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교육을 말하다>는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 현장, 작품활동,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갑니다. 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의 역할과 예술교육의 방향과 미래를 함께 그려봅니다.


 

현박

작가, minifacture founder

 

디자이너에서 메이커까지 한 가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티스트, 현박. 컴퓨터와 기계로 개인별 대량맞춤(Customize to personalize)을 실현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어떻게 가이드를 할 수 있는가”의 중요함을 이야기해 준, 독특하지만 단단한 내공을 느낄 수 있었던 현박 작가와의 인터뷰를 지금 시작합니다.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한 가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제품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에서 기계로 뚝딱뚝딱 결과물까지 만드는 메이커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미디어 아티스트로 기술이 들어간 설치작업을 주로 합니다.

 

Q. 학창 시절이 궁금해요. 아티스트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학창 시절부터 기술에 관심이 많아 전기 배우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철사를 구부리고 피다 손도 많이 다치는 그런 학생이었죠. 대학교 입학 당시가 IMF 시절로 최대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해 컴퓨터 교육과를 입학했는데요. 우연한 기회로 8개월 간 영국에 있을 때, 미대 다니는 형이 제 스케치를 보고 “너 스케치도 곧잘 하니 미대에 가면 어떻겠니?”라는 한 마디가 미대 전공을 해볼까? 생각이 든 시작이었어요. 사정상 가족과 미국이민을 하게 되면서 예술대학에 입학해 Designed Objects를 전공하면서 이 길에 들어섰습니다.

 

Q. 해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작업 활동을 시작하셨어요.

 

학교 졸업 후 서울시 보조공학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3D스캐너, 디지털 장비, CNC장비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데 장비를 다룰 사람이 없지만 기계는 준비되어 있으니 만들어달라고 했죠. 센터 일을 시작으로 메이커, 아트팹랩 등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며 개인 작업까지 이어오고 있네요.

 

Q. 서울시 보조공학센터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장애인 맞춤형 보조기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몸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사춘기 이후로 척추에 변형, 척추측만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척추를 잡아주고 움직이지 않도록 휠체어와 자동차에 고정하는 보조 장치가 필요합니다. 다만 사람마다 변형이 달라서 하나의 디자인으로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고, 수작업으로 한개 한개 다 깎아서 만들었어요.

 

저희는 의사처방을 받아 체형을 복제하고, 3D 스캐너로 스캔하고, 그 데이터로 CAD 작업을 해서 CNC밀링, 가공과정을 거쳐 납품했는데요. 여기서 맞춤 제작과 컴퓨터와 기계의 발전을 통한 개인별 대량맞춤에 관심을 두게 되고, 그것이 이어져 기계를 만들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만들고 있습니다.

 

Q. 디자인에서 기계와 컴퓨터를 다루는 일까지 작업 스펙트럼이 넓은데요.

 

저는 예고, 예중이 아니라 미술 베이스가 아니었어요. 예술대학에 처음 갔는데 자기가 디자인한 가구를 직접 만드는 과목이 있더라고요. 내가 가구를 모델링 하는 것에서 실제로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지, 현장 사용 가능 테스트까지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었죠. 자연스럽게 목공기계, 3D프린터를 접하고, ‘기계가 사람의 손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점이 있구나’ 하고 기계에 대한 접근법을 바꾸었어요.

 

앞으로 디지털 장비와 3D프린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될 거예요. 다품종 소량생산 같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말들이 컴퓨터와 기계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구현되는 시대가 왔어요. 저는 대량맞춤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각자 디자인이 기계로 바로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래서 현재는 디자인과 제작을 넘어 플랫폼 프로그램을 만들고 디자인 라인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Q. 소품종 대량생산이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개인별 대량맞춤을 할 수 있다니 재밌는데요. 다면화병제작소도 그런 방향에서 나온 작품인것 같아요.

 

다면화병제작소(Tessellated Vase Manufactory)는 두 가지 포인트에서 시작되었어요. 디지털 장비와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최초의 유적이 무엇일까 생각해다보니 인간의 만드는 행위가 시작된 고대 출토작이 대부분 빚은 토기와 뭔가를 담을 수 있는 실용적인 그릇이었다는 점에서 화병을 선택했고, 이왕이면 큰 화병을 만들어보자 해서 당시 소형 3D프린터 기계를 크게 제작했어요. 여기에 소비자가 직접 만들 수 있는 무한한 디자인 인터페이스를 만들면 어떨까 해서 알고리즘을 사용해 디자인부터 메이커까지 한 군데서 구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PART 2. 우리가 바라보는 예술교육

 

 

Q. 예술이 좋은 이유, 예술활동이 삶에 필요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하는 게 예술일까요? 누구나 예술가는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좋은 예술을 하는 것이 어렵죠. 저는 좋은 예술이라기보단 이런 저런 입장에서 이것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정도로 하고 있어요. 사실 실용을 따지면 예술이 직접적으로 삶에 필요하진 않아요. 하지만 사람이 실용만으로 산다면 얼마나 재미없어요. 밥만 먹고도 살 수 있지만, 고기도 먹고, 이것도, 저것도 먹는 것처럼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

 

맨날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운전하는 것 외에 다른걸 생각 못 하잖아요. 저는 가끔 한두 정거장 앞에 내려서 일부러 걷기도 하고, 일정이 있으면 미리 가서 그 동네를 걸어보고 해요. 그러면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예술 감상이 여유를 준다고 하나? 이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는 창문 역할을 하면서 사회에 재미를 준다고 생각해요.

