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에 지어진 고독한 도서관
중국 난다이허 해변 도서관
(Seashore Library, Nandaihe)
우연히 본 사진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책이 좋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바다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 도서관이라는 것을 듣고, 주말에 베이징에서 기차표를 끊어 이곳을 찾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고독한 도서관
기차역에서 도서관까지 차로 20분 정도 더 달려야 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예상밖으로 경비가 삼엄했고, 입구에서 도서관이 있는 해변까지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울창한 가로수길과 모래사장이 끝없이 길게 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난다이허 지역의 해변도서관은 중국의 발전 방향이 이제는 맹목적인 경제발전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듯 했다.
알고 보니 난다이허 주변은 엄청난 부지에 수십 채의 별장과 회의시설, 상업시설, 승마, 골프 등의 스포츠를 즐길수 있는 레저시설, 교회, 도서관 등이 해변을 따라 건축되어있으며 회원가입을 하면 더 많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별장단지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별장단지는 하나의 마을 같았다.
아름다운 해변, 황금 해변
긴 가로수길의 끝에서 우리는 황금 해변이라고 불리는 바다를 만났다. 한 지리과학자가 발견했다는 이 해변은 가히 광활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었다. 바다의 청명하고 순수한 하늘색과 뿌옇고 포근한 하얀색 하늘이 만나는 그 지점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지평선이 되었고, 그 지평선과 나 사이에는 구름 사이로 가끔 내려오는 햇빛이 바다를 비추며 반짝이고 있었다. 이 해변을 따라 또 얼마쯤 걷자 정말 모래 위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콘크리트 건축물 ‘고독한 도서관’이 나타났다.
건축가 동공(董功)이 느낀 고독감, 도서관이 되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어떤 황량한 기운과 차갑기까지 한 고요함이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이 도서관을 건축한 건축가 동공(董功)의 의도가 숨어있었다. 건축가 동공은 이 장소를 처음 보자마자 밀려드는 고독감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는 공허한 우주경계의 배경 같았고, 모든 돌 하나하나가 그 앞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였다고 말하며 이곳에 그 한 조각 돌로서의 존재하게 될 도서관을 짓게 된다.
해변 도서관은 난다이허 황금 해변을 배경으로 대자연의 빛과 바람을 그대로 담아냈고,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마치 자연의 일부인 듯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변 위에 스며들어있다.
자연 조명, 아낌없는 햇빛
도서관은 실로 고독했다. 도서관 내부는 열린 3층 구조로 되어있었다. 한 면은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창으로 되어있었고, 계단 중간중간에 길게 책상이 있어 어디에서나 앉아 바다를 마주해 책을 읽도록 설계되어있었다. 또한, 스탠드 조명 이외에 천장 조명이 없어 보였는데, 천장에 뚫린 동그란 창 사이사이로 책을 읽기에 충분한 빛이 들어왔고, 계단을 올라가면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가로로 혹은 세로로 길게 난 창에서 아낌없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책을 위한 도서관이 아닌, 책에 집중하기 위한 도서관
단순한 육면체의 구조물 안엔, 한가하게 늘어져 있는 테이블과 바다를 향해 지그재그로 의자가 놓여있다. 10분 만에 도서관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특별한 구조물도 인테리어도 없었다. 그냥 ‘공간’처럼 느껴졌다. 서고는 없었다. 구석구석 알차게 붙박이로 박혀있는 책장이 있을 뿐이었다.
도서관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적은 양의 도서만 비치되어있지만, 얼마나 많은 양의 장서를 가지고 있느냐의 도서관으로써의 기능보단, 바다를 마주하고 햇빛의 따스한 보호를 받으며 오직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황량하고 고요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곳이었다.
고독한 도서관의 매력에 빠지다
계단 중턱쯤 자리 잡고 앉아 내가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 내 생각이 더해져 몰입하다가 문득 앞을 바라보면 나의 시선에 걸린 하늘색 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며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광활한 바다 앞에서 무심의 세계로 들어갔다. 열독(阅读)의 최상의 환경조건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나른하고 “무”에 가까운 마음 상태로 나 또한 한 조 각의 돌로써 존재하고 있자니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이 잠의 바다로 빠져드는 것은 당연했다.
혹자는 이 건축물을 보고 예술을 향한 심미가 기술과 가성비를 이긴 예술작품이라 하였고, 혹자는 이 건축물을 보고 “공공”이란 말을 붙이지 말라 경고하였다. 지금 중국은 매일매일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은 흔들린다. “자본”을 등에 업고 다각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주도했던 현대적이고 낯선 예술문화를 따라 우리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마음. 아니, 그것을 뛰어 넘고 있다라는 흥분이 엿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깨름직함도 있다.
과연 “자본”이 우리의 공익을 위한 것인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해치지 않을 것인가?라는 불안함의 눈빛이 공존해 보인다. 170만년의 유구한 역사의 길 위에서 또 한번의 페러다임 쉬프트를 꾀하는 중국, 이 고독한 도서관은 정말 그 본질인 공익이 아닌 낭비적 “고독”의 정체성을 지켜낼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