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한 세기 넘게 여성의 힘을 담아낸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 쟌느 투상의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혁신으로 잘 알려진 까르띠에는 여성의 창의성과 주체성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주얼리와 여성의 관계를 다각도로 탐구해 왔다.
▪ 까르띠에의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WI)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교육, 세계 무대 발표 기회 등을 통해 여성 창업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다. 현재까지 66개국 330명의 펠로우를 배출했으며 “가치의 순환을 만드는 브랜드”라는 까르띠에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 까르띠에는 주얼리를 넘어 현대미술과 문화의 후원자로서 여성의 서사를 기록해 왔다. 홍콩 <Cartier and Women>에서는 여성의 자율성과 사회적 위치 변화를, 서울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에서는 주얼리에 담긴 시대적 미학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인간의 존엄을 탐구했다.
한 세기 넘는 시간 동안 여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브랜드는 흔치 않다. 시대는 변하고 유행은 흘러가며 메시지조차 변주되기 마련이지만, 까르띠에는 늘 여성의 이야기 안에 머물러 있다. 그녀들의 손목에, 목에, 이마에 닿는 오브제 속에는 늘 시간과 권력, 그리고 주체성이 스며 있었다.
이처럼 견고한 서사를 가능케 한 인물이 있다. 바로 까르띠에 역사상 가장 전환점이 되었던 인물, 쟌느 투상(Jeanne Toussaint)이다. 종종 럭셔리 하우스의 역사는 한 사람의 비전이 모든 것을 바꾸는 순간을 경험한다. 까르띠에에는 그녀가 그 순간이었다. 1933년, 그녀는 까르띠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당시 주얼리 업계는 남성 중심의 견고한 성벽을 쌓고 있었다. 투상은 그 한가운데에서 전권을 쥔 몇 안 되는 여성 디자이너였다. 그녀가 선보인 매끈하고 강렬한 *팡테르(Panthère) 모티브, 이국적 색채와 대담한 디자인, 기능성과 우아함을 겸비한 주얼리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메종의 미학적 토대를 새롭게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다.
*프랑스어로 표범을 의미하며,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를 상징한다.
루이 까르띠에는 그녀의 재능과 감각을 주저 없이 인정했다. 그 결정은 그저 한 여성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브랜드의 방향성을 전적으로 맡기는, 시대를 앞선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리고 그 신뢰는 그 순간에만 주어진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 여성의 창의성과 주체성을 브랜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 까르띠에의 전통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까르띠에는 “여성의 시간을 주얼리로 만드는” 브랜드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 말은 곧, 여성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주얼리와 시계라는 오브제에 새기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기록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특히 2006년 시작된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한 특별 프로그램, 그리고 여성의 관점을 다루는 팟캐스트까지. 이 모든 최근 활동은 루이 까르띠에와 쟌느 투상이 보여준 신뢰와 지원의 정신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까르띠에에게 여성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브랜드의 동반자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여성은 원동력이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며, 특히 역경을 마주했을 때 놀라운 회복력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 까르띠에 CEO,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
과거 쟌느 투상이 루이 까르띠에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미래를 설계했듯, 오늘날의 까르띠에 역시 다음 세대 여성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무대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주얼리에 새겨진 여성사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할리우드 배우 메이 웨스트(Mae West)의 이 말은 한 세기 전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서 “나쁜 여자”란 단순히 규범을 거스르는 반항아가 아니다. 자신의 목적지를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의 시간을 관리하며, 사회가 부여한 한계를 넘어서는 여성을 뜻한다.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는 신여성(New Woman)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이 나타났다. 이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순종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독립성과 자유를 추구했다. 공공장소에서 화장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담한 행동이었지만, 곧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 되었다. 1920년대 플래퍼(Flapper)들이 짧은 치마와 단발머리로 거리를 활보하던 모습은 그 변화를 상징했다.
그때까지도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여전히 가정과 사교계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여성”이라 불린 이들은 이러한 경계를 허물며 스스로의 욕망과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얼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는 나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화려한 티아라, 대담한 아르데코 브로치, 손목 위의 시계 한 점은 모두 그들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 까르띠에의 역사는 바로 이런 여성들과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까르띠에는 유럽 왕실과 귀족 여성들의 주문을 받는 하이 주얼리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티아라는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1900년에서 1915년 사이, 티아라는 유행의 정점에 올랐고 “얼굴보다 티아라로 기억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왕실의 전유물이었던 장식품은 은행가, 산업가, 신흥 부르주아 계층 여성들의 머리 위로 옮겨갔다.
