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웰니스는 단순히 신체적 의학적 개념을 뛰어넘어 고립감을 해소하고 사회적 연결감을 충족시키는 커뮤니티와 접목해 새로운 활동 키워드로 급부상 중이다.
▪ 모닝 레이브·소셜 사우나·독서파티 같은 사례는 술 대신 커피, 춤, 운동 등을 결합해 사람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보여준다.
▪ 낮은 참여 허들과 SNS를 통한 콘텐츠 공유가 결합해 확산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작게나마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연결되기를 원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 비대면으로 회의하고 SNS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하며 느끼는 온기는 대체되지 않는다. 연결감을 선사하는 모임은 다양하다. 자기 계발을 위한 네트워킹일 수도 있고, 친구를 사귀려는 목적의 이벤트일 수도 있다. 그중 최근 주목할 만한 흐름은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웰니스 커뮤니티다.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려는 “웰니스” 욕구가 반영되며 모임의 양상이 다양해졌다. 서로 경쟁하기라도 하듯 러닝 기록 인증샷과 러닝 크루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SNS 피드만 봐도 그렇다. 혼자서는 지키기 어려운 습관을 함께 나누거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경험의 공유로 확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과거 피트니스·영양·의학적 관리에 국한됐던 웰니스가 어느덧 정서적 안정·소속감·자기표현까지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개념으로 확장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불고 있는 다양한 사례는 이 변화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술 없는 아침형 파티, 모닝 레이브
광란의 파티를 일컫는 “rave”는 더 이상 밤의 유흥에만 붙는 단어가 아니다. 아침 일찍 카페 같은 장소로 모인 다음, 한 손에 커피나 말차 한 잔을 들고 DJ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하루를 시작할 때도 적용된다. 이러한 모임을 모닝 레이브라 부른다. 모닝 레이브가 최근에 시작된 건 아니다. 2010년대 이미 영국의 “Morning Gloryville”, 뉴욕의 “Daybreaker”란 커뮤니티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소규모로 진행된 기록이 있다.
일반적인 “파티”를 상상해 보자. 술 한 잔에 1만 원은 기본이고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는 도파민 파티는 다음 날 찌든 숙취와 피로를 남긴다. 그러나 모닝 레이브에서는 커피 한 잔 값이면 된다. 손에 쥔 음료를 가볍게 즐기며 활기차게 아침을 열 수 있다. 숙취 없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니즈를 반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약간의 반전을 주니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앞서 언급한 데이브레이커(Daybreaker)가 대표적인 모닝 레이브의 사례다. 데이브레이커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표방하며 12년 넘게 66개가 넘는 도시에서 다양한 모임을 펼쳐왔다. 2013년 공동 창업자 라다 아그라왈(Radha Agrawal)과 매튜 브라이머(Matthew Brimer)가 “날이 밝을 때 춤을 출 수 있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나누며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사이드 프로젝트 수준으로 생각했지만 행사가 워낙 성공적이어서 다른 도시 곳곳에서도 추가로 행사를 요청했고, 그때부터 모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15개 도시로 늘어나더니 오늘날 전 세계 30개 넘는 도시에 걸쳐 50만 명이 데이브레이커를 경험했다. 창업자인 라다 아그라왈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치유적인 방식이에요. 우울증, 고립감, 불안, 외로움에 대한 해독제나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뉴욕의 원 월드 트레이드 타워 102층 등 이색적인 장소에서 레이브가 열리기도 했다. 대면 모임이 핵심이지만 부득이하게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실시간 비대면 온라인으로 댄스파티를 50회 이상 열었는데 놀랍게도 100개 넘는 나라에서 참여했다.
커피 레이브뿐만 아니라 요가나 러닝 등 다른 활동이 결합된 형태도 있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 하루짜리 행사를 열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25에 미리 티켓을 구매하면 커피 레이브에 참여할 수 있다. 요가 프로그램을 같이 해보고 싶다면 $39, 춤만 추고 싶다면 $29 정도에 경험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각 도시와 위치 시간이 뜨면 티켓을 구매하면 된다.
