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검색 엔진이 구글에서 유튜브로 이관된 시대에서 대부분의 정보는 영상화된 채 유포되고 있다. 그러나 세 줄 정도면 습득할 정보를 3분 이상의 영상을 시청해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여전히 텍스트 자체는 권위는 지켜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곧 영상 중심 시대에서 글이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글은 시대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작가들이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작가는 직업보다는 계급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톨스토이, 카프카, 뒤라스와 같은 외국 작가들부터 이광수, 김동리와 같은 한국 작가들까지 우리는 한 작가를 떠올릴 때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그들을 생각한다. 그만큼 문학과 철학의 사이-공간을 독점적으로 점유하는 계급 같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다원화되고 세부적인 전문 지식이 다양화된 요즘 시대의 글은 문학성과 예술성뿐 아니라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는 정보가 아닌,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만으로도 글은 판매되고 유통된다.
권위에서 해방된 글
전통적인 등단 체계 속에서 글은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춘 이들만의 전유물이었으며, 그러한 체계 속으로 편입되지 않으면 작가가 될 수 없었다. 국내 문학계에서 작가의 조건은 독점적인 등단 체계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더 친숙한 공간이 되어가며 전통적인 등단 체계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개인은 작가가 되기 위해 각종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플랫폼에 글을 올리거나 개인의 SNS에 업로드만 해도 독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쓸 수 있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과거 작가들의 작법이나 방법과 똑같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가 보편화되는 것이 위대한 문학 작품들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작품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의 보편화는 그들의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감상과 비평이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으로서, 더욱 풍부한 작품 감상에도 도움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꼭 수익을 내지 않더라도 글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자기 생각을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각종 SNS에서 무수히 발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더 이상 특정 계급의 독점적인 기술이 아니다. 현시대에서 글쓰기는 자연스러운 삶의 보편적인 활동에 가깝다.
이러한 글쓰기의 대중화에 발맞춰 글의 유통 경로도 바뀌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책의 유통 및 판매가 아니라 글의 유통 및 판매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은 더 이상 책이라는 고정적인 형태로만 유통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으로 엮을 만큼 길지 않은 글들이 온라인 시장에서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즘 시대의 글이 어떻게 유통되고, 어떻게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계약하지 않는 작가: POSTYPE
2015년 런칭한 포스타입(POSTYPE)은 “누구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창작 콘텐츠 플랫폼”을 자처한다. 포스타입은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에 이어 웹툰/웹소설 플랫폼으로서 영향력 3위를 차지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 정식으로 연재하며 플랫폼 메인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계약을 거쳐야 하는데, 포스타입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가들과 계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약 없이 누구나 콘텐츠를 올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웹툰/웹소설 플랫폼 수수료보다 현저히 낮은 10%의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어 무명 작가들이 활동하기 좋은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이긴 하지만 포스타입에서 올릴 수 있는 글들은 소설에 한정되지 않는다. 일러스트, 사진, 동영상 등에 대한 정보 또는 클래스, 일기, 에세이 등을 찾아볼 수 있으며, 필요하거나 흥미 있는 내용들만 개별적으로 구매해서 읽어볼 수 있다. 크리에이터가 무료로 공개할지, 유료화할지 여부를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같은 글 내에서조차 무료 부분과 유료 부분을 나눌 수도 있다. 담당 편집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 네이버/카카오 플랫폼과는 다르게 콘텐츠 구성을 전적으로 크리에이터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2022년 7월 현재 포스타입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는 총 35만 명이며 누적 가입자 수는 411만 명, 월간 유료 독자 수는 최대 31만 명으로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2년 5월에 이미 누적 거래액 500억을 돌파해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아기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22년 3월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가 선정한 올해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고성장 기업에 선정된 기록도 있다. 국내 플랫폼 기업으로는 유일한 성과였다. 해당 조사에 선정된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기술/경제/핀테크 분야에 치중되어 있음을 고려해본다면, 이 성과는 미디어 플랫폼 분야에서 포스타입이 독보적인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포스타입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글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무명 작가들이다. 방대한 크리에이터를 보유한 만큼 모든 크리에이터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포스타입이 글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존의 출판 체계 속에서 글을 통해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등단해 출판사와 계약을 하거나, 지면에 진출해야만 했다. 그러나 포스타입은 위와 같은 지난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독자와 작가를 곧바로 연결시킨다. 실제로 포스타입은 글쓰기 보편화 열풍과 함께 더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며, 더 많은 독자를 유입시키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에 그치지 않는 포스타입의 다양한 콘텐츠가 시장과 유통 체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포스타입 플랫폼 안에서 지속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크리에이터들은 몇몇으로 한정되어 있다. 수익은 크리에이터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데, 포스타입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는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의 지속적인 수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반응을 살피기 전까지 이 콘텐츠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이는 비단 포스타입의 문제점이 아니다. 모든 크리에이터는 자기 창작물이 수익을 낳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창작을 시작한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플랫폼 시장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결국 꾸준한 노력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없는 작품을 위해: Tumblbug
크라우드펀딩은 마치 제품 제작을 위한 초기 기획서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콘텐츠의 기획서를 제출하고 그것을 후원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2011년에 창업한 크라우드 펀딩 기업, 텀블벅은 2022년 현재까지 약 2만 3천여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누적 펀딩 금액도 1,550억에 달한다. 텀블벅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은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에 자본이 부족한 독립출판계 측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다. 시스템상 크리에이터가 자기 작품이 어느 정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고, 목표 금액을 달성해 펀딩이 완료되면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이 크리에이터들에게 비교적 빨리 지급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신인 작가들의 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다.