까르띠에는 이 변화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주얼리를 “권력의 장식”에서 “개성과 자율성의 상징”으로 재정의하며 더 넓은 여성 고객층을 맞이했다. 왕실 예식에서만 보던 티아라는 이제 사교 파티, 패션 화보, 심지어 영화 속 장면에도 등장했다. 무겁고 제약이 많은 왕실 장신구가 아니라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다이아몬드와 백금으로 구성된 아르데코 스타일의 브로치, 손목시계, 클립 이어링 등은 신여성들의 옷차림에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쟌느 투상(Jeanne Toussaint)은 여성해방운동과 스타일 혁신을 모두 포용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팡테르(Panthère) 모티브와 같은 아이코닉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팡테르는 단순한 동물 이미지가 아니라, 힘, 독립, 그리고 매혹이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까르띠에의 진정한 역할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을 자기표현의 도구로 전환한 데 있다. 티아라와 같은 왕실 전용 장신구를 일반 상류층, 예술가, 배우 등 다양한 여성들이 착용할 수 있도록 확장하며 주얼리를 “열린 권력”으로 만들었다. 또한 여성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반영해 장식적 요소를 줄이고 착용감과 기능성을 높였다. 특히 손목시계의 대중화는 여성들이 시간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나아가 까르띠에는 역사 속 영향력 있는 여성들의 선택과 스타일을 아카이빙하고, 이를 전시를 통해 현대에 전달함으로써 단순한 상업 브랜드를 넘어 “여성과 시대의 미학을 기록하는 문화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반짝이는 여성 창업가를 위한 까르띠에의 헌사
럭셔리 브랜드에게 사회적 책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화려한 쇼윈도 너머로 그 브랜드가 어떤 가치와 철학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지 묻는다. 까르띠에(Cartier)가 2006년부터 이어온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이하 CWI)는 그 질문에 대한 명징한 대답 중 하나다.
CWI는 여성 창업가가 자신의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장기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상금을 수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네트워크, 경영·마케팅 교육, 세계 무대 발표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 지금까지 66개국 330명의 여성 창업가가 펠로우로 배출되었고 총 95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무엇보다 펠로우 기업의 92%가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이벤트성 CSR이 아니라 실질적 자생력을 키워내는 플랫폼임을 증명한다.
2024년 제네바에서 열린 어워드 세레모니는 “선의를 위한 힘(Forces for Good)”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33명의 새로운 펠로우가 무대에 올랐고, 기존의 9개 지역 어워드에 더해 과학&기술 선구자 어워드와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어워드가 신설되며 영역을 확장했다. 시상식은 양성평등 운동가 샌디 토크스빅(Sandi Toksvig)의 사회로 열렸고 공연과 대화, 글로벌 리더들의 참여 속에서 공동의 힘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올해 수상자 중에서도 몇몇 사례가 눈길을 끈다. 페루의 마를렌 몰레로 수아레스(Marlene Molero Suárez)는 성희롱 예방 플랫폼 ELSA로 여성 권익을 지키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했고, 영국의 미라 나메스(Mira Nemeš)는 식물 기반 대체 소재 Biophilica로 플라스틱 문제에 도전했다. 모로코의 살마 부가라니(Salma Bougaraní)는 그린 와테크(GREEN WATECH)로 폐수 처리 기술을 혁신했고, 한국의 박지원(세이브앤코)은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성·재생산 건강을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판매 수익의 일부를 성평등 캠페인에 환원하는 방식은 여성의 권리가 곧 사회적 가치임을 보여준다.
한국은 특히 CWI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나라다. 2019년, 온라인 한국어 플랫폼 “SAY Global”의 조연정 대표가 최초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뒤, 2023년에는 정신건강 앱 “마인들링”의 문우리 대표가 동아시아 지역 1위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박지원 대표가 같은 지역에서 연이어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은 지금까지 총 5명의 펠로우를 배출했다. 이 흐름은 단지 수상 실적 이상의 의미가 있다. 까르띠에가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여성 창업가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와 사회 모두에 긍정적 파급력을 남기기 때문이다.
