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예술·교육·사회 전반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생각을 디자인하다>.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소통,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이나 작품활동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며, 문화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와 함께 예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장혜진

안무가

 

예술가로서 언제 어디서든 ‘공연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예스’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나만의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티스트 장혜진. 자신의 역할을 안무가에 한정 짓지 않고 예술가를 사회를 구축해가는 시스템 디자이너로 말하며, 매 순간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준 장혜진씨와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장혜진 안무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장혜진입니다. 안무가이자 큐레이터, 드라마투르크, 에세이스트, 교육자도 하고 퍼포머도 하고 있습니다. 안무하기 전에 무용을 먼저 시작했는데요. 무용 시작은 ‘몸짓이 남다르다’는 어머니 친구의 권유로 시작을 했고, 안무를 많이 보고 접하면서, 안무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게 어렵다면 내가 해봐야겠다. 그리고 잘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순간 안무를 하고 있더라고요.

 

Q. 장혜진씨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안무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학창시절은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어요. 그리고 공간에 대한 집착이 강했어요.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어떻게든 꼭 가야된다는 집착이 있었죠. 공간, 서식지, 둥지에 대한 집착이 강했어요. 무용할 때도 연습실을 가면 관습적으로 벌레같이 한 곳에서 오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것이 중요하고 숭고한 예술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한 우물만 열심히 팠어요.

 

근데 대학원 때였을 거예요. 저명한 포스트 모던 댄스 어머니인 안나핼프린(Anna Halprin)의 세미나를 들었는데 그 분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암을 겪고 사고가 확장되면서, “예전에 나는 춤을 추기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살기 위해 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얘기가 벌레같이 연습실에 기어들어가 있던 저를 꺼내주었어요.

 

무대에서만 안무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걷다 누가 갑자기 붙잡고 ‘저기 여기서 공연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한다면 당장 예스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내가 1인 기업이고 1인 연구소고 1인 예술가인 만큼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Q. 오래 연습하고 공부했던 무용에서 안무가로 역할을 바꾸는데 고민은 없으셨나요?

 

안무를 포기하기엔 매력이 너무 컸어요. 만약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상황을 안무라고 해본다면 저는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보고 있고, 고양이가 울고 있는 이 공간.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뭔가 있거든요. 이것에 관해 얘기하려면 안무로 구현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말이 어려울 수 있는데요. 지금 제 앞에 다섯 분이 계시고 저 혼자 앉아있는데 이러한 관계 아니면 반대편 건물 꼭대기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관계 각각의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 의자에 앉아있는 거랑 서 있는 거, 뒤를 보고 얘기하는 거랑 앞을 보면서 얘기하고, 소리 질러서 얘기하는 이 모든게 다 다른 장면인데, 이것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생활 속의 어떤 미묘한 변주를 가하고 싶었어요. 하다못해 나와 책상의 거리도 다시 조절하고 싶었고, 그게 실제 행동 심리학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위치하는지 작은 변화에서도 발생하는 사유의 패턴이 있는데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안무가 중요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PART 2. 아티스트의 작품활동과 가치관을 들여다보다

 

 

Q. 안무가로서 상황을 바라볼 때 주로 어떤 관점을 갖고 관찰하시나요?

 

‘사람을 보다’에 관점을 많이 두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서로 어떻게 보여지는지요. 예를 들어 말을 하는 것도 힘이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에도 힘이 있더라고요. 지금 상황에서도 제가 3분 정도 침묵하면 다들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근데 그 저는 그것이 안무적 선택, 퍼포먼스적 선택인데. 이런 상황은 무대 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일상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안무에서는 비언어적인 무언가라고 얘기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얘기도 안 하고 자꾸 딴짓을 하면 불편하고 궁금하잖아요.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 보여도 행동이 사람들에게 주는 힘이 강해요.

 

Q. 장혜진씨는 안무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안무가를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안무가를 시스템 디자이너로 보고 있어요. 근데 안무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예술가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안무가는’이 아니라 ‘안무가도’ 시스템 디자이너라고 해야겠네요.