데이브레이커는 레이브를 여는 것에서 더 나아가 2023년, 빌롱 센터(Belong center)란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다. 사람들의 외로움을 종식시키고 모든 사람에게 소속감을 고취한다는 사명 아래 만들었는데 무료로 모임을 운영한다. 수많은 모임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빌롱 인스티튜트(Belong Institute)도 만들었다. 커뮤니티 구축, 운영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데이브레이커의 이러한 행보는 커뮤니티라는 본질에 충실해 보인다. “Community”란 단어는 라틴어 “Communis”에서 왔으며, com(함께)과 munis(봉사하는 일)의 합성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데이브레이커는 공동체적 가치를 교육과 지원으로 확산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실천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보인다.
사우나에서 처음 만나요, 소셜 사우나
한국의 사우나를 떠올리면 찜질복을 입고 옥돌, 황토 등 다양한 재료에 따라 방을 넘나드는 풍경이 연상된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숨이 훅 막히며 열이 오르는 습식 형태로. 구운 달걀에 식혜 같은 주전부리와 게임 시설, 노래방 등의 편의시설이 결합된 찜질방 모습 역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반면에 해외에서는 건식 사우나가 일반적이다. 뜨거운 곳에서의 사우나와 차가운 얼음물에 짧게 머무는 방식을 함께 제안하는 곳도 많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의 사우나 시설이 2023년 45개에서 2024년 147개로 3배 넘게 늘어났을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장소로 인기몰이 중이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유럽과 미국, 캐나다를 중심으로 사우나에 소셜한 프로그램을 더한 방식이다. 사우나는 물론이고 얼음 가득한 욕조에 들어가는 아이스 플런지, 춤, 대화 등 이 모두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기는 걸 “소셜 사우나’”라 일컫는다.
소셜 사우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캐나다 토론토의 아더십(Othership)을 들 수 있다. 아더십은 사우나, 아이스 플런지, 호흡법에서 시작해 웰니스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해 가는 중이다. 창업자 로비 벤트(Robbie Bent)는 중독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연결감을 찾고 싶었다. 전문가들에게 온열 요법이나 냉수침지의 이점을 배우고 친구들과 집 뒷마당에 얼음 욕조를 만들었다. 친구들을 초대해 욕조에 몸을 담그는 활동을 해봤다. 이후에 차고에 사우나를 들이고 아담한 공간으로 개조해 계속해서 모임을 이어 나갔다. 아로마 테라피 등을 결합하면서 300명 이상의 사람이 방문하며 자연스럽게 친목도 다지게 된 게 아더십의 시작이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브레스워크(Breathwork) 앱을 만들어서 비대면으로 호흡과 명상을 도왔다. 2022년 토론토에 정식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뉴욕, 브루클린 등 총 4개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2023년 초에는 8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사우나를 이용하는 동안 당연히 핸드폰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프로그램은 가이드의 여부와 혼자 즐기느냐 여럿이 즐기느냐에 따라 나뉜다. 그중에서도 “이브닝 소셜(Evening Social)” 프로그램은 여러 사람과 만나서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적 성격이 강하다. 20~30명이 2시간 동안 사우나를 즐기는데 은은한 조명, 향, 엄선된 플레이리스트 등 최대한 몸과 마음을 이완되도록 돕고 아로마테라피, 춤추기, 수건 흔들기 같은 활동도 할 수 있다. 소셜 사우나를 경험해 본 사람은 쓸데없는 잡담과는 다르게 사우나에서 좋은 대화를 나눴다는 후기를 남겼다. 친구 없이 가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고 인상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특별한 자극이 없는 점을 소셜 사우나의 이점으로 꼽기도 했다.