CWI의 강점은 이처럼 개별 창업가의 성과를 넘어 평생 이어지는 커뮤니티를 구축한다는 데 있다. 펠로우로 선정된 순간, 이들은 비공개 온라인 플랫폼, 정기 세미나와 오프라인 모임, 글로벌 콘퍼런스 참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자본 멘토는 투자자와 창업가를 잇고, 웰빙 챔피언은 정신적·정서적 회복을 돕는다. 이러한 구조는 펠로우가 단순히 상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지지하는 생태계 속에서 성장하도록 만든다.
까르띠에에게 이 프로그램이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럭셔리가 배타적 특권의 상징이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넘어 “가치의 순환을 만드는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강화한다.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는 순간, 소비자는 단순히 보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후원한다는 감각을 얻는다. 또한 역사 속 쟌느 투상이 보여주었던 창의성과 주체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여성과 함께 성장한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이어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CWI가 새로운 세대 소비자와 정서적 접점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럭셔리 소비자는 단순한 소유보다 공감과 가치를 중시한다. 창업가들의 실패와 도전, 회복과 성장은 브랜드의 서사와 맞물려 “당신의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까르띠에 회장 겸 CEO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은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번영할 때, 인류가 번영합니다. 우리는 변화를 주도하는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결국 CWI는 까르띠에를 단순한 럭셔리 하우스가 아닌, 여성과 함께 역사를 쓰는 브랜드로 만든다. 주얼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여성의 주체성과 연대를 기록하는 상징이 된다. 그리고 그 상징은 오늘도 새로운 여성 창업가들의 손에서 “선의를 위한 힘”으로 다시 빛난다.


주얼리에 담긴 문화적 서사
까르띠에는 보석을 넘어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도 자리해 왔다. 1984년 설립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u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은 동시대 예술을 실험하고 지원하는 장으로, 젠더와 사회, 인간의 존엄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조명해 왔다. 특히 여성 아티스트와 큐레이터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주얼리 브랜드”의 한계를 넘어 문화적 서사를 확장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23년 홍콩 고궁박물관과 협업해 열린 전시 <Cartier and Women>은 까르띠에가 여성과 맺어온 관계를 탐구한 최초의 대규모 기획이었다. 4년 반의 준비 끝에 19세기부터 현대까지 300여 점의 주얼리, 시계,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였는데, 단순히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여성의 자율성과 사회적 위치가 변화해 온 흐름을 기록하는 자리였다.
전시는 왕후와 귀족 여성들의 티아라에서 출발해, 20세기 초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신여성들의 브로치와 손목시계, 그리고 현대 여성 창업가와 예술가들의 주얼리로 이어졌다. 과거의 주얼리가 권력과 지위를 표상했다면, 20세기 이후의 주얼리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언어로 변모했다. 특히 중국적 장식 모티프와 기술, 재료가 까르띠에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홍콩이라는 지역적 맥락을 전시에 깊이 반영했다. 관람객들은 윈저 공작 부인(Duchess of Windsor)의 팬더 주얼리,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의 약혼반지, 아시아 배우 임청하와 유가령의 티아라 등 상징적인 작품을 직접 마주하며 시대와 여성, 브랜드가 맺은 복합적인 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Cartier and Women>은 보석의 역사를 넘어 여성이 주얼리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영향력과 개성을 표현해 왔는지 보여주며 여성의 시간을 아카이빙하는 문화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까르띠에는 여성 주제 전시 외에도 다양한 기획으로 문화적 서사를 확장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Cartier, Crystallization of Time)>이다. 이 전시는 “시간”을 주제로 까르띠에의 주얼리가 어떻게 경이로운 자연, 세계의 문화, 그리고 장인의 기술을 결합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미학을 구축해 왔는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Sugimoto Hiroshi)가 전시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해, 젬스톤이 지닌 영원성과 인간의 짧은 생애를 대비시키는 개념을 탐구했다. 그에게 주얼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을 응축한 결정체”였다. 전시 제목 역시 이러한 발상에서 비롯되었으며 까르띠에의 주얼리를 통해 “시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이 자리에서는 까르띠에 컬렉션의 주요 아카이브 작품뿐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개인 소장품까지 함께 선보이며 브랜드가 지닌 창조적 가치와 문화적 깊이를 조명했다.
