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에딘버러는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이자 북쪽의 아테네로 불리는 행정·문화·문학의 도시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이 에딘버러 출신이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에게 영감을 준 도시로도 유명하다. 언덕 위의 요새라는 뜻의 Din Eidyn에서 유래한 에딘버러(Edinburgh)답게, 스코트족의 저항이자 독립을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도시의 랜드마크인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과거 군사적 요새로 기능했으며 영국 남쪽의 앵글색슨족과 13세기 말까지 이어진 피 튀기는 투쟁의 장이기도 했다. 이 역사적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데,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가 이뤄졌으며, 2022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영국 정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년에 독립 국민투표를 재추진할 것을 밝혔다.

 

스코트족의 자존심이자 역사적 유산을 지닌 수도로서의 에딘버러는 일면 폐쇄적인 도시로 보이곤 한다. 그러나 에딘버러는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12세기 건축물이 남아있는 구시가와 신고전주의 영향을 십분 흡수한 신시가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병렬 배치로 가장 방문하고 걷고 싶은 도시 경관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매해 8월에 4주간 열리는 에딘버러 축제는 매년 420만 명 이상의 관객, 2만 5,0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 중 하나이다. 여름 동안 에딘버러 내에서 다양한 축제가 펼쳐지는데 그중 ①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 ②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③더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 ④에딘버러 국제 영화제가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코로나19로 한동안 정지되어 있었던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2022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2021년, 온라인 부분 전환의 형태로 축제가 진행되었지만 장소 특성상 축제가 지닌 특유의 매력을 살리긴 힘들었다.) 음악, 연극, 오페라, 댄스 네 분야에서 약 2,40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92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 75주년을 맞은 에딘버러 국제 축제는 8년간 축제 감독을 역임한 퍼거스 리네한(Fergus Linehan)의 마지막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후임으로는 니콜라 베네데티(Nicola Benedetti)가 지목되었으며 2022년 10월부터 페스티벌 감독을 맡는다. 참고로 니콜라 베네데티는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 감독 중 최초의 여성 감독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녀는 현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예술 교육가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2004년 BBC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을 시작으로 2020년 그래미상을 받은 그녀는 에딘버러 국제 축제를 두고 “정치적, 문화적 파괴를 초월한 화해의 원칙과 예술의 이상에 따라 설립된 축제”라고 밝히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 캐나다 퀘벡 여름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4대 종합 예술축제로 알려져 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예술을 통한 단합과 문화 부흥을 위해 조직된 이후 전 세계 공연예술계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해마다 새로 정해지는 공연 테마에 따라 100여 개의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고 공연은 더 허브(에딘버러 축제센터)를 비롯해 어셔 홀, 퀸즈 홀, 에딘버러 플레이하우스, 로스 극장 등에서 이뤄진다.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가장 흥미롭고 창의적인 예술가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샅샅이 살핀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 간의 독특한 협업, 초연, 고전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받은 작품 등을 통해 축제에 방문한 관객을 사로잡고 스릴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올해 축제에서는 주요 참여국 중 하나로 한국이 꼽혔으며 팝업 문화 센터 <Korea House>가 오픈되었다. 더블트리 힐튼 에딘버러 시티 센터에서 열린 코리아 하우스는 주영한국문화원이 주최했으며 한복, 전통 공예품, 서예, 전통 놀이(딱지치기, 투호), K팝, 국악 등 다양한 한국문화를 선보였다. 여기에 한국관광공사와 제휴해 에딘버러 시내를 둘러보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K팝 테마 워킹 투어도 기획됐다. 유명 K팝 노래를 들으며 시내 곳곳을 투어하는 이 프로그램은 3회 차 투어가 모두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각자 이어폰을 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시 곳곳을 누비며 춤을 추는 모습은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클래식, 오페라, 현대무용 위주의 국제 페스티벌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이 초청받아 기량을 펼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대표 유력지 스코츠만은 별점 5개 만점을 주며 “강렬한 터치와 숨이 멎을 듯한 민첩함으로 가득 찬 조성진의 베토벤 황제 협주곡은 잊지 못할 연주였다”라고 평했다.