독서모임 아니고 독서파티
앞선 두 사례가 신체적인 활동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라면 이번에는 정신적인 활동을 소개해 보겠다. 텍스트힙 문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늘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 쇼츠와 영상이 주는 자극에 절여져 있다 보니 우리의 문해력과 집중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이들이 나타났다. Z세대를 중심으로 아날로그와 활자 중심의 독서를 새로운 경험으로 인식해 힙한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시작됐다. 이미 독서 경험을 즐겨온 세대에게도, 산만해진 집중력과 바쁜 현대사회에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도저히 따라주지 않을 때, 그 마음을 끌어낼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독서 모임, 북클럽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대규모 독서 파티를 여는 곳이 있으니 바로 미국 뉴욕의 리딩리듬(Reading Rhythms)이다. 독서 모임은 미리 정해진 책을 읽고 이를 같이 이야기하는 모임이라면 리딩리듬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같은 책을 읽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핵심이다. 리딩리듬은 책을 읽고 싶지만 잘 읽지 않게 되는 20대 친구 네 명이 모여 설립한 커뮤니티다. 처음에는 열 명의 친구를 불러서 독서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책을 몇 장 읽고 이야기 나눈 다음 해산한 게 시작이었다.
리딩리듬은 둘러싼 공간,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에 주목했다. 50명이 뉴욕 지하철 한 칸에서 책을 읽거나 맨해튼 초고층 건물 더 엣지 100층 전망대에서 책을 읽는 등 다양한 방식을 적용해 왔다. 입장료가 무료인 세션도 있지만 행사에 따라 $18~30의 참가비가 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 한 권만 챙기면 충분하다. (물론, 리더기에 전자책을 넣어가도 된다).
리딩리듬의 기본적인 모임은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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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분 책 읽기
- 15분 낯선 사람과 일대일 이야기
- 30분 책 읽기
- 20분 미리 선정된 주제를 중심으로 여럿이 이야기
리딩리듬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열리는 행사의 평균 성별 구성은 여성 75%, 남성 25%로 여성이 훨씬 많다. 나이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으나 25~34세가 51%, 18~24세가 15% 정도 된다. 물론 나이, 민족, 출신과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일상에서 밋밋하고 피상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기 일쑤인데, 리딩리듬에서는 한 공간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는다는 선택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분위기도 끝내줬어요. 다른 독자들과 교류하는 느낌도 좋았어요.”
이처럼 후기를 보면 리딩리듬이 사람들에게 책 읽는 경험에 새로운 변주를 주거나 보다 질적인 대화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자체에 큰 의의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외로움을 해소하고,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소속감을 충족한다. 웰니스는 더 이상 혼자만의 자기관리가 아니다. 따로 또 같이 경험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사회적 놀이가 되었다.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웰니스적 활동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면서 나를 지키고 싶어 하고 동시에 건강하게 관계를 맺고자 참여한다는 점이다. 혼자 해도 가능한 일이지만 함께할 때 더 즐겁고 지속가능해지는 활동일수록 커뮤니티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시너지가 커진다. 특별한 성과나 결과물을 남기지 않아도 되고 일정한 자유 속에서 함께할 때 동기부여가 커지는 것, 바로 여기에 웰니스 커뮤니티의 힘이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자발적 공유다. “나는 이런 건강하고 감각적인 커뮤니티에 속해 있어”라는 메시지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같은 SNS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다. 커뮤니티도 자체적인 계정을 운영하며 참여자의 밝은 표정과 모임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는 세대는 자신이 속한 문화를 기록하고 드러내며 이를 통해 커뮤니티의 매력을 더 증폭시킨다.
이런 흐름은 반짝 유행으로 끝나기보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대표적으로 SMCC(Seoul Morning Coffee Club)는 출근 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임으로 시작해, 러닝 클럽이나 DJ 음악과 결합한 커피 레이브 등으로 확장하며 웰니스 커뮤니티의 국내 버전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 경계와 무관심이 짙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웰니스 중심의 커뮤니티는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 간의 온기, 유희하는 인간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감각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