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책과 관련한 기사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통계가 바로 2011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격년으로 조사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7년도 조사에 따르면, 1년간 잡지, 만화, 수험서, 학습참고서를 제외한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이 성인 59.9%, 학생 91.7%로 나타났다. 이는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40.1%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출판계 및 학계, 언론계는 매년 꾸준히 떨어지는 독서율을 지적하며 출판의 미래를 점쳐보곤 한다.

 

지난 2019년 12월에 <tvN Shift(티비엔 시프트)-책의 운명> 편이 2회에 걸쳐 방영됐다. 출연자 김영하 작가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작가와 학자를 찾아가 (종이)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돌아왔다. 프로그램 속의 유럽도 예전과 다른 출판과 독서 환경에 적응하거나 대응하고자 각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다양한 전문 서점이 존재하고, 사람들도 책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비쳤다.

 

필자는 독서 진흥을 위한 시민 단체에서 일하면서, 2019년 9월 23일에서 25일, 3일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Read의 연간정기회의(Annual General Meeting)에 참관 자격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독서와 출판의 미래를 점칠 때 빠짐없이 묻게 되는 것이 바로 해외 사례, 특히 유럽의 현재다. 유럽인의 책과 독서를 위한 방향이 어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몇 발자국 앞서 나아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한 마음과 많은 것을 배우리라는 다짐으로 회의에 참여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유럽 인구의 독서율 상황,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이뤄지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연대와 노력을 공유하고자 한다.

 

EURead는 무슨 단체인가?

우리에겐 생소한 EURead라는 유럽 연합 단체가 있다. 2000년에 설립된 EURead는 오늘날 미디어 중심적인 다문화 사회의 참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써 읽기(reading)를 중시하는 유럽 독서 진흥단체의 컨소시엄이다. 회원으로는 벨기에, 영국, 체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덴마크, 포르투갈, 스페인 및 터키의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새로운 국가의 회원 단체를 지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개별 회원 기관(단체)의 성격과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지만, 독서 진흥 전략에서는 분명한 유사점들을 지닌다. 이들은 EURead를 통해 함께 교류하고 공동 캠페인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 독특한 유럽 전문위원회의 목표는 지식・경험・개념을 교환하고, 읽기 촉진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EURead는 정기적으로 만나 정치인, 산업 및 상업을 위한 체계적인 로비를 조직한다. 이는 독서 진흥을 위한 국가 및 유럽 수준의 강력한 구조적 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을 높인다. 2014년, 독일 독서재단(Stiftung Lesen/German Reading undation)의 요그 마스(Joerg F. Maas) 박사가 EURead 의장직을 인수하였으며, 영국 북트러스트(BookTrust)의 CEO인 다이애나 제럴드(Diana Gerald)와 독일 독서재단의 CEO인 겔리엔 반 달렌(Gerlien van Dalen)은 EURead의 공동 의장이다.

 

유럽과 문맹의 문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21세의 나이에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의 뇌샤텔(Neuchâtel)에 정착하는 망명길을 떠났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충격적이며 뛰어난 서사로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작가의 모국어가 아닌, 망명 후 어렵게 배운 프랑스어로 쓴 작품이다. 이주민인 그가 성인이 되어 타국의 언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쉼터 내의 학교에서 언어교육을 제공해주지만 어린 딸 때문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자전적 소설 『문맹』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스위스에 도착하고 5년 후, 나는 프랑스어로 말을 하지만 읽지는 못한다. 나는 다시 문맹이 되었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던 내가 말이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 (한겨레출판) 중

 

유럽은 육로를 이용해 여러 나라를 비교적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지닌 만큼, 오랫동안 이민의 역사가 이어졌다. 이에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이민자의 문맹률 문제는 현재의 유럽이 여전히 가진 큰 숙제다.

