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도서관은 단순한 책 보관소를 넘어 시민 간의 소통을 촉진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자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 국내 최초 미술 특화 도서관인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기획 단계부터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어졌으며 네덜란드 DOK 도서관은 “사람이 컬렉션이다”란 모토 아래 거대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됐다. 핀란드 오디 도서관은 DE&I 가치를 적극 실현하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도서관을 지향한다.

▪ 이처럼 공공도서관은 한 도시가 어떻게 구성원들을 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자 시민들의 놀이터, 도시를 대표하는 하나의 도시관(觀)이 되었다.

 


 

도서관만큼 용도가 명확한 공간도 없다. 책을 읽고, 빌리고, 보관하는 곳. 도서관을 영어로 하면 “library”. 라틴어 liber(나무껍질)에서 유래했다. 나무껍질인 파피루스는 고대인에게 곧 책과 같았다. 즉 어원적으로 따져 본다면 도서관은 파피루스, 책을 위한 장소이다. 오늘날 독서 인구가 감소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도서관은 도시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특히 공공도서관은 과거와 달리 단순히 책을 중심으로 한 지식정보센터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시민 간의 느슨한 연결을 촉진하고 양질의 문화 혹은 예술적 체험을 제공하며 작업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 공간을 개인의 것이라고 사유화할 수 없기에 시민의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며 도서관만의 철학으로 어떻게 한 도시가 내부 구성원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지 역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도서관은 하나의 도시관(觀)이 될 수 있다. 도시가 시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민이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렇게 도서관은 그렇게 단순 책 보관소가 아닌 도시의 새로운 거실이 된다.

 

최근 도서관의 고답적 정체성에 반기를 든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통적 이미지와 역할로는 지식 기반 사회, 디지털 패러다임과 모바일 환경, 고령사회, 4차 산업혁명 기반의 초연결사회에 대처하기 어렵고 지역 주민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는 인식이 그 배경이다. 이러한 인식은 도시 재생 전략과 맞물려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라며 공공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을 재해석,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 윤희윤, 『도서관지식문화사』, 동아시아, 2019

 

부와 정치의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요즘이기에 지식·정보를 공유하는 공공도서관 역할의 다변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렇지만 책을 벗어난 도서관이 과연 효과적일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라는 슬로건을 필두로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끝을 고하는 4차 산업혁명을 기계적으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의 책무는 유기한 채 기계적으로 시류에 편승하려는 이런 태도의 구체적 예는 다음과 같다. AI 사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가 디지털 설문 문항에 응답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도서를 추천해 주는 식, 이용자가 VR로 문학 작품을 열람하며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식 등. 때로는 과연 이러한 서비스가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AI로 인간 사서의 전문성을 대체하고 인간의 고유 상상력마저 VR에 의존하는 행태가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AI의 지배보다 맹목적인 AI 의존으로 인한 인류 소멸이 더 걱정된다는 한 AI 전문가의 통찰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피상적 진화이자 종래로의 퇴보가 아닌, 태생적으로 도서관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며 만들어진 현대의 공공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목적이 약자들의 보호와 주권 행사의 구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공공도서관은 분명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가 키워 온 문명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말했듯 말이다. 이 글은 어떻게 보면 도서관의 단순한 진화를 기록한 글이 아니다. 공공도서관이 우리 공동체를 건강히 붙드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은 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도서관이란 명칭을 최초로 부여한 건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내부 복원도 ⓒ 위키피디아
핀란드에 위치한 오디 도서관 외관 ⓒ 오디 도서관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 의정부미술도서관

