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를 펼쳐 북쪽으로 손가락을 짚어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지도의 끄트머리에서 발견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노르웨이(Norway)다. 금방이라도 따끈한 수프를 뜰 듯한 스푼 모양의 노르웨이는 북유럽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노르웨이 국토의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산맥이 차지하고 있는데, 완만한 경사인 동쪽과 달리 이곳에는 험준한 서쪽이 관통하고 있어 경작이 가능한 땅은 국토의 오직 3%뿐이다.
산투성이 절벽과 매서운 추위가 머무르는 노르웨이는 어찌 보면 인간이 터전을 꾸려가기엔 까다로운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해 유전이 발견될 정도로 각종 자원이 풍부하고, 피오르와 오로라 등 위대한 자연경관을 목도할 수 있는 곳이라 관광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그중 지구의 겨울왕국 노르웨이 최북단에 자리한 도시, 트롬쇠(Tromso)에서는 매년 겨울 다채로운 표정의 축제가 진행된다.
신이 여행자에게 선물한 도시
트롬쇠는 피오르(Fjord. 빙하가 이동 및 침식한 자리에 바닷물이 들어와 만들어진 협곡으로 노르웨이에서 주로 발견됨)가 만든 섬이다. 노르웨이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이며, 스푼 모양의 영토 중 위쪽 손잡이 부분에 자리한다. 19세기 후반에는 북극해의 주요 무역 기지로 활약했고, 노르웨이극지연구소(NPI)의 본부가 있어 극지방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진다. 또한 북극점과 남극점에 모두 도달했던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을 비롯하여 많은 탐험가가 북극 탐험의 문턱으로 여기는 바람에 북극의 관문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이런 특징 외에도 트롬쇠는 북극광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스폿으로 꼽힌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대전입자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와 반응하여 빛을 내는 자연 현상을 의미한다. 오로라 중에서도 북반구에서 나타나는 것을 북극광이라고 부르는데, 북극광은 북쪽의 새벽이라는 의미로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 또는 놀던 라이트(Northern Light)라고 불린다. 노르웨이의 트롬쇠뿐 아니라 캐나다의 옐로나이프,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등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오로라 관광지들이 바로 이 북극광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북극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오로라를 만나러 가는 길이 혹독할 것 같지만, 트롬쇠는 비슷한 위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따뜻하다. 예를 들어 옐로나이프나 핀란드의 로바니에미 겨울철 온도는 영하 30~50도까지 떨어진다. 반면 트롬쇠에는 열대 멕시코만에서 시작되어 서유럽에 온기를 불어넣는 북대서양 난류가 가장 오래 머물기 때문에, 영하 10~20도로 기온이 유지된다. 야외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체력 소모가 큰 오로라 투어에서 따뜻한 기온은 북극광 관광지 중에서도 트롬쇠만의 매력 포인트다. 오로라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9월부터 3월까지는 날씨가 좋으면 시내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여름에는 백야가, 겨울에는 극야까지 일어나니 자연의 위대함과 황홀함을 찾아 떠나온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선물 같은 도시가 되어준다.
역동적인 역사와 움직임의 도시
하지만 트롬쇠라는 도시를 탁월한 자연 풍경으로만 기억하기엔 아쉽다. 그곳에는 오랜 탐험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담은 페스티벌이 있어 왔다. 매년 해를 거의 볼 수 없는 극야의 시기가 다가오면 트롬쇠 국제 영화제(Troms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의 막도 오른다. 1991년 처음으로 열린 이 국제 영화제는 휴머니즘과 언론의 자유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예술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필름을 통해 성장하고 각자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도록 전 세계의 좋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페스티벌 동안 트롬쇠 곳곳이 영화관으로 변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상영관은 바로 도심의 메인 광장에 하얀 눈으로 만드는 거대한 스크린. 두꺼운 복장으로 무장한 채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북극의 하늘 아래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해가 뜨기 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단편 영화를 상영하고, 늦은 오후부터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공한다. 영화제 개막에 앞서 제공되는 카탈로그를 통해 상영되는 영화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예매가 필요하다. 2023년에는 1월 16~22일까지 일주일간 개최될 예정이며, 올해 12월 중순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카탈로그가 공개된다.
영화를 충분히 즐겼다면 이번에는 음악을 즐길 차례. 인섬니아 페스티벌(Insomnia Festival)은 하우스, 테크노 등 전자 음악 문화의 장을 만들어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연례 축제다. 뾰족하고 높은 산들이 둘러싼 마을에서 뜨거운 열기의 음악 페스티벌이라니,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트롬쇠는 노르웨이에서 일렉트로닉 장르의 중심 도시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매년 인섬니아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아티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이 트롬쇠를 찾는다.
올해 페스티벌은 10월에 개최되었는데 특별한 점은 Club For Kids, 즉 어린이를 위한 클럽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는 것. 일렉트로닉 장르와 음악을 특정 세대만을 위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도구로 바라보는 트롬쇠의 페스티벌만의 시선이 느껴진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일렉트로닉 장르의 결과물을 경험할 수 있으며 라이브 콘서트, 세미나, 아티스트와의 대화도 마련된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과 전자 기술 또는 디자인의 융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전시도 진행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트롬쇠 북극 박물관에는 북극과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했던 물품이나 당시 항해에 사용되었던 선박이 전시되어 있다. 극지방 탐험가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생활 모습을 풀어내 탐험이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여준다. 또한 1949년에 만들어져 북극을 탐험하고 1981년까지 사용된 MS폴스트예르나 호(MS Polstjerna)에 올라서면 북극 해양 탐험과 바다표범 사냥에 관한 전시품도 둘러볼 수 있다. 북극 박물관은 탐험가 아문센이 트롬쇠에서 시작한 항해에서 실종된 지 50주년을 맞아 개관했기 때문에 그의 초상화와 흉상, 필체도 마련되어 있다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기만 했던 탐험가들의 사명감을 엿보며 역동적인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도시는 하나의 얼굴만을 갖곤 한다. 뛰어난 자연경관, 풍부한 식재료와 먹거리, 오랜 가치를 지닌 문화 유적 등 도시가 가진 장점 중 한 가지를 꼽아 최대한 큰 에너지를 발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게 된 하나의 얼굴은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전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셀링 포인트가 되기도 하지만, 변화가 없다면 결국 도시의 이미지를 낡아지게 만든다.
북극을 마주 보고 선 트롬쇠는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다. 선물처럼 쥐고 태어난 자연부터 위대한 개척과 탐험의 역사,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의 장까지. 도시가 가진 다양한 장점을 찾아온 이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트롬쇠의 다채로운 얼굴은 아직 그곳에 닿지 못한 사람뿐 아니라 이미 가닿은 사람의 마음마저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