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taverse is coming.
메타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 젠슨 황(Jensen Huang), 엔디비아 CEO –
이 선언적인 문구는 하나의 트렌드이자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시대의 시위를 당긴 키워드 메타버스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보여준다. 메타버스는 1992년 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닐 스티븐슨 作)에서 컴퓨터 기술을 통해 3차원으로 구현한 공간으로 처음 등장했다.
SF소설은 과학과 서사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장르적 재미를 넘어 당시 소설이 창작되던 시대적 감각으로 미래를 예상하고, 더 나아가 특정 미래로의 변화의 추동력이 될 언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예언서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예술의 고전적 특징으로 꼽히는, 현실 반영성과 해석이 첨가된 (현실의) 복제 아닌 복제품으로서, 현실에 도리어 낯섦을 선사하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메타버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관련 글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아마 용어의 유래에 대해 여러 번 들어봤을 것이다. <스노 크래시(Snow Crash)>의 중심인물 히로 프로타고니스트는 현실에서 피자를 배달하며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는 뛰어난 해커로 인정받는다. 그 세계 사람들은 모두 아바타(놀랍게도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이다)로 살며 현실 세계의 신분을 숨긴다.
히로 또한 자신의 실제 신분은 숨긴 채 메타버스에서 퍼지고 있는 컴퓨터 바이러스(메타버스에서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소설 속 현실 세계에서는 마약으로 묘사된다)인 ‘스노 크래시’의 비밀을 파헤치며 음모를 발견한다. 현실에서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호 위반을 일삼으며 마피아에게 빚진 돈을 갚는 데 전전긍긍하는 등 보잘 것 없는 삶을 살던 그는 메타버스 세계에서 영웅(히어로)이자 중심인물(프로타고니스트)이 된다.
이 소설은 발표 후 수많은 IT 업체 개발자와 경영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실제로 구글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은 이 소설을 읽고 우리에게 익숙한 서비스인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개발했다. 린든랩 창업자 필립 로즈데일은 이 소설에서 용어를 차용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온라인 가상현실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를 개발했다. ‘메타버스가 다가오고 있다’란 선언적 문구를 처음 제시했던 젠슨 황(엔디비아 CEO)은 이 소설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제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 미래의 메타버스는 현실과 아주 비슷할 것이고, SF소설 <스노 크래시>에서처럼 인간 아바타와 AI가 그 안에서 같이 지낼 것이다. (중략) 인공 지능 컴퓨팅 기술 분야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의 옴니버스는 3D 세계를 연결해 가상 세계를 공유하도록 고안됐다. 이는 닐 스티븐슨이 1990년대에 발표한 소설 <스노 크래시>에 묘사된 메타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젠슨 황(Jensen Huang), 엔디비아 CEO –
메타(meta)의 뿌리로 파고들어 가보자. 메타(meta)는 그리스어 μετα(meta)에서 유래된 말로 after, beyond, with, adjacent, self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접두사이다. 라틴어에서 영어권으로 넘어오며 철학적인 개념으로 발전돼 다른 개념의 추상으로서의 개념을 나타내는 접두어로 사용되곤 했다.
철학 인식론에서 접두사 meta는 ~에 대해서란 뜻으로, 메타데이터는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로서 상위개념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ohn H. Flavell)은 이 개념을 차용해 메타인지란 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메타인지는 인지 이상의 것이자 인지 및 인지의 제어에 대한 지식으로서 자신의 학습 기술, 기억력, 모니터링 능력과 같은 자신의 사고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상술한다. 사고하는 자신을 다시 사고하고 성찰하는 인지적 과정으로서,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은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되 그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반복해서 비춰보는 행위가 특화된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용어, 메타버스는 단순히 현실 세계의 복제가 아닌 현실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2007년 발표한 <메타버스 로드맵> 미국의 미래 가속화 연구재단(ASF, 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은 메타버스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의 대안 또는 반대로 보는 이분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교차점(junction), 결합(nexus), 수렴(convergence)으로 이해할 수 있다.
