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5일간 약 15만 명 방문이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얻었다. 정부의 지원 없이도 큰 성공을 거둬 독자가 살린 도서전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 도서전을 성황리에 치르게 된 배경에는 독서에 부쩍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국내외 MZ세대, 팝업스토어+북톡+북스타그램 등을 즐기는 책 놀이문화, 한국문학으로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여성 독자들의 활발한 참여 등이 있었다. 

▪ 개성 넘치는 출판사 부스 외에도 토스의 “더 머니 북 스토어”, 밀리의 서재의 “밀리 독서 연구소” 등 책을 매개로 브랜드의 이야기를 풀어낸 브랜드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국제도서전이 코엑스에서 열렸다. 총 19개국이 참여해 작년보다 참가국은 줄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도 없었다. 이에 따른 우려와 달리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의 기간 동안 약 15만 명이 다녀갔다. 도서전이 끝나기 전날인 토요일에는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사전 예매를 하고도 현장에서 실물 티켓으로 교환하기까지 한두 시간 이상 대기해야 했을 정도라고 한다. 도서전에 참여한 출판사 책공장은 SNS에 이 진풍경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며 “책 관련 행사에 사람들로 이렇게 북적일 때가 있었나 정부가 버리고 독자가 살린 도서전”이란 코멘트로 붐비는 도서전을 논평하기도 했다.

 

사실 정부가 버렸다는 표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문체부가 등 돌린 도서전 독자들이 살립니다.” 개막을 기념해 전병극 문체부 제1차관이 축사하는 동안 도서전을 주최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 임직원들은 항의의 의미로 이런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문체부와 도서전의 갈등 내막은 이렇다. 작년 도서전 수익금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다며 문체부는 도서전에 지원 중단을 선언했고 출협은 이런 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참고로 문체부는 매년 도서전에 정부 보조금의 형태로 약 10억 원을 지원해 왔다.

 

문체부가 도서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이나 아예 도서전에 대한 지원을 끊은 건 아니었다. 대신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이 예산을 배정했다. 이 예산은 도서전에 참여한 출판사 당 최대 300만 원씩 지원하고 총 190곳을 선정해 출판사별 작가 초청 및 통역 등 프로그램 운영과 홍보 콘텐츠 제작비 지원으로 이어져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흥행의 밑바탕이 됐다.

 

정부의 간접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서서 지원하던 이전보다 더 크게 흥행하게 된 비밀은 뭘까? 게다가 13세 이상 국민 중 절반 이상이 독서를 하지 않는 곳, 비독서 인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참고로 비독서란 활자는 읽으나 책은 거의 읽지 않는 현상을 지칭한다. 숏폼과 유튜브 자막과 같은 단문 형태의 글은 읽어도 자발적·적극적으로 사유하며 책을 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비독서 현상이 만연해지는 건 비단 국내뿐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숙독의 문화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의 집중력 위기를 다룬 책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스마트폰에 찌든 자신의 뇌를 구하고자 스스로를 외딴섬에 가두고 어떻게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자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에 글을 기고한 저널리스트이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정치과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엘리트이다. 이쯤 되면 단순히 학력 혹은 배움이 부족해서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다.) 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조차 이 정도인 걸 보면 이즈음에서 우리는 단언할 수 있다. 현대인은 책을 안 읽는다. 아니 못 읽는다. 그렇다면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대한민국에서 도서전은 어떻게 성황리에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걸까? 추측해 보자면 SNS에 자신을 과시하고픈 현대인의 욕망을 자극한 데다 팬덤을 호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팬덤은 바로 책이 등장한 이래로 고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했으나 오늘날 더욱 보기 힘들어진, 그렇기에 희소해져 더 힙해진 독서광들이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 300여 년 전 길을 찾아 헤맨 작품 속 걸리버 ⓒ 서울국제도서전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 사람과 같은 법적 권리를 찾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 서울국제도서전