 

2012년 9월 교육문화총국(DG EAC)이 발표한 문해력 최종 리포트(EU High Level Group of Experts on Literacy Final Report September 2012)에 따르면 유럽의 15세 아이 중 5분의 1이 낮은 독해력을 가졌으며, 12.8%의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20년까지 미숙련 직업이 30%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EURead는 2018년 11월 대대적인 캠페인 <Europe Reads>를 시작하였다. 하나는, 읽기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 영상의 제작 및 배포다. 매일 15분 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자는 내용의 캠페인 영상을 공유하며, 이를 각국의 언어로 편집하고 배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 다른 캠페인 활동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독서 진흥 지지를 청원하는 서명을 모으는 Europe Reads 캠페인 북이다. 이 캠페인 북은 유럽 각국의 독서 진흥단체들을 여행하듯 돌며 해당 국가의 정치인 등 주요 인물의 서명을 촉구한다. 또한, 유럽의 주요 독서 진흥단체들이 현재 활동하는 독서 진흥운동의 자료를 사진, 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모으는 컬렉션 북이기도 하다.

제5차 EURead 연간정기회의 (5th Annual General Meeting 2019)

2019년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EU 본부가 위치한 유럽의 중심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 내에 활발히 활동 중인 약 50여 곳의 독서 진흥단체가 모였다. 사전에 참석을 알린 유럽 21개국의 국가 산하기관 및 시민단체가 자리에 함께했다. 더불어 일본 북스타트(Bookstart Japan), 한국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독일 업체와 협업 중인 중국의 학습용 로봇개발업체 링 테크놀로지(Ling Technology) 등 일부 아시아권의 단체와 기업도 참여하였다. 유럽의 주요 독서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본 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듯 현장에서 추가로 참여를 신청하는 곳들이 몇 있어, 추가 좌석을 마련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올해 회의의 주제는 <유럽을 다시 읽게 하자 – 캠페인과 프로그램(Get Europe reading again – Campaigns and Programs)>이다. 첫날은 유럽 의회 및 유럽 위원회 주요 인사의 인사말, EURead 의장인 마스 박사가 소개하는 EURead의 활동과 과제, 케이스 스터디로 시작됐다. 독일의 리서치 회사인 아이콘키즈&유스(iconkids&youth)의 악셀 다미어(Axel Dammier) 디렉터가 독일의 비독자 가정과 이들의 미디어에 대한 관점에 대해 발표했고, 스페인 기반의 B to G 전자책 플랫폼 오딜로(ODILO)의 CEO인 로드리고 로드리게스(Rodrigo Rodriguez)는 규모에 맞는 지적인 읽기와 쓰기의 해결: 유럽 국가 케이스 스터디를 발표했다. 둘째 날인 24일은 <Europe Reads>을 주도한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출신의 캠페인 담당자들이 터키, 스페인 단체의 참여 사례 공유와 함께 캠페인 북의 진행 상황 및 성과를 나눴다. 더불어 참가자들이 실제 캠페인 북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캠페인의 주 담당자인 네덜란드의 단 베이커(Daan Beeke)가 캠페인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2020년 연간회의의 주요 안건인 각국에서 펼쳐지는 독서 진흥을 위한 도서 증정 프로그램(Bookgifting program)의 현황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스위스, 벨기에, 아일랜드, 폴란드, 영국, 스코틀랜드, 핀란드의 단체가 진행하는 북기프팅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하고 실질적인 사례가 오갔다. 오후 시간에는 책 읽어주는 로봇 루카(Luka),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의 <유럽 책의 날> 제안, 네덜란드 읽기쓰기재단(The Dutch Reading & Writing Foundation)의 ‘삶을 위한 언어: 저문해력 접근을 위한 예방 및 큐레이션 협력’ 프로그램 등이 소개되었다.

 