위 전시는 까르띠에가 시대와 인간, 나아가 문화를 기록하는 기관으로 스스로를 확장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여성의 서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홍콩 전시와 시간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탐구한 서울 전시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결국 브랜드가 추구하는 본질(인간과 사회, 그리고 기억을 주얼리 속에 새기는 작업)에서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까르띠에가 지은 여성의 집
까르띠에는 전시와 이니셔티브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여성의 서사를 발화하는 역할까지 확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 두바이 엑스포의 “여성 파빌리온(Women’s Pavilion)”이다. 엑스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만을 위한 독립된 파빌리온이 세워진 순간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선언이었다. “여성은 세계적 어젠다의 주체다.”
여성 파빌리온은 단순히 성평등을 외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전시는 “도입–성취–도전–해결–교류”라는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여성의 발자취를 시간과 주제의 흐름 속에서 보여주었다. 과거 발명가와 정치인, 예술가들의 성취에서 출발해 오늘날 창업가와 활동가들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특히 “여성이 번영할 때, 인류가 번영한다”는 표어는 관람객이 전시를 경험하는 내내 반복되며 각인되었다.
표현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데이터 시각화, 인터뷰 영상, 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몰입형 체험은 관람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글로벌 차원의 어젠다(기후 위기, 교육, 노동, 혁신)를 다루면서도, 여성의 기여를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인류 전체의 서사”로 번역한 것도 특징이다. 까르띠에 CEO 시릴 비네론은 현장에서 “양성평등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며, 오늘의 세대가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브랜드의 목소리를 국제 담론 속에 새겨 넣었다.
이러한 시도는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에서 다시 이어진다. 일본 내각부와 협력해 선보일 여성 파빌리온은 “Living Together, Designing Together, For the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 사회 디자인에 있어 여성이 가진 변화의 힘을 강조한다. 두바이에서 오사카로 이어지는 흐름은 까르띠에의 여성 서사가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재현되고 확장되는 하나의 연속적 담론임을 보여준다.
결국 까르띠에는 우먼스 파빌리온을 통해 여성을 후원하는 브랜드를 넘어 여성의 이야기를 세계와 연결하는 무대 연출자로 자리매김했다. 럭셔리가 더 이상 단순한 소유의 기쁨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공존의 비전을 제안하는 언어로 변모하는 지점에서 까르띠에의 전략은 더욱 빛을 발한다.
까르띠에가 남긴 빛은 단순한 보석의 반짝임이 아니다. 그 빛은 시대를 건너며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비춘다. 왕후의 티아라에 새겨진 권위, 신여성의 브로치에 담긴 자유, 그리고 오늘날 창업가의 도전에 담긴 희망까지. 까르띠에는 언제나 그 시간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호명해 왔다. 그렇다면 까르띠에는 왜 “여성의 시간”을 기억하는 걸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의 시간이야말로 사회가 변화를 체감하는 가장 예민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억압 속에서도 피어난 주체성, 경계 너머로 걸어 나온 용기, 그리고 연대를 통해 확장된 가능성. 이것은 곧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였다. 까르띠에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았고 오브제의 언어로 기록해 왔다.
주얼리는 본래 사라지지 않는 물질이다. 그러나 까르띠에의 주얼리가 가지는 힘은 물질의 영속성보다 기억의 지속성에 있다. 누가 그 보석을 소유했는지가 아니라 그 순간 어떤 시간을 살았는가가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까르띠에의 작품은 결과적으로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을 매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기억은 특정 인물의 개인사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다. 어제의 여성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의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오늘의 여성들이 살아내는 시간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까르띠에는 이 순환을 오브제로, 전시로, 그리고 목소리로 이어가며 “누가 기억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 브랜드의 서사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까르띠에의 기억 작업은 곧 소비자,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함께 사유할 문제로 확장된다. 화려한 쇼윈도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보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시간, 그 시간을 살았던 주체, 그리고 그 주체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를 묻는다.
결국 까르띠에는 누구의 시간을 기억하는가. 그 대답은 권력자의 이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규범을 넘어선 여성, 자신의 길을 설계한 여성,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시간을 쓰고 있는 여성들, 그들의 발자취 속에 답이 있다. 까르띠에는 그 시간을 보석에 새겨 오늘로 가져오고, 또 내일로 건네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럭셔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유의 언어로 머물지 않는다. 까르띠에가 기억하는 여성의 시간은 곧 “어떤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며 우리 모두가 자신의 시간을 기록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