2019년에 개관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국내 최초 미술관과 도서관이 함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개관하자마자 오픈스페이스를 표방한 특유의 감각적인 공간감으로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덕에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명실상부 관광객과 문화·예술 단체 등을 끌어당기는 의정부의 랜드마크가 됐다. 미국 메사시, 일본 시바타시, 중국 단둥시 관계자들이 필수 코스로 찾았으며 작년 11월 동남아 10개국 도서관 사서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정부미술도서관이 진정으로 유의미한 이유는 세계인의 이목 이전에 철저히 시민이 중심이 된 배경에 있다. 도서관이 뿌리를 내린 의정부시 시민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으며 시민이 원하는 창조 활동의 뿌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서관 기획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자료 『도서관, 건축에 길을 묻다』에 따르면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건립 이전 지역적 여건 분석과 시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미술 분야를 특성화하기로 했다. 의정부는 창작 및 예술 관련 서비스업의 특화 지수가 타 지자체에 비해 높게 나타났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시설이 적었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 있으나 공립 미술관 부재 등으로 시민의 문화 향유를 위한 시설이 드물었다. 특히 건립 부지인 송산동 지역에는 공공도서관 및 문화시설이 전무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에 더해 송산동 주민 54.5%가 도서관 특성화 분야 중 문화·예술을 선호했고 의정부 시민 전체의 49.7%가 이를 지지했다. 기관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의정부란 도시가 지닌 고유의 특성과 주민들의 의견이 더해져 지금의 “미술 X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의정부미술도서관을 그저 지역 문화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훌륭히 구현된 공공건축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오랜 기간 의정부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시민을 위한 도서관이 어떠해야 할지 고민해 온 한 사서의 전문성이 주효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바로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운영과 과장의 이야기다. 28년 차 공공도서관 사서(사무관)이자 문헌정보학 박사인 그녀는 2004년부터 2021년까지 해외 28개 도시에 있는 70개 도서관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도시 내 도서관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 빌리는 공간이 아닌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건축공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일본의 한 공공도서관에 간 적이 있어요. 당연히 우리 도서관 구조와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자료실 열람실 구분 없이 큰 공간만 하나 있었죠. 어린이 자료실과 종합 자료실의 구분조차 없었어요. 한쪽에선 엄마가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다른 쪽에선 어른들이 소설을 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입구에선 음악 공연까지 열리고 있었어요.

–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운영과 과장

 

다닥다닥 붙은 칸막이 테이블, 숨소리조차 편히 낼 수 없는 열람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눈치를 주는 사람들, 성인과 어린이 도서관이 엄격히 구분된 폐쇄성이 기본인 우리나라 도서관과는 상이한 풍경이었다. 20년 넘게 사서로 근무해 온 그녀는 도서관의 밀폐된 공간이 이용자들을 예민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고민 끝에서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상징인 오픈 스페이스가 탄생했다.

의정부미술도서관 전경 ⓒ 의정부미술도서관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오픈 스페이스 ⓒ 의정부미술도서관

의정부미술도서관에서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만남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물리적으로)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벽과 칸막이를 최소화하고 로비(현관), 복도 등의 공용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제로에 가깝게 설계했다. 이를 통해 전체 면적의 25%가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활용되지 않은 죽은 공간)가 될 수밖에 없는 기존 도서관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층별 간 이동도 유기적으로 설계했다. 1층부터 3층을 연결하는 원형 계단은 도서관의 이용자가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참고로 1층은 미술 특화 영역으로 전시실, 미술 전문 자료 열람실, Customer Service Desk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공공도서관 역할의 자료열람실, 3층은 미술 작업실, 오픈 갤러리, 다목적실,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기능상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은 자칫 물리적으로 분절될 수 있다. 이 세 공간을 연결하는 원형 계단이 이를 완화하며 도서관 구석구석을 느슨하게 이어준다. 박영애 과장이 말하길 중앙의 원형 계단은 전체 공간을 한 번에 인지할 수 있게 해주며 개방성을 표방하는 도서관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곳은 도서관일까 미술관일까? 도서관은 두 가지 정체성을 조화롭게 융합하려고 신선한 발상으로 배열을 시도했다. 작품 보관을 위한 수장고 외에도 1층에는 전시 공간과 미술 전문서가 공간이 함께 자리해 있다. 3층에는 지역 신진 작가의 작업 공간인 오픈 스튜디오가 있는데 이용객은 스튜디오 유리 벽을 통해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여기서 탄생한 작품으로 1층 전시장에서 기획 전시를 열기도 한다.

 

보관 서적도 특화되어 있다. 미술, 건축, 디자인 등 예술 전문 서적 1만여 권과 예술 전자책 등 예술 디지털 콘텐츠 1,600점 역시 갖추었다. 도서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들이 주요 미술관에서 공수한 도록도 대거 확보했다. 1층 한가운데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빅북(DAVID HOCKNEY: A Bigger Book)을 펼쳐놨다. 세로 1m, 가로 1.4m에 달하는 이 책의 가격은 400~500만 원. 전 세계적으로 총 9천 부만 제작·판매된 한정판이다. 이처럼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해외 원서와 국내외 주요 미술관 도록이 1층 서가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보유 장서 4만 3천 여권 중 무려 4분의 1 이상이다. 미술 애호가로도 알려진 방탄소년단 리더 RM의 기증 도서도 3층에 비치되어 있다.

 

한 명이 모든 걸 바꿀 수 없고 모든 공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개인은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위와 같은 특화 전략을 공표하며 단순 공공도서관이 아닌 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문화를 제공하고 예술가에게는 창작 활동의 발판이 되었다. 박영애 과장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 관람이라는 단순한 접근법에서 벗어나 “의정부시의 예술문화 자원을 도서관과 융합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서관으로 그 가치를 확장”하고자 한다.

