로 현시대와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공론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창작물이라 할지라도 책 속에 등장하는 정보와 이야기들은 대부분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 때문에 책은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가진 대화의 도구이며 생각의 지경을 넓혀주는 도우미가 될 수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책캐스트에서는 이러한 책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책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대중 강연을 위해 마련된 책마당과 책만남홀 1, 2 이외에도 출판사별 부스에서조차 다채로운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메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주제 강연 및 세미나는 여덟 개의 주제로 진행됐다. 주제 강연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각자의 책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소설가 한강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 중심 생각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했고, 소설가 김영하는 종이책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그림책 작가 이수지는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해 밀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미나에서는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기후 위기, 급격한 사회 변화, 그리고 지속가능성처럼 현시대가 품고 있는 다양한 담론을 엿들을 수 있었다.

 

책캐스트 가운데 가장 다수를 차지한 프로그램은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는 북토크였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여행하는 것을 즐기지만, 때로는 그 세계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숨겨진 배경과 장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한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함축된 글에 담기지 못한 보다 진솔한 목소리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저자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책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좋은 창구가 된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스무 개가 넘는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책과 주제를 가지고 작가와 대중이 만나 책만 읽고는 알 수 없었던 생생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프로그램 내용 중 특별히 눈길을 끈 부분은 SF(Science Fiction, 공상 과학 소설) 장르를 집중 조명했다는 점이다. OTT 시장뿐 아니라 출판계에서도 하나의 흥행 장르로 자리 잡은 SF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동시에 SF가 왜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다각도로 분석하는 자리도 열렸다.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도 함께 열렸다. 올해는 주제인 반걸음을 비롯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책 이후의 책, SIBF 책 이렇게 총 4개의 전시가 열렸다. 이 가운데 주제 전시인 반걸음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에서 멈춰 뒤를 돌아보고 이 사회의 현상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사회적 키워드를 담은 600여 권의 책이 큐레이션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비틀거리는 반걸음, 전진하는 반걸음, 중심 잡는 반걸음, 함께 걷는 반걸음, 공생하는 반걸음 총 다섯 가지의 테마로 나뉘어 소개되었다.

 

이제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전자책에 대한 전시도 열렸다. 책 이후의 책은 디지털 시대에 책 문화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조망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책 문화 또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기에, 전자책과 오디오북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책이 존재하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의 책에 대해 탐구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전자책과 오디오북 샘플이 소개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 오디오북 업체가 전시(마켓)에도 참여하여 관람객들의 경험 폭을 넓혀주었다.

 

주최 측의 기획 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기업이 책을 주제로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유명한 배달의민족의 경우 쓰여지지 않은 책을 전시합니다라는 체험 전시를 열었다. 현장에서 관람객이 미리 준비된 질문에 직접 답하는 방식으로 글짓기를 하면 동일한 주제의 글들이 모여 하나의 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된 관람객은 애플리케이션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다. 이는 평소 푸드 매거진과 음식 에세이를 발간해 온 배달의민족이 소비자의 일상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겠다는 기업 홍보 메시지를 담아내는 체험 전시이기도 했다.

전자책 관련 전시 모습 © 직접 촬영
2022 서울국제도서전 전시 © 직접 촬영

영국의 시인이자 영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초오서는 책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세상에 없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책은 우리와 가깝다. 꼭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이 아니더라도 만화책이나 잡지, 심지어는 교과서를 통해 모두 생애 한 번쯤은 책을 벗 삼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책 한 권에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때로는 희망과 위로, 그리고 감동을 얻기도 한다. 그렇기에 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일련의 선한 영향을 얻고자 좋은 책을 찾으려 발품을 판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런 좋은 책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다. 내가 알고 있던 책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는 자리, 내가 몰랐던 책들을 발견하는 자리,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책들을 다시 추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중에 발간되는 책이 모두 모인다는 국립중앙도서관에 따르면 2022년 5월 첫째 주, 한 주 동안 도서관에 들어온 책만 2,480권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 해도 그 모든 책을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내가 모르는, 나에게 필요한, 내가 읽고 싶을 법한 새 책은 꼭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런 새 책을 발견할 수 있는 훌륭한 광장이 되어준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책들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