1, 2일 차 모두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주최 측이 단체 간의 자유로운 네트워킹을 위해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각국 독서 운동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본 회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더욱 자세한 각각의 국가의 상황과 사례를 나누는 자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3일 차는 재정 및 멤버 구성, 2020년 액션 플랜 결정, 2019년 행사 리뷰 등을 진행하는 EURead의 회원처 한정의 연례총회와 오후의 문화기관 방문 일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처음 회의에 참석했을 때 유럽의 앞서 나간 독서 교육과 운동의 사례를 알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이와 달리 전반적으로 많은 국가가 더 깊게 읽는 단계로 넘어가기보다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낮은 문해력을 지닌 이들을 향해 교육과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생활과 교육에 필수적인 기본 문해 교육을 살리는 것이 다시금 국가적 차원의 중차대한 일이 된 것이다. 이틀간의 세션 동안 이민자・저학력 부모 및 자녀의 문해력 증진, 새로운 읽기 학습 도구, 읽기 능력 증진을 위한 각국의 실질적 프로그램 및 사례 및 고민이 끊임없이 오갔다. 열띤 질문과 토론이 오가는 중 ‘올해의 PISA 결과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결과 후에 다시 토론하자.’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었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PISA란 또 무엇일까?

 

PISA 결과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2019년 12월 3일 발표되었다. PISA는 OECD가 주관하는 국제 평가다. 2000년 이래 3년 주기로 의무교육의 종료 시점에 있는 만 15세 학생의 읽기・수학・과학적 소양(literacy)의 성취 수준을 평가하여 각국 교육의 성과를 비교하고 점검한다. 2018년 PISA는 전 세계 79개국(OECD 회원국 37개국, 비회원국 42개국)에서 약 71만 명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190개교의 총 6,876명(중학교 34개교 917명, 고등학생 154개교 5,881명, 각종학교 2개교 78명)이 참여했다.

 

2019년 12월 3일 발표된 PISA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학생은 골고루 최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읽기 영역에서 12년 연속으로 평균 점수가 하락했다. 한국 학생의 읽기 평균 점수는 첫 참가 해인 2000년 525점으로 시작해 2003년 534점, 2006년 556점으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그 후 2009년 539점, 2012년 536점, 2015년 517점, 2018년 514점으로 연달아 하락 중이다. 특히 한국 학생의 만화·소설·비소설을 읽는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높았지만, 신문·잡지를 읽는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낮았다. 또한, 온라인 채팅·뉴스 읽기 비율은 OECD 평균과 유사했으나, 온라인 토론 참여 비율은 평균보다 떨어졌다. 국가별 비교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9위로 상위권이긴 하지만 중국, 싱가폴, 마카오, 홍콩 등 중국권 국가들이 1~4위를 휩쓴 점이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유럽인의 문해력 증진을 위한 유럽국가단체의 연합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가장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자 하는 부분은 우리나라의 독서 문화다.

 

한국은 학력과 문해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은 나라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보다 월등하게 문해 능력이 높지 않다. 통계상의 학력 수준과 문해율 상승 사이에 연관성이 약하다면 1960년도에 도달한 의무교육 취학률 98%, 현재의 대학 진학률 70%라는 통계 숫자는 뭔가 어색하다. 문해율의 세대별 격차도 매우 크다. 2002년에 발표된 OECD 조사에서 16~24세 연령대의 실질 문해율은 22개국 중 3위이지만, 55세에서 65세 사이 한국인의 실질 문해율은 조사대상 22개 나라 중 최하위권인 20위다.

– <문맹률과 문해율> 노명우, 경향신문 2018.01.02

 

학생들의 깊게 읽기와 토론 능력도 매년 하락하고 있고, 성인 독서율도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독서율 또한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읽는 사람은 더욱 많이 읽고, 읽지 않는 사람은 1년도 1권도 읽지 않는 차이가 더더욱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유럽보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독서 운동은 낮은 문해력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가정이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 반복하는 삶의 고리를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라는 캠페인으로 끊으려 한다. 우리도 단순히 도서 판매량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읽지 않는 사회가 되었을 때의 우려되는 현상을 좀 더 폭넓은 상상력으로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한 방지법과 대처법의 준비도 필요하다. 다가올 이 미래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할 더 많은 독서운동가, 단체가 생겨나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유럽의 국가들은 EU의 경험을 통해 각국 상황에 맞게 각 단체별로 활동한다. 그와 동시에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캠페인을 통해 공동의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한국의 독서 운동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 및 단체도 힘든 여정을 지속하느라 외롭지 않도록, 공감하고 연대하고 토론하는 공론과 소통의 자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더 나아가는 AsiaRead와 같은 네트워크가 생성되어 책 읽는 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