 

안무가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하거든요. 제가 하는 활동은 솔로 혹은 그룹 퍼포먼스, 교육, 리허설 등 그게 어떤 형식이든 사회를 구축하는 거죠. 나의 활동으로 계속해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 만나서 어떻게 연습하고 어떤 화법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부터, 학생들에게 ‘일어나서 벽을 보고 10바퀴를 돌아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조차 하나의 사회를 꾸려가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에요. 시스템을 만들고 구현하는 것에서 안무라는 형태가 특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큰 자극이었는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날 잠을 못 잤어요. 다음날 제가 강사로 국립현대무용단 마스터 클래스를 가야했는데, 택시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동작을 가르쳐 준들 이게 뭣이 중헌디’.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무얼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나는 시스템 디자이너니까 내가 안무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두 시간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강의 내용이 <엔딩 찾는 연습>이었어요. 아직 쓰이지 않은 어떤 대본 내지 아직 미완성 작품의 결말 세 가지를 만들어 보자고 권했고, 지금 시작되는 정권의 결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그 결말을 우리가 써내려가자라는 액션이었어요.

 

안무가가 시스템 디자이너라면 어떤 상황이든 개척하는 게 맞아요. 무용수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무용단이 있거든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거랑 같은 현상이에요. 이것을 목표로 일어서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지만, 진짜 안무가라면 스스로 개척 해야겠다 내지는 내가 구르는 돌이 되어서 박힌 돌을 다 빼면서 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무가는 안무함으로써 본인이 만드는 사회가 있기 때문에 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선행된 상황에 나를 맞추기 전에 안무로 새로운 시간과 공간과 신체를 꿈꾼다면 본인이 개척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비슷했던 건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떤 캠페인에서 안무가로 초빙해주셔서 구글 캠퍼스에서 강연했었어요. 주제는 ‘스타트업 종사자가 많아지면서 워커홀릭이 많아지고, 일과 사랑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사랑을 못 하고 있다.’ 이것을 안무가가 해결해 달라는 거에요.

 

제가 매치메이커도 아닌데 어떻게 해결해요. 그분들과 함께 활동하는 부분이 얼마나 실용적일지 모르지만, 일단 초대받은 것 자체가 큰 메시지로 다가왔어요.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불렀겠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말씀드렸던 시스템 디자인을 한 거죠.

 

그때 디자인한 시스템은 이거에요. 사람들 보고 다 일어나서 뒤로 걸으라고 시켜요. 뒤로 걸어가면 어쩔 수 없이 서로 부딪히거든요. 부딪힐 때 ‘땡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 순간 그것을 연습함으로써 지나간 인연과 이루어지지 않은 인연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이 부딪히고 스쳐 가는 것에 대해 재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성과 내기 급급한 일상에서 안무를 통해서 혹은 시스템 디자인으로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면서 조금씩 판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안무를 배우고, 안무하는 행동을 통해 우리의 어떤 감각을 깨우고 느낄 수 있나요?

 

사실 안무가는 탐미적인 직업이잖아요. 미적인 것을 탐하는 직업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나름대로 미학과 이야기 프레임이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세상을 여러분들은 못 보잖아요. 여기 앉아있는 게 아니니까. 하다못해 내가 보고 느끼는 감각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영역인데,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려는 과정에서 나오는 그 아우라가 정치적일 수도 있고 어떤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일상생활에서 훈련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감각이에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시각적인 성과,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잖아요, 바빠죽겠는데 햇빛의 온도를 느끼고, 오늘의 하늘은 파란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게 뭐가 중요하냐 그걸 왜 기억하냐고 하겠죠. 근데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을 감싸는 모든 감각을 천천히 느끼려고 노력하는 안무적 행동을 했을 때, 지금 이 순간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우리가 잊고 살던 것을 구체적으로 다시 깨닫게 해요.

 

Q. 공연장 밖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한 질문을 던졌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2년 전에 한국에 와서 시작했던 프로젝트 중 ‘표류하는 몸(Drifting Body)’이라는 렉처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그 시작이 지금도 이슈인 난민 사태를 접하고부터에요. 신문에서 난민선 사진을 보고 나는 내 몸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당시 난민선 사진이 실린 신문의 다른 기사의 제목이 ‘상사와 앉을 때 나는 어디에 탑승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 두 개가 바로 병치 되어 보였거든요. 이 두 가지 행동이 한 신문에서 공존하고 있는걸 보면서 ‘나는 내 몸으로 뭘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발생했어요.

 

표류하는 몸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다른 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게 사회정치학적인 몸일 때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읽고 있는지 그리고 이게 발견되었단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더라고요.