1층에 전시되어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빅북 ⓒ 한경
“그림은 어렵지 않아요. 바로 저희 곁에 있습니다!” BTS RM(본명 김남준) 기증도서 ⓒ 의정부미술도서관

 사람이 곧 컬렉션: 네덜란드 DOK 도서관

네덜란드 델프트(Delft)에 위치한 디오케이(DOK) 도서관은 네덜란드 내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도서관으로 꼽힌다. 책이 아니라 “사람이 컬렉션이다”라는 모토 아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는 즐거운 도서관을 표방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 이론가인 켄 워폴(Ken Worpole)은 “도서관은 특정 종교나 의견 등 배경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직한 공공도서관의 모습을 도시의 거실에 비유한다. DOK 도서관도 이를 지향한다. 일단 지리적으로 델프트 내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최대 번화가인 문화 광장에 자리했다. 주위에는 비디오 게임방, 레스토랑, 카페 등 상업지구와 거주지가 있다. 홀로 떨어졌다기보다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교차로 한가운데에 놓인 셈이다.

 

특기할 점은 DOK 도서관이 지역 커뮤니티보다 개인을 더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한국인 건축가 3명이 영국·네덜란드 도서관을 분석한 책 『슈퍼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네덜란드 도서관 정책은 영국과 달리 지역 커뮤니티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보다 개인의 다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이 요구하는 서비스 및 미디어의 다양한 기능을 담기 위한 (도서관) 공간 계획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주보다 이주가 잦은 도시민의 유동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고향이자 세계적인 델프트 공대가 있는 이 도시는 유동 인구가 많고 창의적이다. 하루에 연간 백만여 명이 찾는 작지만 빠른 도시로 지역 커뮤니티보다 한 개인의 복합적인 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 지원이 우선시된다.

 

편의상 DOK 도서관이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도서관의 정확한 명칭은 DOK 라이브러리 콘셉트 센터이다. DOK의 D는 디스코텍(Discotheek, 음악·영상과 함께 춤추는 공간), O는 도서관(Openbare Biblotheek), K는 아트센터(Kunstencentrum)로 로비에서는 공연과 전시가 열리고 디스코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지식정보센터가 아닌 문화·예술 활동이 총망라된 복합문화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네덜란드는 이처럼 자국의 공공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도서관을 건설하기보다 박물관, 미술관, 아카이브센터, 콘서트홀을 한데 뭉쳐 마치 백화점 같은 공간을 건설한다. 소프트웨어적으로 정적이고 정숙한 공간이 아닌 활기차며 역동적인 공간을 추구한다. DOK도 이런 네덜란드 도서관 정책을 따랐다. 사명과 모토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도발적이다. 사명은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도서관을 창출 및 유지한다.” 모토는 “델프트에서 세계를 빌려라”이다. 운영 지침도 꽤 재밌다.

DOK 도서관 외관 ⓒ dokarchitecten

모두에게 헌정하다: 핀란드 오디 도서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위치한 오디(Oodi) 도서관 중앙 나선형 계단에는 <헌정>이라는 미술작품이 놓여있다. 오디(Oodi)는 핀란드어로 헌정을 의미한다. 독립을 위해 싸운 국민에게 국가가 (도서관을) 헌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그 국민은 누구일까? 모두이다. 작품에 새겨진 것처럼. 주근깨가 있는 사람, 봉사자, 마조이스트, 이주민, 괴짜, 소외된 집단, 기업가 등 이 모두가 해당된다. 도서관은 모두를 환영하며 출신, 나이, 부, 성별, 성향 등 기타 요인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모든 이의 것임을 이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도서관은 누구나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해 필요한 것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계단에 새겨진 이 용어들의 순서는 무작위이다. 나선형이기에 어디가 처음이고 끝인지도 알 수 없다. 용어들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서로 가깝거나 멀다. 그 다양한 연결과 관계성을 해석하는 건 언제나 그렇듯 관람객의 몫이다.

 

핀란드는 적극적으로 도서관법(Finish Library Act)을 운영한다. 2013년 국제공모 당선작인 오디 도서관도 이 정책을 적극 고려해 설계됐다. 도서관법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평등을 발전시킨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핀란드 도서관법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사람이 교육과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 
  • 정보의 가용성 및 사용 
  • 독서 문화와 다재다능한 문해력 
  • 평생 학습 및 역량 개발 기회 
  • 적극적인 시민의식, 민주주의 및 표현의 자유  

 

얼핏 들어보면 다른 도서관에서도 추구할 법한 목적이라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핀란드의 도서관법은 다음 항목에 근거한다. “2항-(2) 이러한 목적의 실행은 공동체 의식, 다원주의 및 문화적 다양성과 같은 가치에 근거한다.” 오디도서관 사서 하르 아닐라(Harri Annala)는 THE LIVERARY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핵심 가치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의했다. “당신 모습 그대로 오세요(Come as you are).”

