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2024년 오벨 어워드를 수상한 멕시코의 Colectivo C733은 지역사회와 협업해 멕시코 전역의 공공 공간을 설계함으로써 건축을 소외된 이들의 삶을 연결하고 변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했다.

▪ 2025년 오벨 어워드는 철거와 신축 대신 리노베이션(개보수)을 장려하는 비영리단체 하우스유럽(HouseEurope!)에 수여되었다. 건축가들이 기존 건축 자산의 재사용을 위해 법적 제약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 2025년 5월, 베니스 오션 스페이스에서 열린 공개 토론 <상을 넘어서(Beyond the Prize)>에서는 건축상이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와 함께 건축의 공공성, 공동체적 책임, 그리고 상을 통해 어떤 미래를 기념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우리 모두는 사적인 존재인 동시에 공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노동을 하는 직업인이자 개인이다. 동시에 어느 공동체에 속해있고 그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지닌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 개인으로서의 생존 책무 뒤로 밀리기는 너무 쉽다. 개인으로서 생존하는 일도 충분히 버겁다. 때로는 직업인으로서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느 하루가 끝났을 때, 어떤 질문이 떠올랐지만 어디부터 답을 찾아야 할지 모른 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 시절 위로가 되었던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디자이너의 결과물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 디자이너 권준호의 기록이 담겨있다. 그에게는 내 작업을 하고 싶은 창작자로서의 욕망만큼이나 사회적 실천 또한 중요해 보인다. 권준호, 김경철, 김어진이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웹사이트에서는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일상의 실천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가는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고 일부러 시민 단체에 찾아가 디자인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노동자의 글을 펴낸 출판사에 연락해 협업하고 싶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용감한 누군가의 실천에 위로를 받다가도 현실의 스스로는 너무 작아 보였을 때, 어떤 건축상이 담론을 이끄는 모습에 또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오벨 어워드(OBEL Award)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벨 어워드는 헨릭 프로데 오벨 재단(Henrik Frode Obel Foundation)에서 매년 수여하는 국제 건축상이다. 2019년 창설된 오벨 어워드는 환경보호, 건설 혁신을 강조하며 수상작을 선정하여 건축의 사회적/환경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유도해 왔다. 오벨 어워드는 바로 사회가 직면한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건축적 해결책에 대한 담론을 이끄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함께하는 건축>과 Colectivo C733

오벨 어워드의 2024년의 주제는 <함께하는 건축(Architectures with)>이었다. 이번 수상자는 Colectivo C733으로, 2019년 멕시코의 여러 건축 스튜디오가 연합해 결성한 집단이다. 멕시코 사회는 부정부패, 성장 둔화, 치안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특히 실업률 증가로 인한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C733은 멕시코 전역의 취약 지역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이바지하는 공공 건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함께하는 건축>의 수상작 36×36 프로젝트는 이들이 36개월 동안 멕시코 전역에서 완성한 36개의 공공 프로젝트였다. 지역마다 조건과 기후가 달랐지만 기존 지형을 존중하며 최소의 개입으로 지역 사회의 문제 해결과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도전 과제만은 일맥상통했다.

 

36×36 프로젝트의 과정을 살펴보면 함께하는 설계란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C733은 건축가가 설계 과정에서 한발 물러나 지역사회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설계 전에 각 지역사회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지방자치단체 대표나 주요 지역사회 구성원과 정보를 확인한다. 더불어 건축가뿐만 아니라 생물학자, 사회학자, 환경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바칼라르(Bacalar) 프로젝트에서는 생물학자와 협력해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타파출라(Tapachula) 역 재활성화 프로젝트에는 지역 단체와 협력하여 이주민과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아욕수스틀라(Ayoxuxtla)의 초등학교 건설 프로젝트에서는 교사들과 협력해 문화, 교육, 스포츠 행사를 위한 다기능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산블라스(San Blas)에서는 장인 및 호텔 소유주와 협력해 지역 예술 표현을 위한 공간으로 16세기 교회를 복원했다. 이러한 협력은 지역사회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건물이 완공 후에도 지역사회에서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들은 지역 자재를 활용하고 지역 인력을 고용함으로써 지역과 또다시 협력했는데 이는 매우 경제적이기도 하다.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대나무 생산지 타파출라에서는 대나무를 적극 활용하여 타파출라의 모든 천장을 대나무로 마감하였고, 아욕수스틀라에서는 현지에서 채굴되는 대리석을 활용해 지역 주민들이 건축 자재에 친밀감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엄격한 일정을 준수해야 하는 제약 속에서도 커뮤니티의 니즈에 따라 기존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에코파르케 바칼라르(Ecoparque Bacalar)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의 원래 목표는 커뮤니티 센터를 건설하는 것이었지만 단순한 커뮤니티 센터는 이 지역사회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 바칼라르 도시 지역에 남아있는 마지막 맹그로브 지역 보호에 지역 커뮤니티의 관심이 높았기에, C733은 지역 주민들이 라군을 안전하고 교육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에 따라 정글, 맹그로브, 라군을 통과하는 800미터 길이의 보행자 전용 선착장이 조성되었다. 이 선착장은 맹그로브 서식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방문객들이 라군 위를 걸으며 생물 다양성을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자연환경을 더 잘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연보호라는 지역사회의 가치를 충실히 반영했다.