–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 –
메타버스는 구현 공간과 정보 형태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된다.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 세계(Virtual Worlds). 아래 스펙트럼의 가로축에서 사적인(Intimate)은 아바타, 온라인 프로필, 본인 정체성 공개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의 정체성을 발현하는 데에 초점을 둔 기술이며, 외적인(External)은 이용자를 둘러싼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와 통제력을 제공한다. 세로축 증강(Augmentation)은 이용자가 인식하는 물리적 환경 층위에 새로운 정보 시스템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기술이며, 시뮬레이션(Simulation)은 이용자의 상호작용을 위한 장소로서 현실을 모방한 가상 세계를 제공한다.
증강현실은 사용자가 이용하는 일상적인 현실에 가상의 정보를 더해 제공한다. 이용자는 현실에 덧입혀진 정보와 네트워크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인식을 향상시킨다. 주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웨어 기기를 통해 실현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나이언틱과 닌텐도의 합작품 게임 포켓몬GO와 네이버 서비스 제페토가 있다.
거울세계는 물리적 세계를 그대로 복제하되 추가 정보를 더한, 확장된 세계를 의미한다. 구글어스, 네이버 지도 등이 그 예다. 라이프로깅은 말 그대로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서 이용자의 신체, 감정, 경험, 활동, 식이요법 등과 같은 정보를 스마트기기를 통해 기록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재현한다. 그 예로 애플워치로 이용자의 활동을 기록해 의료 목적으로 분석하는 애플헬스케어 및 나이키헬스케어 등이 있다.
라이프로깅의 경우 메타버스의 한 유형으로서의 라이프로깅과 별개로 이미 20세기 초에 시도된 적이 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수석 연구원이었던 고든 벨(Gordon Bell)은 미래에 완전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용도이자 후손을 위한 보존 자료로서 개인적인 문서, 데이터, 사진, 비디오 등을 자동으로 수집하는 행위를 제안했다. 라이프로거는 카메라를 옷에 부착하거나 줄과 연결해 목에 걸고 24시간 지속적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벨이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배경에는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라는 장기 실험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는 실험 목적으로 나중에 기계로 보강될 수 있는 정확한 기억에 도움이 되고자 모든 데이터를 남김없이 기록하고 저장하고자 했다. 벨은 30초에 한 번씩 자동으로 촬영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며 자신의 삶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수집했다. 완전한 기억의 부활에 대한 이 욕구는 안타깝게도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2016년, 더는 카메라를 목에 걸지 않는다는 벨의 말과 함께 마이라이프비츠 프로젝트는 사실상 종료되었다. 당시 기술로서는 모바일 장치를 사용해 모든 것을 자동으로 녹음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그렇게 생성된 대용량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자신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기억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망각하고 싶은 인간의 양면적인 욕구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컴퓨터월드(Computerworld)에 기고한 글 <라이프로깅은 죽었다 (당분간은)>에서 칼럼니스트 마이크 엘간은 이메일 시스템을 그 예로 들었다. 점점 늘어나는 읽지 않는 편지들(뉴스레터, 메일링 서비스 등)과 통제할 수 없는 스팸메일은 이용자에게 불편함, 죄책감, 수치심 등을 가져다준다. 내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오는 불안감은 모든 데이터가 기록된다는 피로감과도 직결된다.
라이프로깅이 촉발한 ‘이용자의 데이터가 모두 기록되거나 디지털화된다’는 피로감 또는 불안감은 메타버스 내에서 빈번히 언급되는 디지털 및 가상 세계에 대한 피로감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최근 이용자의 고유한 권리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언급되는 데이터권(Data Ownership)과 이에 대한 정책적 요구도 이용자들이 메타버스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다시 메타버스의 유형으로 돌아가 보자. 마지막 유형인 가상 세계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현실의 경제, 사회, 정치적 환경을 확장해 유사하거나 대안적으로 구축해 낸 세계다. 앞서 언급한 린든랩의 세컨드라이프, <모여라 동물의 숲> 속 가상의 캠프에서 진행된 조 바이든의 선거 캠페인, AR 기술과 접목해 역사적 공간에서 박물관 전시품을 볼 수 있게 재현한 시카고 역사박물관의 <시카고∅∅프로젝트> 등이 그 예이다.