 

한국계 안무가 왕헌지(왕현정)의 왕 라미레즈 컴퍼니 위 아 몬치치(We are Monchichi) 또한 무대에 올랐다. 문화적 고정관념과 정체성에 질문은 던진 이 작품은 관객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왕헌지 안무가는 “춤이든 시각예술이든 전통음악이든, 한국 문화를 더 잘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느껴진다”며 점차 공연예술 분야로까지 퍼지고 있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의 관심을 전했다. 과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는 정명훈이 이끈 서울시향(2011년), 안은미 무용단 등이 최초로 초청받은 이력이 있으며 한국 예술인과 관련한 공연은 2013년, 백남준의 전시가 마지막이었다.

 

또한 올해 국제 페스티벌에서는 에딘버러 도시민들을 위한 무료 공연 <Thank you, Edinburgh>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기원하는 무료 공연 <Ukrainian Freedom Orchestra>가 진행되었다. 8월 끝 무렵 진행된 <Thank you, Edinburgh>에서는 축제 기간 내내 많은 세계인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지낸 에딘버러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대중적이고 따뜻한 레퍼토리들이 연주되었다. 세계적인 축제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어준 도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 자리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시민들이 모여 축제의 장이 된 도시를 즐겼다. 또한 우크라이나 연주자들이 모여 진행한 <Ukrainian Freedom Orchestra>에서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지친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원하는 세계인들의 바람이 드러나기도 했다.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는 기후 위기 시대 속 축제의 역할을 모색하기도 했다. 관객에게 다회용기 지참은 물론이거니와 물품 수리부터 지속 가능한 기념품 판매 등 친환경 상점을 리스트업한 앱 <CHANGEWORKS>를 소개했으며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비건 식당과 물 충전 스테이션을 소개하는 등, 탄소 발자국은 줄이고 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Edinburgh Festival Fringe

에딘버러가 축제의 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닌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있다. 프린지는 1947년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이 시작될 당시 초청 받지 못한 공연팀들이 자생적으로 공연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프린지(fringe)의 뜻이 주변인 것처럼 프린지페스티벌은 공식 초청공연으로 이루어지는 국제페스티벌과는 달리 자유 참가 형식의 공연으로 이루어진다. 아마추어, 프로를 불문하고 자격심사는 없으며 누구나 공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도 여기에 영감을 얻어 기획된 서울, 광주 프린지 페스티벌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공간에서도 프린지 페스티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국제 페스티벌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클래식 연주 전문 공연장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프린지 페스티벌은 기존 공연장을 비롯해 도시 곳곳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을 공연장으로 활용한다. 공원 잔디 위에 공연 부스나 서커스장을 세우거나 펍이나 재즈바, 또는 학교 체육관 등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형태다.

 

얼핏 듣기에 전문 공연장에 비해 어설프거나 부실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어 온 축제이니만큼 공연 부스 콘셉트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의 테마 공연장이 세워지며 이를 위해 공연 두세 달 전부터 도시 곳곳에서 공사를 진행한다. 아무것도 없던 커다란 공원 위에 팝한 컬러의 서커스장이 세워진 모습이나 에딘버러 대학 내 텅 빈 광장과 길가 위에 야외 공연장과 펍이 운영되는 모습에서 도시를 채운 축제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올해 프린지에는 총 63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3,334개의 공연과 약 220만 개의 티켓이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코리안 쇼케이스를 주제로 참여한 한국 아티스트들의 공연 7편도 주목받았다. 그중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 TOB 그룹의 “Are You Guilty?”라는 영국 가디언지에서 공연 전부터 올해 꼭 봐야 할 50가지 공연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간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거의 대사가 없는 넌버벌(non-verbal) 작품들이 주로 참가했었다. 늘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어를 주축으로 한 작품들이 꽤 많이 선보여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모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한 소극장 연극 <메리, 크리스, 마쓰>의 경우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공연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호평을 받았다. 최근 K팝과 한류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자연스레 프린지에 참가한 한국 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주영한국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길에서 홍보 전단을 돌릴 때 한국 공연이라고 하면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규모라는 상징성 및 영미권 공연예술 분야 투자 기금이 몰리는 주요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현지에서 피부에 와닿게 느껴지는 이러한 흐름은 상당히 의의가 있다. 작은 공연 팀이 자비를 들여 직접 프린지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기에 주영한국문화원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처럼 각국 정부에서 자국의 문화와 예술을 홍보하기 위해 프린지 페스티벌 참여를 돕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 일본, 대만 등 총 10개국이 자국 공연팀을 지원했다.