또한 크라우드 펀딩은 기존의 출판계가 일방적으로 출판물을 선보이는 것과는 달리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 반영한다. 출판 여부가 (예비) 독자들의 펀딩 여부에 달려있기에 실패할 확률도 극히 낮다. 실제로 2021년 기준 820명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사를 실시한 결과, 독립문예지를 통한 등단을 극히 꺼리던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10명 중 2명은 텀블벅에서 독립문예지/독립출판을 통한 데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출판사와 대형문예지의 출판 독점률이 이전보다 현저히 낮아진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더 이상 출판이 기성 매체들의 독점적인 영역이 아님을 보여준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데뷔는 펀딩에만 성공한다면 실패 확률이 낮고 초기 자본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신인 작가들에게 유리한 구조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소위 말해 네임드 작가가 아니어도 기획이 좋다면 언제든 펀딩할 준비가 되어있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킨 우울증 치료를 위한 자서전 에세이는 2018년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간되었다. 해당 책은 2018년 전체 서적 베스트셀러 7위를 기록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2022년 현재까지 시중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힐링형 에세이의 원본이라고 할 정도로 유사 장르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무명 작가의 펀딩을 통한 독립 출간물이라 할지라도, 대중적인 성공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성공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원제는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또한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판되었다. 987명의 후원자를 통해 1,800만 원 가량의 후원금을 모으며 출판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100만 권이 넘는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예전에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전문 분야의 권위가 있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일종의 힐링형 에세이들은 환자를 많이 만나본 정신과 의사들이 주로 집필했으며, 적어도 인생의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겪어낸 사람들의 특정 사례를 담아 출판되었다. 소설 또한 대형 신문사 혹은 문예지의 등단을 통해 대형 출판사와의 계약을 거쳐 출판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그러한 전형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글이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독자들의 선호와 취향을 직접 반영한 글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작가들의 수익과 생존권을 더욱 안정적으로 영위하게 만들면서 지속 가능한 창작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텀블벅의 성공은 기존의 출판 구조가 갖고 있던 폐쇄적인 형태에 획기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글 속에서
창작자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보장하는 포스타입과 작가들에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보장하는 텀블벅의 사례는 모두 글쓰기와 글 읽기가 보편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글이 유통되기 위해서는 글에 대한 수요가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은 더 이상 권위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학 작품과 전문가의 조언을 담고 있는 권위적인 매체가 아니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매체로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비평과 관련한 화두에 대해서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비평가들과 자신의 SNS를 통해 비평을 선보이는 이른바 인플루언서들의 수준 차이가 미미해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양쪽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민음사]에서 동시대 문화 탐구라는 기획으로 선보인 윤아랑 평론가의 책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은 리뷰 플랫폼인 왓챠피디아의 네임드이면서 동시에 등단한 평론가의 평론집이다. 대중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권위 체제의 허락에 따라 글의 구매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자신의 흥미를 유발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라면 그것이 인정 받지 않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결제하며 심지어 아직 세상에 없는 글이라도 그것의 완성을 위해 후원한다. 보편적 활동으로서의 글쓰기가 대중들 안에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권위적인 문단 체계가 따라가지 못한 글의 변화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보완되며 시장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