본 글에서는 수많은 메타버스 세계 중 예술 분야에서 메타버스가 어떻게 생성되고 있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대면 만남이 점차 어려워져 가는 전시의 영역을 온라인과 비대면으로 확장시킨 새로운 전시를 중심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예술가들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서 출발한 <오브제서울 프로젝트>, 역사와 메타버스의 만남을 보여주는 <시카고∅∅프로젝트>, 세계 역사의 근대화 및 산업화 시기 속 인류 행복의 기호를 온라인 가상 전시로 아카이빙화한 <행복의 기호들>, 전시와 아카이빙에서 조금 더 나아가 미래 화성을 배경으로 기후위기를 생각한 모바일 게임 <히든 리서치>가 그 사례들이다.
#오브제서울(ObjetSeoul)
‘온라인 기반 전시의 다양한 소통 방식이 어떻게 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과 예술 작품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게 만들고 친밀하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언택트(untact)란 용어에 담긴 의미처럼 대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친밀한 만남은 어떻게 가능할까? 작가와 관객은 늘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났다. 서로 다른 해석을 지닌 채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해석과 관점까지 만들어 가며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을 감각하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는 언택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물로서 감지할 수 없는 작품을 가상 세계에서 마주할 때, 관객은 현장감이 없는 상황에서 전시된 예술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오브제서울을 기획한 아트 디렉터 김노암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오브제서울이 시작된 첫 지점을 위와 같이 소개한다.
오브제서울은 단순히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넘어,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며 겪는 다양한 영감과 고민의 과정들, 그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오브제들을 함께 소개한다. 일상적인 물건에서부터 실제 작품 창작 과정에 쓰이기도 한 이 오브제들은, 작가에게 가장 개인적인 물건들을 가상현실 플랫폼에 재현해 관객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과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영역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마치 작가의 방을 방문했을 때, 작가이기 전에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캐릭성을 지닌 한 인간의 삶을 작품에 대입하거나 해석의 지점으로 만들어 가듯, 오브제 서울은 하나의 가상 세계에 구현된 오픈 스튜디오처럼 관객에게 다가간다.
오브제서울은 예술 창작의 비밀스러운 사적 세계를 아티스트 오브제, 오픈 스튜디오, 실감형 디지털 갤러리로 경험하는 토탈 아트 플랫폼이다. ‘예술가의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며 현실(실재하는 작가, 작가의 오브제, 창작된 작품)을 재현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또 다른 해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거울’인 동시에 다른 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세계’로서의 가능성을 지향한다.
오브제서울의 세계관에서는 화성처럼 실재하지만 갈 수 없는 DMZ에 예술가의 도시가 세워지고, 그곳에 현실 속 갤러리, 미술관, 아틀리에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조성된다. 여기에 두 달간 아틀리에를 새롭게 마련한 예술가의 쇼(show)가 진행되며, 관객은 맵에 띄워진 기호를 클릭해 VR 아틀리에를 탐색할 수 있다. 메타버스 갤러리의 첫 주자로는 이은 작가가 참여했으며, <마음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타이틀로 지난 7월 27일까지 오브제서울 홈페이지에서 진행됐다.
#시카고∅∅프로젝트(The Chicago ∅∅ Project)
2016년에 시작된 <시카고 ∅∅프로젝트>는 시카고 역사박물관과 영화 제작자 제프리 로즈(Geoffrey A. Rhodes)의 파트너십으로 이뤄진 도시 아카이브 프로젝트이다. 시카고 역사박물관의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디지털화된 이미지를 찾아 이를 VR 콘텐츠로 제작한 프로젝트인데 1893년부터 2020년까지 시카고에 있었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모티프로 삼았다.