 

Q. 기존교육과 달리 예술교육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면 좋을까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놀랐던 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림만 조금 그리다 들어간 학생이었는데 일단 네가 무엇을 할지 정하고 어떻게 할지 해결해봐, 이렇게 던져놓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 초반에 많이 헤맸어요.

 

요즘은 예술교육에 대한 시도가 많죠. 코딩교육, 메이커교육 등 다양한 워크숍, 클래스, 커뮤니티가 많은데 중요한 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예요. 새롭다는 예술교육도 접근방식에 따라서 지금 교육과 똑같이 하늘은 파랗게 그리고 꽃은 예쁘게 그려가 될 수도 있고,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상상력을 피어줄 수 있는 분출구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점에 있어 가르친다는 말보단 어떻게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합리적인 것보다 비합리적인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예술교육은 비합리적인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요즘 인공지능 이야기가 많은데요. 가끔 농담으로 로봇이 직업 다 뺏어가면 어떡하냐고 해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반복적인 직업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가장 하기 좋은 일이에요. 모두 대신할 수 있어요. 그게 현실이 되는 게 20년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농담으로 아티스트들은 빼앗길 직업이 없다, 나는 이럴 줄 알고 작가를 했다고 말해요.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비합리적인, 말도 안 되는, 조크, 유머 이런 거예요. 인공지능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거든요. 세상의 발명은 비합리적인 생각에서 나왔어요. 200년 전만 해도 하늘을 난다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지금은 너무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기술발달로 재미없고 반복적인 것은 로봇이 하고, 인간은 예술교육을 통해 인류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재밌는 세상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PART 2-1. 예술가가 교육에 참여하는 방법

 

 

Q. 질문에서 조금 벗어나서, 이번에 워크숍을 진행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세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언덕에서 어쩌다 보니 달려가는 상황이 됐는데요. 의도는 융합이에요. 뻔한 이야기지만 초, 중, 고 심지어 대학교 교육 현장도 융합 교육이 어려워요. 근데 기술, 예술, 바이오 등 여러 분야가 섞여 작업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제도권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고, 프리랜서 작가도 있는데 그런 분을 초청해 이야기도 들어보고 “실리콘으로 뭔가 만들고, 공기를 주입해서 로봇을 움직이게 하여 무언가를 잡는다”는 식으로 기술을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해보면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알려주고 싶어 기획하게 되었어요.

Q. 직접 만져보고 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는 체험형 워크숍 형태가 특이한데요.

 

예술작품도 그렇잖아요. 기술을 배워서 제품을 제작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기존 오브젝트를 어떻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느냐? 내가 만든 상상의 장치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나? 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재밌잖아요. 머리를 간질간질하게 한다고 할까?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다음 아이디어를 유발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참여하는 사람도 재밌지 않을까요.

 

 

Q. 대중이 예술을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 중 하나로 보면 될까요?

 

우선 작업을 3년 정도 했는데 요즘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고 느껴요. 파트너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세계관이 굉장히 독창적이고 재밌고 뚜렷해요. 자기의 세계관을 일반적으로 모두와 공유할 수 없다 보니 혼자 작업하는 분들이 많죠.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밥 먹고 인터넷 찾아보고 논문 읽고, 재료 사서 이거 해보겠다는 생각만 하거든요. 삶이 직업이 돼버리니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 나누는 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요. 가끔 작품 기획부터 작업, 결과 도출까지 혼자서 생각하다 보니 소규모 사람을 모아 작업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두 번째 이유는 제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느낀건데요. 이 분야에 경험 없는 분들이 참가하기엔 ‘이거 로봇 배워서 어디다 쓰지? 나는 로봇도 없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로봇 운용은 당연히 어렵죠. 하지만 일반인들도 로봇 자체에 관심이 많고, 로봇에 뭘 장착하면 이런 기능을 하겠구나! 이런 상상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부에 갖춰진 시설, 기계를 이용해서 워크숍에 접목해보려 해요. 이런 게 앞에서 말한 예술교육이라 생각해요. 대안 교육이겠죠.

 

학교 과목이 다양한 이유도 수학도 있고, 물리도 있고, 사회도 있고, 이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다양한 과목을 통해 배우는 건데 교육이 입시 쪽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국·영·수 위주가 되었지만, 이런 워크숍 형태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도 교육기관을 만들고 프로젝트 만드는 것만큼 작가들이 일반인이나 특정인 대상으로 자기 보유기술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먼저 마련해주면 작가들이 가진 기술이 낭비되지 않는 풍토가 생길 거예요.

 

즉 작가가 어떻게 자기만의 독특한 기술을 개발하고, 어떻게 사업으로 풀고 어떻게 새로운 직업과 연결되는지 그런 게 워크숍이 기존 교육대신 예술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겠죠.


PART 3. 공식질문

“예술교육의 미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이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지식은 배워야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에 인터넷 검색사 이런 자격증 있잖아요. 지금 보니 선견지명이 아닌가요. 인터넷 검색만 잘해도 대부분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이제는 이 정보가 얼마나 가치 있고 필요한지,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찾는 교육이 중요해요.

 

제가 학부생 때 교양수업으로 구글 검색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걸러내는 걸 배웠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작가들도 똑같은 입장으로 작업이 막혔을 때 포럼이나 인터넷에서 어떻게 물어볼지 소셜스킬을 더 배울 수 있도록 제도권 안에서 이뤄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