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e 이수정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축제는 샐러드 볼(Salad Bowl)이다. 당근과 양상추, 토마토가 조리 없이 그대로의 맛을 유지한 채 서로 조화롭게 하나의 요리가 되는 샐러드 볼. 다문화사회의 이론으로 등장한 이 용어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그리는 축제의 현장을 가장 잘 드러낸다. 2018년, 프랑스 뮤지션 키드 프랑체스콜리(Kid Francescoli)가 한낮의 무대에서 최신 프렌치 팝을 노래하는 동안 한 손엔 막걸리병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허공을 휘저으며 앉아서 춤을 추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무리를 보았고, 2019년에는 노래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고석정이 더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삼삼오오 입장한 철원 군민들을 만났었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라이프스타일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춤추고 환호하는 SCR 분수 무대는 샐러드에 드레싱을 뿌리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피스트레인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큐레이션은 다양함과 발견에 조금 더 힘을 쏟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관객층을 위한 아티스트를 모아보고 시대가 열광했던 음악을 존중하며 세상에 숨겨진 좋은 음악을 발견하는 것. 프로그래밍과 섭외가 언제나 100%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현실이지만 최선을 다해 그려낸 세 번째와 네 번째 큐레이션 속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GATHER!
피스트레인에게 영국은 프로그램 부분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나라다. 올해도 세 팀의 뮤지션이 영국에서 철원으로 날아온다. 인디, 디스코, 팝, 록을 찰떡같이 버무려 들을 때마다 기분 좋은 피클 프렌즈(Fickle Friends)와 영국 록 씬에서 가파르게 떠오르고 있는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더 블라인더스(The Blinders), 2018년 뉴튼 포크너(Newton Faulkner)에 이어 기타 한 대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 싱어송라이터 케리 와트(Kerri Watt)다. 인디 씬에서 2020년에 가장 사랑받는 밴드 사운드를 구현하는 팀들도 있다. 밴드 설(SURL)과 교정, 그리고 일본 출신의 카네코 아야노(カネコアヤノ)다. 세 팀 모두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일상과 청춘의 감성을 탁월하게 전달하니, 6월의 여름 바람과 만난 노랫소리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을 테다.
백현진과 김오키는 2018년과 2019년에도 피스트레인 무대에 등장했다. 다만, 자신들의 이름을 건 무대가 아니라 가수로, 연주자로 참여했다. 올해 피스트레인에서는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이 두 아티스트의 개별 무대를 만날 수 있다. 마치 연극을 한 편 보는 듯한 백현진의 드라마틱한 공연과, 얼터너티브 재즈의 최전선에서 자유로운 그루브를 마음껏 발산하는 김오키의 공연이다.
그리고 여기에 문제적 뮤지션이 있다. 10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동시에 무대에서 놀라운 아우라를 뿜어내는 창모와, 90년대 대중가요에 한 획을 그었던 그 당시 국민가수 디제이 디오씨. 멋진 과거와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들을 피스트레인에 세우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2016년에 발표한 음반이 문제가 되었던 창모는, SNS에 사과글을 게시하고 해당 곡들을 음원 사이트에서 삭제했다. 지금 그 곡들은 공식적인 음원 서비스에서는 들을 수 없다. 이후에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만한 음악적 행보를 보인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디제이 디오씨 역시, 그들이 일으킨 많은 논란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90년대 디제이 디오씨가 음악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공헌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하복도 반바지를 못 입었고, 직장인은 모두 넥타이에 정장만을 입어야 했으며, 머리를 삭발하면 범죄자 취급 받던 시절에 대중의 인식을 바꾼 <DOC와 춤을>.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 자신을 만들어 봐요 /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춰요 /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 /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 / 다 같이 춤을 춰 봐요’라는 가사는 지금, 피스트레인을 찾는 남녀노소 관객들 모두에게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오랜 논란과 과거의 영광 사이에서, 피스트레인은 아티스트를 검열하고 배제를 우선으로 하기보다 문을 열어두기를 선택했다. 아티스트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피스트레인의 관객들과 무대에서 진심으로 교감하며 성찰하게 되길 바란다.
WORLDWIDE BEAT
장르의 확장은 뮤직 페스티벌의 과제다. 일반적인 대중음악 페스티벌에서는 흔히 볼 수 없지만, 무대에 올렸을 때 누구나 들어도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들. 헝가리의 파노니아 올스타즈 스카 오케스트라(Pannonia Allstars Ska Orchestra)는 동유럽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자메이카의 스카와 융합하여 페스티벌의 무대를 들끓게 할 것이다. 누구나 춤 추기 쉬운 이 스카는 한국의 레게 밴드 쿤타 & 루드페이퍼(Koonta & Rude Paper)로 이어져 유럽-아시아-미대륙을 잇는 글로벌 스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음악씬에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뮤지션 두 팀도 라인업에 올라있다. 애니멀 다이버스(Animal Divers)와 키라라(KIRARA)다. 애니멀 다이버스는 핸드팬과 디저리두를 활용하는 밴드로, 월드뮤직의 언어를 기타와 함께 일렉트로닉 사운드 위에 얹음으로써 자연과 더욱 어울리는 전자음악을 구현했다. 이렇게 고조된 분위기는 키라라의 빅비트로 폭발한다. 모두가 이쁘고 강해지는 키라라 특유의 전자음악 튠은 관객의 발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리라. 여느 때보다 크게 기대되는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조합들도 있다. 알앤비/힙합 아티스트 제이클레프(Jclef)와 실험적인 힙합 아티스트 김아일의 무대. 서울 중심가 클럽에 가지 않고서도, 실험적이어서 매력적인 이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거기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남매 힙합 그룹인 릴체리 & 골드부다(Lil Cherry & GOLDBUUDA)의 공연이 있다. 독특한 컨셉과 음악 스타일을 가진 이 남매가 어떻게 무대를 휘저어 놓을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더욱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피스트레인을 위해 특별히 결성된 프로젝트들을 소개한다. 하우스 밴드 그루브 트레인(Groove Train)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시대의 명곡들을 편곡하여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와 함께 관객을 가만두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서울의 DJ 씬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온 믹스믹스 티비(MIXMIX TV)와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가 30여 년 간의 대한민국 디제이 씬을 소개할 특별한 세트들을 준비 중이다.
올해의 프로그래밍과 섭외는 다른 어떤 때보다 어려웠다. 후보군에서 최종적으로 함께 하지 못한 아티스트들의 이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니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아티스트 큐레이션의 원칙을 최선으로 지키도록 노력했다. 자기 확신과 색깔이 분명하고, 무대에서 최대치를 발현할 뮤지션. 우리 모두가 축제의 현장에서 말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평화를 감각할 수 있도록, 이 뮤지션들과 함께 관객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