 

Q. 안무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앞서 인터뷰했던 분들도 대부분 하나의 직업, 영역의 틀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어요. 한 단어로 본인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넌 도대체 뭘 하는 거니’예요. 그 전에는 이런 질문을 듣지 않았었는데요. 저는 저를 맥시멀리스트라고 불러요. 그냥 다 하는 거죠. 정말 기회가 있으면 글도 쓰고 기회가 있으면 인터뷰도 하고, 안무도 하고, 교육도 하고, 아니면 안무에 대한 평도 하고 다 하는데요.

 

사람들이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사고가 굉장히 강하게 박혀있는 것 같아요. 직업 윤리적인 관점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외부에서 너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위험성도 있는 거죠.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빨리 네이밍을 하고 싶은데 이것저것 다 하고 돌아다니니까 ‘넌 뭘 하는 거니?’ 이런 질문을 받는 거죠. 왜이렇게 불필요한 질문을 자꾸 받아야 하지?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그래서 더 다 하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을 하면서 사는 것도 삶의 방식입니다. 제가 안무가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라고 자극하고 싶은 거죠.

 

제가 저를 부르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예술가를 서포트하는 예술가라고 불러요. 예술가를 서포트 하는 예술가를 다 했으면 좋겠어요. 그 방식이 다 다를 수 있거든요. 큐레이팅으로도 할 수 있고 아니면 뭐 교육으로도 할 수 있는 거고 그냥 예술가를 서포트 하는 예술가로요.

 


PART 3. 예술가에서 예술교육자로

 

 

춤, 안무라는게 공연장에서 불특정 대상으로 하다 보니, 100명이 공연장에 왔다면 100명만 본 거예요. 내가 100명한테만 의미 있는 것을 하는 동안 공연장 밖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안과 밖에 대한 개념이 생기면서, 내가 공연장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동시에 밖의 사회 상황을 감각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시점에 교육을 시작한 것 같아요.

 

Q. 미국에서는 교수로, 현재 한국에서도 교육자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퍼포머에서 교육자로의 역할 확장은 어떤 의미에서 이루어졌나요?

 

춤, 안무라는 게 불특정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다 보니, 제가 공연을 했는데 100명이 왔다고 치면 100명만 본 거에요. 다른 세상 사람들은 뭔지 모르더라고요. 그때 안과 밖이라는 개념에 대한 질문이 생겼어요.

 

내가 100명한테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있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공연이 100명이 아닌 사람들과는 관계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발생한 시점이었어요. 내가 지금 공연장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동시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감각하려고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무용 교육에서 재미있는 게 미러링으로 춤을 배우거든요.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배우잖아요. 어른들 말투, 움직임 따라서 굉장히 힘이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춤으로 표현하는게 누군가의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를 자극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되더라고요. 춤이라는 게 다른 사람한테 보일 때, 교육할 때 그 영역을 자꾸 자극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춤을 추는 행위가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뱅글뱅글 돌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세요?’, ‘나는 이렇게 가만히 있는데 당신은 왜 움직이는 거에요?’ 라는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결국 ‘나는 무엇을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더라고요. 보는 사람들에게 ‘내 몸으로 나는 왜 가만히 있는가?’ 아니면 ‘나는 왜 이렇게 움직여야 했을까?’ 라는 걸 제 움직임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요즘 예술가가 예술교육가가 되는 부분에 있어서 관심이 많은데요. 작품활동 외에도 교육자로서 학생들과 함께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교육자 장혜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참 파란만장해요. 2004년도에 이제 미국에 대학원생으로 가면서 바로 교육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까 제 교육철학이 나 자신을 잘 인큐베이팅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타 문화권에서 나를 잘 돌보고, 잘 살아내야 하는게 중요해지고 교육공간이 서식지가 되는 거에요. 그냥 수업을 가르치면 된다가 아니라 수업을 통해 내가 잘 살아야겠는 거예요.

 

수업이 저한테는 그랬어요. 내가 생존하는 건 곧 교육의 공간에서 내가 이루어내야 하는거 더라고요. 타 문화를 습득하고, 영어를 배우는 모든 것이 교육이라는 채널이랑 너무나 끈끈하게 붙어 있었어요. 그래서 수업이 마치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의 장이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어쩌다 보니까는 지금까지 15년 차 교육을 하고 있네요.

 

사실 3년은 풀타임 교수 시절도 있었어요. 서른 살에 교수가 되고, 부모님 정말 자랑스러워했었죠. 교수로 3년을 있었는데 관둬야겠더라고요. 다른 서식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3년이 충분했고 다른 곳으로 굴러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굴러갔어요.