 

이렇듯 C733은 지역 커뮤니티의 실제적인 필요를 듣고 그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맥락을 고려해 건축 설계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누구나 공간의 존엄(spatial dignity)을 누릴 수 있도록 도전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공공 공간에서라면 불평등과 갈등을 넘어 공동체가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C733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함께하는 건축>이라는 주제에는 독립적인 설계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건축 과정에 대한 오벨 어워드의 재고가 담겨있다. 이 주제는 멋진 결과물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는 과정으로 우리의 시선을 옮긴다. 건축가는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팀의 일원이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배우는 동시에 강력한 건축적 비전을 지탱하는 리더십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C733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하는 건축 과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36×36 프로젝트를 통해 충분히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2025에 다시 등장한 레디메이드, 그리고 하우스유럽

지구의 지각 위에 존재하는 물질 중 30조 톤이 인간에 의해 변형되었으며 매년 100기가톤 규모의 물질이 가공되고 있다. 그중 절반은 연료나 식량으로, 절반은 소비재와 건축 자재로 전환된다. 그중에서도 건축에 쓰이는 광물의 사용량은 압도적이다. 건물 및 건설 부문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37%를 차지하며 산불, 홍수 등의 기후 재난은 인간 정착지와 숲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금융 투기를 위해 전 세계에 방치된 건축물의 규모 또한 압도적이다. 헝가리에는 전체 주택 중 12%가 비어 있으며, 프랑스에도 약 8%의 주택이 공실 상태이다. 전반적인 주택 부족 현상에도 불구하고 미국 50대 대도시에는 약 560만 채의 주택이 비어 있다고 한다.

 

1917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Readymade)>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과 기계 문명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만을 묘사하던 주류 예술이 공허해 보였던 뒤샹은 예술의 정의 자체를 뒤흔들었다. 예술로 여겨지지 않던 일상의 대량 생산품을 예술로 선언함으로써 시각적 완성도에만 매몰된 기존 예술계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는 결국 개념미술과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새로운 예술 흐름을 탄생시켰다.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오벨 어워드는 2025년의 주제 <레디메이드>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것의 재사용이라는 변화를 촉구했다.

 

오벨 어워드는 파격적이게도 2025년 수상작으로 개별 건축 프로젝트나 리노베이션 사례가 아닌 입법 캠페인을 선정했다. 수상자 하우스유럽(HouseEurope!)은 철거 및 신축보다는 “리노베이션(개보수)”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단체이자 유럽 시민이 주도하는 정책 연구실이다. 유럽 시민 발의(European citizens’ Initiative)는 유럽연합 시민들이 특정 정책 제안에 대해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직접 입법을 요구하는 참여 민주주의 제도로, 하우스유럽은 리노베이션이 더 쉽고 저렴해지도록 새로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하우스유럽은 건축 스튜디오 b+의 주도로 이루어지지만 매우 넓은 국제 네트워크와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 EU 전역 27개 회원국에 파트너를 두고 있는데 그들은 단지 서명 수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 운동에 공감하고 참여해 온 활동가와 단체들이었다. 오벨 어워드 심사위원단은 건축가들이 건축 분야를 제한하는 법적 구조를 바꿀 힘이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제도적, 인식적 문제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현을 막는다. 하우스유럽은 익숙한 건축 분야가 아닌 정치 분야로 나아가 변화가 일어나는 데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있다. 변화를 가로막는 규범과 가치체계를 직접 바꾸어나가고 있다.