도서전을 방문한 주축은 2030세대였다. 요즘 2030에게 독서는 힙함의 대명사가 되었고 책 역시 자신의 세계와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악세사리가 되었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왜 독서에 열광하는지를 분석한 여러 의견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독서하는 나를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욕망이라는 설도 있고 넘쳐나는 숏폼 속에서 활자만이 줄 수 있는 안정과 회복을 찾고자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기할 점은 Z세대가 독서를 단순히 내밀한 개인적인 체험이 아닌, 다른 이와 공유하는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2030 세대들은 각종 독서 트래킹 및 평점을 매기는 앱 사용뿐 아니라 친구들과 자신의 독서 경험을 나누고 셀럽이나 인플루언서가 운영하는 북클럽에 가입한다. 또 먼 동네에 있는 독립책방에 일부러 찾아가 이를 인증하듯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Z세대에게 독서는 자신과 유사한 취향을 가진 이와의 만남, 타인과 공유하는 하나의 사회적 체험으로서 그 효능이 강력하게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과 비슷하게 서울도서관 또한 독서는 힙하다는 이름으로 독서 사진 공모를 열기도 했다. 에어팟 맥스를 끼고 독서하는 모습, 서울광장 캠핑용 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 등 바쁜 일상 속 독서하는 모습을 찍어 인스타그램 #독서는힙하다 해시태그를 달아 업로드해 참여하는 방식이다. 다분히 MZ세대를 호명하는 방식의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문체부에서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층의 독서율은 78.1%로 모든 성인 연령층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독서 관련 이벤트가 현저히 적은 곳에서 국제도서전과 같은 대규모 북페어는 하나의 메가 이벤트로 기능할 수 있다. 서울의 중심지에서 총 19개국, 452개 출판사가 참여한다면 사실 책과 출판에 큰 관심이 없는 이에게도 하나의 이색적인 이벤트로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1947년에 시작해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에는 국내외 유명 출판사를 비롯해 각종 개성이 넘치는 독립·1인 출판사가 참여하고 도서전 자체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 덕에 MZ 독서광들의 거대한 놀이터가 되었다. 최근 부쩍 붐이 일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팝업스토어와 굿즈 소장 문화 또한 도서전이 인기를 끄는 주요인이 되기도 했다.

서울국제도서전 입장 대기 인파를 담은 출판사 책공장의 글 ⓒ 책공장 X
독서는 힙하다 서울도서관 독서 사진 공모전 포스터 ⓒ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독서광을 정조준한 이벤트 열전

70년 넘게 이어진 서울국제도서전은 그간 대한민국 독서광의 성지와 같았다. 1947년 교육박람회의 도서 전시를 전신으로 1954년 지금의 롯데백화점 본관이 자리한 국립도서관에서 지식은 광명이다. 독서는 지식의 열쇠라는 주제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도서전이 시작됐다. 독서광이라면 설렐 수밖에 없는 각종 이벤트와 출판사별 개성 가득한 부스의 향연이 도서전에서 펼쳐진다. 무엇보다 도서전은 단순히 출판사에게 부스만을 제공하지 않고 매해 도서전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정해 기획 전시 진행 및 각종 유명 연사를 초청해 다양한 세미나를 연다.

 

올해의 키워드인 “후이늠(Houyhnhnm)”은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여행한 나라 중 하나로,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후이늠을 자연의 완성이라고 정의한다. 언뜻 보면 이곳은 유토피아처럼 완벽한 세계로 보인다. 육체를 옷으로 가릴 필요도 없고 구성원들은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순수하고 완벽한 이성을 지니고 있어 무지, 오만, 욕망, 비참, 전쟁 등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이들은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하며 정확하게 말하고 공정하게 행동합니다. 또한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어 그에 따라 행동하며 깨끗한 삶을 살면서 평화롭고 평온하게 존재합니다. 도서전은 이런 유토피아에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짚어내며 과연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지도를 그려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도서전을 상징하는 메인 포스터도 <걸리버 여행기>와 후이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주제 세미나에서는 전문가들이 책을 경유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과학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을 운영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는 “세상을 뒤흔든 물리학의 세계 : <삼체>에 관하여”란 제목의 세미나를 통해, SF 소설 속 물리학과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짜 노동>의 공저자인 데니스 뇌르마르크도 테크놀로지 출현과 노동에 대한 고찰을 나눴다.