 

물론 부모님도 주변에서도 그렇고 우리 대학교 교수님들도 그 좋은 자리를 왜 박차고 나가니 말씀하셨는데요. 교육이 나한테 서식지로 살아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채널이 맞다면, 3년의 끄트머리에 확연하게 제시했거든요 무거운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세월호가 터진 시점이었고 제가 미국에 있었는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 이유 중에 ‘많은 선생님들이 본인의 구명조끼를 벗어줬다’ 라는 그 단순한 얘기가 갑자기 ‘나는 내 몸으로 무엇을 하는가?’ 굉장히 큰 질문이 되더라고요.

 

저한테 그 지점은 너무나 큰 질문이어서 학교를 떠났어요. 학교를 떠날 때 학생들한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 알고 있지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구명조끼를 벗어줬대, 까지만 얘기했고, 그다음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전부 다 울었고요.

 

이 모든 게 내가 다른 채널을 찾아야 하는 거랑 맞닿아 있었구나. 다 같이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교육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떠날 때를 아는 것도 교육이었고요. 세계 어디를 다녀도 누군가 갑자기 캠퍼스나 어디 가서 안무가로서 뭔가를 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바로 예스라고 할 수 있는 게 제가 생각하는 안무가 이자 교육자 이자 운동가의 삶인 것 같아요.

 


PART 4. 아티스트가 예술을 대하는 자세

 

 

Q. 무용가로서 보냈던 시간과 달리 안무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지금,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무용할 때는 수행자로 안 되는 거를 되게 해야 했고, 내가 안 했을 때의 죄책감에 굉장히 괴로웠어요. 왜냐하면 춤, 무용에서는 Practice, 실습, 실천 부분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않는 하루가 지나가는 게 견딜 수 없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그 실천의 영역이 굉장히 확대되어 있어요. 지금이 좋아요. 예전에는 무용실에 가서 스트레칭하고 주어진 동작을 수십 번 연습해서 그 동작을 마스터하거나 잘 해내는 게 되게 중요한 실천이었는데. 이제는 사유 하면서 매일 매일 다른 종류의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한 실천이고 실제 제 작품 안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안무를 하지만 안무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연습을 해요. 그게 안무를 더 잘 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어디에 속해 있을 때 내가 이거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하면서 스스로 계속 질문하는 거죠. 혼자 자생할 수 있는가를 계속 테스트해야죠. 담력 쌓는게 쉽지 않지만, 의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예술 활동을 하면서 현재 드는 가장 큰 생각과 개인적인 고민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더불어 앞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앞으로의 대한 생각, 앞으로 나갈 길과 맞닿아 있는게 올해 초 뉴욕에서 공연했던 작품과 관련 있는데요. 저드슨이 무용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인데 제가 거기서 ‘저드슨에서 저드슨 없이 잘 살기’를 공연하고 싶었었어요. 그것이 있는데 그것 없이 잘 살기를 하는 순간 그것과 함께 정말 잘살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드슨 없이 잘 살기라는 공연을 할 때 지금 다 같이 함께하는 것에 대해 충실해지더라고요. 지금도 사실은 안무를 하지만 안무 없이 잘 살고 싶은 연습을 해요. 저는 그게 안무를 잘 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그리고 3년간의 교육자 생활을 끊어냈던 부분도 그것이 없이 교육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아마 계속해서 내가 어딘가에 속하거나 무언가 주어졌을 때 ‘내가 이거 없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시도해 볼 것 같아요.

 

결국 자생의 영역인 것 같아요. 저 자신을 1인 연구소, 1인 기업, 1인 예술가로 본다면 혼자 자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 부분은 어떤 패턴이나 규칙이 있는 게 아니라 5년 플랜, 10년 플랜은 의미가 없고, 자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표류에 몸을 맡기는 건데. 그게 담력인 것 같아요. 담력이 쉽지만은 않네요. 특히 나이 들면서 노후는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고요.