<시카고 ∅∅프로젝트>는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거리를 배경으로 애플리케이션, 비디오 및 스트리트 뷰 파노라마 기능 등 증강현실을 이용해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1968년 8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밤, 거리의 시위대와 경찰이 무력으로 충돌했던 사건인 ‘DNC 시위(The 1968 DNC Proetests)’의 경우, 이용자가 실제 무력 충돌이 벌어진 현장인 그랜트 파크에 방문해 유튜브 혹은 페이스북360을 활용해 15분간 3D VR 투어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제공되는 사진들은 실제 현장의 모습을 재현해, 박물관과 책을 탈출한 역사 체험이 어떠할 수 있는지 아카이브의 미래를 보여준다.
프로젝트의 이름인 ‘∅∅’은 시카고의 도로 번호가 시작되는 State Street와 Madison Street의 모퉁이에서 따왔다. 과거, 사진이 찍혔던 장소와 완벽히 일치하는 곳에서 관객이 말 그대로 ‘역사 속에 존재하고 서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간 시너지를 실험적으로 모색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영화나 역사책으로부터 탈피한 신선한 역사적 경험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1893년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 1968년 DNC 시위, 1933~34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 1929년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 1915년 SS 이스트랜드 여객선 전복 사고, 1929~79년 사이의 시카고 건축 역사를 총망라한 여섯 가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미디어스트림 150이 아카이빙 되어 있다.
#행복의 기호들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한 <행복의 기호들>은 ‘코로나19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을 행위별로 분해해 보여주는 디자인 전시’를 주제로 시작된 온라인 전시 프로젝트이다. DDP디자인뮤지엄 내 디자인 아카이브 소장품과 근현대 한국디자인 제품 및 광고 이미지를 활용해, 코로나19 발생 전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디자인의 가치(종래에는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큐레이터 오창섭은 전시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 지속 가능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라져 가는 일상을 향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있다. 디자인의 고유한 역량은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실제로 경험하도록 만들어주는 데 있다. 근대적 시공간에서 디자인은 이러한 역량을 통해 일상을 지탱하는 다양한 가치와 꿈, 환상과 이데올로기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왔다.
– 큐레이터 오창섭 –
전시는 코로나19 발생 전 평범했던 일상을 다섯 가지 행위로 나눈다. TV를 보고, 세탁하고, 청소하고, 음식을 보관하고, 음악을 듣는 우리의 일상. 그리고 그 일상에 어떤 사물과 디자인이 함께하는지, 어떤 디자인이 ‘우리의 행복을 구성해 왔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마치 행성처럼 생긴 5개의 섬에서 관객은 ‘Objects(사물들) – Values, Dreams, Ideologies(가치와 환상) – Texts(텍스트들)’로 나뉜 세 가지 항목을 항해하며 일상 속 ‘행복의 기호’들을 탐구한다.
사실 이 전시는 오브제서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가상의 공간에서 ‘관람’하고 ‘사유’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세컨드라이프나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처럼 다른 이용자와의 활발한 ‘상호작용’이나 본인 정체성의 확장인 ‘N개의 자아’로까지 기능하지는 않는다. 참여보다는 여전히 구경과 관람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 측면에서 내용보다는 메타버스적인 형식(가상 공간)이 보다 선취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Hidden Research X Hidden Order
그렇다면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진행된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의 연계 프로젝트로 기획된 모바일 게임 <Hidden Research>는 어떨까? <Hidden Research>는 애플리케이션 <Hidden Order>(티슈오피스 개발)의 이벤트 중 하나이다.
<Hidden Order>는 인류에게 가장 멀고도 가까운 행성인 화성 곳곳을 탐사하는 문화예술 메타버스 세계관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땅인 화성이 그런 것처럼 ‘이용자가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의 모든 일이 가능하다!’를 모토로 하고 있다. 이 메타버스 세계관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이벤트가 열리는데 게임, 전시, 액션, 퍼포먼스, 스페셜 다섯 개로 나뉜다.