 

눈길을 끄는 이벤트 중 하나는 바로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BBK) 공모>인데 도서전은 이를 주관하며 네 개 분야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우수한 책들을 선정했다. 각 분야는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BBDK),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BBCK),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BBPK),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BBWK), 이 중 대상 격인 가장 아름다운 책에는 다음의 책들이 선정됐다. <2666>(열린책들), <리플리(세트)>(을유문화사),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시간의흐름), <피아노 에튀드 코로나>(몽타주 프레스), <한국퀴어영화전집 – 영문판>(활동사진), <Ashes>(큐리어스웍스), <Closing Ceremony: Hilton Seoul>(메이커메이커), <GODILOCKS ZONE>(파운드리 서울), <K-Artists(K에 취소선)>(더플로어플랜, 아카이브북스), <Stranger Than Matter>(솔스튜디오).

 

이 중 소설 <2666>은 스페인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의 전설적인 대표작으로 뉴욕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6위에 선정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작품으로 볼라뇨가 프루스, 조이스, 핀천 같은 20세기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으며 불멸의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극찬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볼라뇨는 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5부에 맞게 각각 1년 간격을 두고 다섯 권으로 출판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제목 2666은 연도를 의미하는데 이 세계가 완전히 폐허가 된 시점을 암시하는 묵시록적 숫자이다. 미완의 유작임에도 독립적인 다섯 개의 이야기가 여성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멕시코 북부 국경 지대 산타테라사란 공통 장소로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 이는 1993년부터 시작돼 11년 동안 500여 명이 여성이 실종되고 살해되었으나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1990년대 멕시코 후아레스 시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볼라뇨 사망 20주기를 맞아 특별 합본 판으로 제작된 이 책은 거대한 장정이다.

 

심사위원 김태균(코쿤북스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거대 장정을 선호하지 않았음에도 왜 이 책을 선정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투박하고 거대한 외형, 가죽 질감의 표지와 책머리, 책꼬리, 책배 3면의 정교한 은장 엣지 프린팅은 성경을 연상하는 위엄을 부여한다. 본문은 파격적이다. 기성 출판사 시도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본문 디자인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는 점이 놀랍다. 대형 출판사가 자칫 관습적으로 따를 수 있는 어떤 관행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본문에 사용된 서체는 SM태명조와 didot체뿐이다. 이 굵직한 서체를 이 정도 크기의 판형에서 오른 흘림으로 처리한 것은 거의 파격처럼 보인다. 그 외로도 책의 제목을 따와 가격을 66,600원으로 책정한 소소한 센스도 돋보인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대표작 <리플리> 시리즈도 표지부터 인상적이다. 제목, 저자, 옮긴이 같은 기본 정보는 모두 삭제한 채 인물과 리플리의 알파벳 중 일부만 확대되어 있다. 표지에 있는 클로즈업된 여러 얼굴들이 리플리의 분열하는 자아를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전 세트를 펼쳐놓으면 여러 개의 눈이 이어져 마치 이 매력적인 사이코패스가 우리를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심사위원 김태균은 사실 많은 출판사들이 표지만 이른바 힙하게 바꾸고 본문은 관습적인 디자인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표지와 내지 모두 적절하게 디자인했다. 기존의 출판 문법을 벗어난 과감함과 책등의 디자인에 남겨 둔 관습적인 부분들의 조화로 대중들에게 부담스럽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묘한 밸런스를 보여 주는 책이라 극찬했다.

악의 본질과 태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로베르트 볼라뇨의 유작 <2666> ⓒ 서울국제도서전
주인공 리플리의 분열하는 심연을 표지로 옮겨 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 서울국제도서전