 

한국에서 예술가로 진입할 때 필요한 전형적인 단계가 있고, 지원금을 신청해야 활동할 수 있는 단계들이 있고 시도하고 있는데. 그 순간 저 자신한테 묻고 있어요 안 그래도 바글바글 몰리는데 나까지 함께 앞다투어 굳이 그 파이를 먹으려고 하는 거지? 내가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어떤 반증을 해내고 싶은데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 가장 큰 고민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델이 되고 싶어요. 안무가의 새로운 유형. 엄청난 담력과 ‘제가 굴러가는 돌로써 박힌 돌을 빼내고 싶어서 그랬어요’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긴 해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Q. 아티스트로서 앞으로 함께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게 다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는 게 예술 안에서, 춤 안에서 중요하게 느꼈어요. 제가 연습벌레 시절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게 다가 아니에요’, ‘이 안에 있으면서 보고 있는 이게 다가 아니에요’ 라는 걸 무용계 안에서 조금씩 파장을 일으켜야 하고. 밖에서는 ‘이 밖이 다가 아니에요’ 라는 것도 하고 싶은데. 이런게 어떤 동시대적인 감각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있는데, 동시에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는 알고 있나요?’라고 자꾸 질문하는게 저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는 Learn how to Learn이라고 내가 어떻게 배울지 계속 배워가는 건데 그걸 터득하게 되면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단적인 예가 제가 미국에서 교수하기 전에 무용단 생활을 잠시 했었거든요. 약 4년 정도. 그때 같은 무용단에 있던 남자 무용수가 무용수를 접고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 간 거에요. 하버드 의대에 들어간 거에요. 너무 재미있는 케이스잖아요. 나중에 만나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힘들지 않니 라고 물어봤어요.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미국 뉴욕에서 무용가로서 안무가로서 살면서 필요했던 스킬이 의대를 다닐 때 필요한 스킬보다 더 많았어. 본인의 시간관리, 본인이 배우는 걸 어떻게 배워야겠다는 스킬이 이미 개발이 된 이후였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잘 지내고 있어. 난 댄서로써 안무가로서 시간 관리를 정말 철저하게 해야 했고 그냥 나라는 기업을 정말 잘 운영해야겠다는 거를 배웠거든 그러기 때문에 나한테 의대 가는 게 정말 어렵지 않아”라고 얘기 하더라고요 근데 그 얘기가 저는 굉장히 희망적이었어요. 그니까 본인이라는 기업을 잘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고 난 후에는 수행해야 하는 무언가가 바뀌어도 잘 수행하는 면이 있더라고요.

 

Q. 사람들이 안무를 어떻게 이해하고 즐기면 좋을지, 안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정의한다면?

 

안무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건데 저는 그게 행동주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무도 안 하는 뭔가를 하겠다.’ 이런 선언이거나 실천이거든요. 무의식중에 할 때도 있어요. 누군가 갑자기 일어나서 뭔가를 했는데 어떻게 보면 무의식중에 자아가 선택한 거거든요.

 

그 선택을 물어보는 것 같아요. 너 왜 그랬어, 무엇이 그렇게 하게 했어, 너는 왜 이러한 동작을 할 때 이렇게 앞에 나와서 해 뒤에서 안 하고 왜 벽을 보고 하는 거야 왜 앉아서 하는 거야 왜 천천히 하는 거야 하는 것을 계속 물어보는 거죠. 그런 점이 안무이기 때문에 특색이 있는 거긴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되게 중요한 스킬인 것 같아요.

 

계속 물어보는 것,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했을까,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왜 이쪽으로 돌았을까, 나는 왜 이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이런 말투를 사용했을까 라는 걸 조금 더 분석적으로 보는 거죠 행동 자체를 그걸 분석적으로 보고 새로운 행동 패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운동인 것 같아요.

 

그냥 안무는 몸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안무인데 그냥 그 질문을 다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공연을 볼 때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몸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을 아까 얘기했듯이 재난을 앞두고 할수 도 있는 거고 되게 행복한 일 앞두고도 질문 할 수 있는 거고 되게 그냥 사사로운 질문이 될수 도 있는 거거든요 근데 그 질문이 어떠한 그 재미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 되게 재미있는 게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PART 5. 공식질문

”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의 역할은?”

 

 

음, 매일 매일 1인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야죠 매일 매일 솔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고 살면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느냐 아까 얘기했듯이 안무가 몸이 어디서 언제 무엇을 하느냐가 안무면 그 질문을 계속하고 싶고 교육이나 어떠한 채널을 통해서도 계속 권장하고 싶어요.

 

Q.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계속해서 구르는 돌로 박힌 돌을 빼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 실제로 작품 안에서도 구르거든요. 그래서 정말 적합하고 그거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받을 때도 있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듣보잡이 갑자기 와서 뭐 하는 거야 이렇게 할 때도 있고 남들은 여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데 너는 갑자기 나타나서라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는데. 그때 약간 웃음이 나요 원래는 이렇게 구르는 돌로 살아왔어요. 언젠가 또 다른 데로 굴러가고 있을 거에요. 다 같이 박혀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