 

하우스유럽의 시민 발의는 실패할지 모른다. 서명 운동 단계에서 100만 명의 서명을 모으는 데 실패하거나 서명 운동이 성공해 입법 논의가 이루어진다 해도 정책화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건축가를 단지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집단 행위의 주체로서 소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법적 제안의 영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상”을 넘어서 어떤 건축을 기념할 것인가

건축과 건설 부문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7%를 차지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임에도 건축과 건설 분야의 생태학적·사회적 책임은 때때로 간과되곤 한다.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빛의 교회>,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빌라 사보아>처럼 건축은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누가 무엇을 지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건물은 건축가의 철학과 미학을 담은 예술 작품으로 소개되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프리츠커상 역시 매년 건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건축가 개인의 업적을 기린다. 문제는 건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배경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예술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건축이 사회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는 쉽게 가려진다. 오벨 어워드뿐 아니라 다양한 건축상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제19회 건축 전시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던 2025년 5월 9일, 베니스 오션 스페이스(Ocean Space)에서는 건축상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공개 토론이 열렸다. <상을 넘어서(Beyond the Prize)>라는 제목의 이번 공개 토론은 건축상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긴급한 책임을 강조했다. 이 토론에서 의견을 나누기 위해 권위 있는 국제 건축상들 — 아가 칸 건축상(Aga Khan Award for Architecture), 홀심 재단 건축상(Holcim Foundation Awards), 유미스 어워드(EUmies Awards), 미스 크라운 홀 아메리카상(Mies Crown Hall Americas Prize), 오벨 재단(OBEL Foundation), 아모도 건축상(Ammodo Architecture Award) — 그리고 이들 상과 연관이 있는 저명한 건축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토론에서 수상 기관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 상황을 바라보며 건축상 수상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다시 탐색했다. 건축 실천을 위해 무엇을 가치로 두고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 상을 수여하는 공동체로서 건축상을 의미 있는 인정의 도구이자 진보의 원동력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대부분의 상 운영진이 이 토론에서 제시한 입장은 명확했다. “건축은 더 이상 한 건축가만의 것이 아니다. 건축물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 되고 그들 삶의 일부가 된다. 현재 건축물의 가치는 홀로 우뚝 서서 화려함을 뽐내는 데 있지 않다.”

 

오늘날의 복잡한 건축 현실을 단 하나의 상이 전부 포착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건축상 간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오고갔다. 이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올해 주제인 “집단 지성”과도 궤를 함께한다. 이들은 건축상이 실질적 변화를 촉진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사회의 문제에 맞설 용기와 성실한 시도가 헛되지 않도록 부단히 애쓰고 있다. 다른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그 이야기들이 모여 새로운 건축의 흐름이 생겨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들은 동료들의 작업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뗄지 영감을 얻고 그곳을 바라보며 한 발짝씩 나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인정하고, 지식을 공유한다.

현실과 상상, 그리고 오벨 어워드

오벨 어워드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건축을 촉발한다면 그것이 새로운 콘크리트 재료든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한 네트워크든 아이디어든 가리지 않고 건축상을 수여해 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 도시학자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의 15분 도시 콘셉트가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오벨 어워드를 수상했으니 말이다. (15분 도시란 시민들이 직장, 건강/교육/문화시설 등을 차 없이 15분 이내의 도보나 자전거로 오갈 수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2025년의 하우스유럽의 입법 캠페인이 건축상을 수상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파격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저물어가는 우리에게 상상의 물꼬를 터준다면.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시적 정의』는 왜 우리가 상상을 포기할 수 없는지를 말해준다. 일상에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배제, 억압, 폭력, 혐오, 편견이 없는 세상이 어디에 있다는 걸까. 세상은 온통 고난으로 가득하다. 이런 세계에서 무엇이 옳은지 상상해 본다 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저 불합리한 세상이 더 생생하게 따가울 뿐이다. 희망을 버리고 불합리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헤엄쳐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상상과 희망은 고난 앞에서 무너지고야 말 미약한 방어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살아가고 싶다면 다른 무엇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는 나아질 거란 희망마저 없다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상상에서 비롯된 통찰은 결국 우리가 바라는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 희망 안에서 그려보는 이상은 (처음엔 아득하겠지만) 언젠가는 분명 형태로 실현될 것이다. 우리는 상상을 충분히 발휘하고 끊임없이 가다듬으며 제도와 구조에 녹여내려 노력해야 한다. 하우스유럽이 그러했고, 오벨 어워드가 발견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가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