 

당신이 어떤 정체성을 지녔든 오디 도서관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안전한 공간이다. 이를 위해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가치를 적극 실현하고자 다음의 전략을 택했다. 1층 대형 스크린에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수칙”이 적혀 있고 인종차별과 각종 차별은 설 자리가 없음을 명시했다.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서가와 전시 서가는 휠체어 이용자도 쉽게 다닐 수 있도록 간격이 넓다. 창문에는 새 충돌을 막고자 하얀색 무늬를 넣었다. 열람실에는 유아차 주차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성 중립 화장실도 있다.

 

오디 도서관은 2013년 공모를 통해 선발된 핀란드의 대표 건축회사 ALA아키텍츠가 건축을 맡았다. ALA 아키텍츠는 국내 건축 잡지 SPACE와의 인터뷰에서 세세한 기능이 정해진 도서관보다 유연한 건물을 창출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복합 문화시설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3개의 층에는 3개의 다른 분위기로 구성해 공간의 입체성을 살렸다. 1층은 친밀함을 자아내고자 영화관, 카페, 전시장 등이 있다. 2층은 소통과 연결을 도모하고자 각종 작업 스튜디오, 게임방, 회의실 등이 있다. 3층은 서가로 그야말로 독서광의 천국이다. 원 없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3천 권이 넘는 서적과 거대한 통창의 유리 벽을 설치해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온다. 여기에 서면 헬싱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담이지만 초기 설계안에는 사우나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식 목욕탕에서 영감을 얻은 이 사우나는 이용자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토론하는 걸 상상하며 디자인했다고 한다. 비록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측면이 도서관을 시민들의 거실로 만들고자 다양하게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도서관 외관도 이런 부분을 세심히 고려했다. 처마를 연상케 하는 끝이 솟은 지붕은 도서관 전체를 감싸며 부드럽게 물결친다. 건물 전면은 핀란드산 전나무와 소나무로 지어, 부드러운 목재의 질감으로 시민들을 끌어당기며 그들을 품는다. 그 결과 오디 도서관은 개관한 지 1년 만에 2019년 국제도서관연맹이 선정한 최고의 공공도서관으로 선정되며 빛을 발했다.

오토 카르보넨(Otto Karvonen)의 작품 <헌정>(Omistuskirjoitus) ⓒ 오디 도서관
오토 카르보넨(Otto Karvonen)의 작품 <헌정>(Omistuskirjoitus) ⓒ 오디 도서관

최근 우리나라 서울시에서도 재밌는 독서 행사가 열렸다. 도서관을 벗어난 도서관이란 컨셉으로 “책읽는 서울광장, 책읽는 맑은냇가, 광화문 책마당” 등 서울광장, 청계천, 광화문에서 책을 읽는 야외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도서관은 정숙하고 조용하며 실내여야 한다는 기존의 상식을 깬 혁신으로, 독서하는 시민이 있다면 그곳이 도서관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결과다. 반면 작년 5월 서울 마포구에서는 SNS에 도서관 예산 삭감 비판 글을 올린 마포중앙도서관장을 파면 조치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참고로 마포구청은 2022년 구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9곳을 폐관하고 독서실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서관은 단순히 책이 있는 곳이 아니다. 시민이 있는 곳이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도시의 거실이다. 슈퍼마켓처럼 언제든지 드나들며 카페처럼 소통할 수 있는 도서관을 꿈꾸는 『슈퍼 라이브러리』의 저자는 도서관의 공공성이 추구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서관의 웅장함이나 수려한 미관에 앞서 도시의 공간 구조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용을 가능하게 하면서 어떻게 공공성을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질문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나 홀로 아파트와 같이 우리 일상에서 동떨어진 도서관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없고, 닫힌 공간에서 주입식 공부를 하는 현재의 폐쇄적이고 낙후된 공간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

– 신승수 외 지음, 『슈퍼 라이브러리』, 사람의무늬, 2014

 

이쯤 되면 공공도서관은 단순히 서가를 보관하고 대여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가 시민을 얼마나 고려하고 품는지를 진단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자 희망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도서관을 꿈꾼다. 이를 통해 우리가 서로 환대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