이 중 퀘스트 달성 형식의 게임으로 기획된 <Hidden Research>는 숲, 바다, 인공물 총 세 가지 주제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최종으로 획득한 연구일지 3종을 지구(서울시립미술관)에 보내는 과정을 통해 이용자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만든다.
전시 영역에는 월간 <디자인>과 함께한 전시, <다른 이름으로 저장>에서 월간 <디자인>의 사옥을 모티프로 다모, 플로라앤파우나, 신신, 파일드를 비롯한 동시대 여러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했으며 이 중 일부는 NFT 작품으로도 발행했다. 액션 영역에는 <2021 온라인 액션>으로 함께한 문화연대 회원 모집 캠페인이 있다. 퍼포먼스 영역도 상당히 흥미로운데 DJ Seesea, DJ RTRP, 록밴드 가자미소년단 등 다양한 뮤지션이 참여해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믹싱, 파티 등을 공개한다. 마지막으로 스페셜 영역에는 뉴미디어 그룹 닷페이스와 함께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2021’의 포스터를 찾고 무지개 깃발을 얻는 이벤트인 <#우리는어디서든길을열지 포스터를 찾아라!>가 코너로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드넓은 화성에서 플레이어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화·예술적 체험과 더불어 게임을 통해 행성에서 사귄 친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메타버스는 여전히 참여자를 관객으로만 머무르게 했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다. 기존의 대면 행사를 그저 온라인으로만 옮겨 놓은 듯한 전시, 퍼포먼스 등의 기계적 전환은 오히려 참여자를 피로하게 만들기도 하고, 대면이 주었던 희열감만큼은 달성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역으로 그간의 ‘대면 중심’, ‘라이브’ 문화예술의 매력이 그만큼 높았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생각을 바꾸어 메타버스 혹은 온라인 전시를 대체재 아닌 전환 시대로 옮겨가는 새로운 상상력, 즉 또 하나의 예술적 실험으로 보면 어떨까? ‘구관이 명관이다’란 관용어구가 증명하는 것처럼 비교 지점을 설정하는 건 필연적으로 ‘현관의 한계’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비교보다 새로운 형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비유를 먼저 떠올리는, 이전 것의 향수보다 새로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접근법을 제안한다.
메타버스가 ‘트렌드’로 호명되는 시대다. 마치 하나의 유행처럼 미디어 곳곳에서 사람들 사이의 놀잇감이자 하나의 밈(meme)으로서, 또는 특정 산업군의 미래로 그려지며 소비되고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유행을 좇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유행을 경계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을 반동적이라고 봐야 할까?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통찰했던 미시사회학의 대가이자 사상가 게오르그 짐 멜(Georg Simmel)은 <유행의 심리학. 사회학적 연구>에서 유행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
그는 이 글을 쓸 당시, 유행을 따르는 주체가 ‘상류층적’일 수밖에 없다고 계층적 한계를 명확히 명시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그의 논의를 조금 빌려와 메타버스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메타버스는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며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기까지 하다. 그럼 이 대유행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까. 아마 양가적이고 입체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여전히 현실 세계보다는 모자란 듯한 아쉬움일 수도 있고, 또는 현실 세계보다 더 자아실현에 근접하거나 뛰어난 가상 세계를 경험하면서 이것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일 수도 있다.
문화예술 플랫폼에 국한시켜 본다면, 여전히 실제 전시보다 떨어지는 체험과 현장감, 기존의 예술이 탐구하지 못한 새로운 예술적 체험이자 실험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짐멜이 통찰했듯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만의 언어를 발굴하고자 하는 ‘개별화’와 메타버스라는 메가 트렌드가 야기하는 ‘사회적 충동’이 교차돼 있다는 점이다. 그 경계 아닌 경계 속에서 우리는 메타버스를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