 

올해 프린지의 주요 주제는 성 및 성 정체성, 페미니즘, LGBTQ+, 장애, 이주, 인종 및 인종 정체성 등 현시대의 주요 사안들과 관련되어 있다. 올해 코미디언 신인상 수상자 라라 리코테(Lara Ricote)의 <GRL/LATNX/DEF> 작품의 경우 청각 장애인인 자기 삶에 대해 다루면서 동시에 인종, 성별, 장애라는 각종 경계를 오가며 나 자신되기의 개념을 흐릿하게, 동시에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큰 호응을 얻었다.

 

연극에서는 <보리스 3세>(Boris the Third)가 꽤 큰 주목을 받았다. 작품을 보려는 관객을 3그룹으로 나눠 통제할 정도로 연극은 큰 인기를 끌었다. 내용은 보리스 존스 전 총리가 고교 시절 연극 무대에서 영국 역사상 악명 높은 폭군 리처드 3세 역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내용은 당연히 허구이다. 그가 총리직에서 낙마한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파티 게이트 사건도 적절하게 녹아들어 시종일관 정치 풍자가 이뤄지는 매력적인 연극이다.

칼튼힐에서 진행된 이벤트 © Edinburgh Festival City.com
로열마일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서 진행된 거리 공연 © Edinburgh Festival City.com

The 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는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군악대 공연으로,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초청된 각 나라의 군악대들이 에딘버러성에서 펼치는 연주 및 무용 공연이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군악 축제이기도 하다. 1949년 에딘버러 국제 음악 및 드라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Something About a Solider>가 에딘버러에서 공연되었고 이를 제작한 조지 말콤 중령은 다음 해 8개 작품으로 구성된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를 공연에 올린다. 그의 목적은 에딘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육군의 위엄과 공헌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 행사는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가 되어 한 해 평균 20만 명 이상 찾는 인기 행사가 되었다. 여담으로 영국 자국민들 내에서 일명 효도 관광 상품으로 불리며 이 쇼를 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에 들 정도라고 한다.

 

2020년, 2021년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었던 타투쇼는 2022년 목소리들(Voices)이란 주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컬 브라이스와이트(Michael Braithwaite)가 참가하는 첫 번째 쇼로, 올해부터는 전통적인 군악단 타투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800명 이상의 댄서와 음악가와 결합한 종합적 예술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세계 최고의 군대와 문화 공연자들의 음악, 춤, 군사적 퍼포먼스는 새로운 공연 브랜드 <퍼포먼스 인 뉴 라이트>(Performance in New Light)로 프로덕션 돼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공연이자 레거시로서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를 새롭게 조명하기도 했다. 올해는 8월 5일부터 27일까지 에딘버러성 에스플러네이드(Edinburgh Castle Esplanade)에서 진행되었다.

1950년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 공연 모습 ©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
2022 로열 에딘버러 밀리터리 타투 © BBC

코로나19로 멈추었던 축제들이 재개되고 그리웠던 공연들이 돌아왔지만,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축제에 대한 시선이 마냥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더가디언지는 2022년 프린지가 후퇴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축제로 인해 에딘버러의 임대료 및 숙박료는 어마어마하게 치솟았으며 환경오염, 공연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 주변부(fringe)의 공연임을 감안해도 관용할 수 없는 퀄리티 등 전반적으로 프린지가 위기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 남아시아인 비평가는 “프린지 청중은 99% 백인이다”라는 칼럼을 게재하며 다수의 공연에서 보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 사용, 인종차별적 개그 등의 문제점을 꼬집고, 런던의 다양성만큼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압도적 다수의 백인 관중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코비드 이후 재개된 축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시를 가득 채운 세계적인 축제의 귀환이 반갑다. 프린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성이나 접근성의 면에서 특정 주변에 내몰린 듯한 인상을 지우고 모두에게 열린 균형 잡힌 축제가 되기 위해 이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축제 끝에 들려온 이들의 지적이 프린지, 그리고 축제와 예술이 계속해서 시대와 함께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