브랜드도 놀러 왔어요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사만을 위한 장이 아니었다. 토스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기 전인 지난 5월 <더 머니북(THE MONEY BOOK): 잘 살아갈 우리를 위한 금융생활 안내서>(이하 머니북)을 출간했다. 머니북은 토스 사용자가 직접 남긴 금융이 궁금한 순간 중 100가지를 선별해 금융 경제 전문가들의 답변을 단 문답집이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17개 선진국 중 가족과 직업을 제치고 물질적 행복을 1순위로 꼽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물론 건강, 가족과의 차이가 근소하지만 어쨌든 다른 나라와 달리 돈이 1위가 됐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금융 문맹률은 67% 수준이다. 2021년 기획재정부의 국민 경제 이해력 조사 결과, 국민 평균 점수는 56.3점에 그쳤다. 2018년 세계 금융 이해력 조사에서 한국은 142개국 중 77위를 기록했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경제와 금융이 외면받기 십상이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른다는 아이러니. 여기에서 머니북은 그 도움이 되고자 출발했다. 토스의 앱 내 콘텐츠 서비스 오늘의 머니 팁과 콘텐츠 플랫폼 토스피드의 콘텐츠들을 엮어서 재구성했다. “돈이 늘 부족한데 저축을 꼭 해야 할까?”,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 증 뭘 제일 많이 써야 할까?” 등 누구나 궁금할 법한 질문들로 구성한 이 책은 출간 한 달여 만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2위(온라인)에 등극했다. 판매 부수는 3만 부를 넘어 10쇄에 돌입했다. 참고로 판매 수익금은 모두 금융소외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더 머니북 스토어란 이름 아래 토스는 일상에 꼭 필요한 물건들로 채워진 상점 콘셉트의 부스를 기획했다. 냉장고에는 식료품을, 진열장에는 다양한 생필품을 소품으로 배치해 머니북에 담긴 금융 지식이 일상에 꼭 필요한 물건과 같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북 바인딩 이벤트를 진행했다. 과소비 방지, 내 집 마련, 재산 불리기, 노후 준비 등 6가지 키워드 중 개인의 금융 관심사에 맞는 주제를 선택하고 원하는 속지를 조합해 나만의 머니북을 만들 수 있다. 해당 이벤트는 큰 화제가 돼 국제도서전 현장에서도 북 바인딩을 만들고자 참여자가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닷새간 6,000명 이상이 부스에 방문했다.

 

독서 플랫폼 밀리의서재도 도서전에 참여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로 시작해 최근에는 밀리 오리지널 이름으로 자체 콘텐츠까지 만들고 있는 밀리의서재는 단순한 전자책 플랫폼을 넘어 재미있고 가치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하고자 연구소를 세웠다. 밀리 독서 연구소란 이름에서 느껴지듯 연구실 콘셉트로 부스를 기획했는데, 참여자들은 선임 연구원으로 임명돼 거울 포토존에서 연구소 사원증을 모티브로 한 출입증을 받는다. 부스 내에서 다양한 독서 연구를 수행하고 스탬프를 획득한다. 미션은 다음과 같다. 독서연구일지 작성하기, 나에게 꼭 맞는 독서 기능 발견하기. 모든 미션을 완수한 참여자에게는 리유저블백, 오리지널 도서, 정해연 작가 가이드북이 증정된다. 그 외에도 연애 예능 <환승연애3>에 출연한 인플루언서 김광태가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출판사가 아닌 예상 이외의 브랜드들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에는 배달의민족이 “쓰여지지 않은 책”이란 컨셉으로 “냉면 대결, 소울푸드, 제철 음식” 등 음식과 관련된 키워드를 담아 참여자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면 이를 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부스를 기획했다. 사실상 책과 별로 접점이 없는 음식 배달 플랫폼인 배민은 왜 도서전에 참여했던 걸까? 배민 관계자는 배달의민족은 음식뿐 아니라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배달하는 브랜드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국제도서전이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독서광을 비롯해 문화자본을 갖춘 이들과 맞닿고 싶은 브랜딩의 장으로도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머니북스토어 ⓒ tossfeed
더머니북스토어 ⓒ tossfeed
토스 머니북 스페셜 패키지 ⓒ 29cm
밀리독서연구소 부스 ⓒ 밀리의 서재 X

2030 여성을 정조준한 출판사 열전

독서광의 축제이기도 하지만 이중 누구의 참여가 유독 활발했을까. 아직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여러 후기나 목격담을 보면, 도서전에 15만 명이 다녀갔고 이 중 상당수가 2040 여성이었다고 한다.

 

<칵테일, 러브, 좀비>를 발굴한 장르 전문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은 자사 네이버 블로그에 “안전가옥의 서울국제도서전 후기”를 통해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소셜미디어는 그 자체로 소통의 방식을 정의한다며 문화 업계는 점차 단기간에 사로잡을 수 있도록 강력한 한 방 위주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깊이 있는 호소력 있는 경험보다 야마가 있는 한방으로 출판사와 저자 그리고 책을 소개하는 게 도서전에서 실질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짚어냈다. 부스도, 출판사도 점차 특정 키워드와 문장으로 표현 가능한 컨셉으로 꾸며 모든 게 컨셉츄얼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안전가옥은 자신의 타깃이 누구인지 알았고 본인들이 흔히 “출판계의 뉴진스”란 별칭과 함께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는지 알았다. 그래서 안전가옥의 올해 부스는 더욱 힙하게, 강렬하게, 텐션 좋은 놀이공원처럼 보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안전가옥을 좋아하는 이들을 단번에 끌어당길 수 있도록, 팬이 아닌 이들조차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코로나 이후 도서전이 급격하게 팬덤화되어 가면서 그렇지 않은 출판사와 도서들은 좀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며 어르신 방문객이 눈에 띄게 줄고 점차 MZ세대의 놀이문화가 되어가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출협이 기획한 의도와 맞게 잘 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지점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 놀이 문화에는 유독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띄었던 걸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도서전) 관람객의 80~90%가 젊은 여성이었다 외국에서 온 출판사 관계자들이 이를 보고 코리안 미스터리(Korean mystery·한국의 수수께끼)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 이유를 그는 연결되고 싶은 욕구에서 찾았다. 핵 개인 시대에 차별과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젊은 여성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다며 비슷한 고민과 정서를 지닌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책이 그 정서의 매개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특히 현재의 한국 문학은 문화 산업 내에서 페미니즘 백래시가 가장 적은 곳이자 젠더 갈등으로 위축되고 갈증을 느낀 여성들에게 하나의 해소이자 공감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심지어 1992년에 나온 문제작 양귀자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32년이 지난 지금 재출간돼 다시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오늘날 독자에게 큰 공감을 얻는 것을 보면 한국 문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페미니즘을 경유하고 사유하며 이에 따른 호응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말한 봄알람의 홍보 문구가 방문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듯 국제도서전은 독서광을 위한 축제이자 지금 이 시대 독자들의 마음, 즉 독심(讀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젊은 세대와 도서전의 관계를 보면 세대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한 민음사 인문 잡지 한편의 창간호 <세대>에 실린 문구가 생각난다. 저자 중 한 명인 박동수는 「페미니즘 세대 선언」이란 글을 통해 오늘날 청년세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중요한 것은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견을 갖든 무관심하든, 청년세대의 생각과 행동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페미니즘 세대라는 명명이 의미 있는 이유다. 도서전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방문했다고 여성향 소설이 팔린다는 선입견, 굿즈를 구매하고 소장하고자 하는 팬덤 문화를 여성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는 피상적 접근만큼은 반드시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그것은 기표일 뿐 결국 그 안에 담긴 시대적 기의를 해석해야 한다.

안전가옥 부스 사진 ⓒ 안전가옥 블로그
서울국제도서전 모습 ⓒ 한국경제

내밀한 독서에서 사회적 독서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큰 성과를 이뤄낸 2024 서울국제도서전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무리 출판업계가 어려워지고 오프라인 유통업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해도 책을 매개로 한 잔치에 15만 명 방문이란 숫자는 고무적이다. 과시적 욕구의 일부 아니냐, 사람들은 굿즈를 사지 책은 안 산다 등의 냉소는 어쩌면 불필요한 불안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축하를 통해 원동력을 얻어가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하지 않을까?

 

개인의 내밀한 체험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누고 교류하며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독서 문화는 서울국제도서전만이 지닌 하나의 특징으로 점차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위르겐 보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대표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하며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조용히 글을 읽는 독서 문화가 아니라 독자가 활기차게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로 바뀐 점이 흥미로웠다. 독자가 (작가의) 팬이고, 독자층(readership)이 팬덤(fandom)을 이루고 있더라.

 

도서전에 방문한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희망과 추억을 안고 돌아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텍스트힙(Text Hip)을 즐기며 책을 위시한 거대한 팝업스토어의 향연에서 오락적 재미를, 누군가는 외로움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과 똑 닮은 책 앞에서 위로를, 누군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잃어버린 종이 질감의 아날로그 감각을 회복했을 수도 있다. 그것 자체로 도서전은 내밀하면서도 독서의 촉수가 밖으로 활짝 뻗은 사회적 독서 그 자체와 같다. 그래서 책을 통해, 책과 더불어 노는 “우리의 독서”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