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자택이라는 공간은 우리 삶 속에 더욱더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지인들을 직접 대면하기보다 집에 오래 머물며 SNS를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 삶을 확인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던 중, SNS상에서 성격 유형 테스트가 가파른 속도로 퍼지며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다. 시작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검사였다. 초기 MBTI는 학생의 적성을 위해 진행되던 일종의 진로검사로, 학생의 진로 상담을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2020년, MBTI는 적성과 흥미를 넘어 연애 유형, 라이프스타일 유형 등 다른 요소와 결합하여 자신의 다양한 성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성격을 과자나 동물에 비유하여 새롭게 정의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많은 사람이 쉽고 간편하게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자신의 SNS에 공유하였다. 자신의 성격유형을 다룬 동영상들도 다수 제작되었고, MBTI 검사와 같이 파급효과가 큰 경우, 일상적인 대화부터 방송 주제까지 빈번하게 언급되었다. 바야흐로 나 찾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활동이 감소하면서 우리의 관심은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사회환경에서 내부, 즉 자기 자신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회환경에 적응하면서 모르고 있었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다면적인 모습들에 스스로 궁금증을 품게 된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은 이러한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하게 되었다.
레이블링 게임의 의미와 배경
2021년 트렌드 코리아의 키워드 COWBOY HERO에서 알파벳 R에 해당하는 문구 Real Me’s, Searching for My Own Label에 상응하는 단어인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하는 과정을 뜻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 자신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복합적 요소로 한데 어우러져 구성된 집합체를 의미하며, 따라서 어떠한 요소를 주요한 특징으로 잡을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다원화된 현대사회는 달라지는 환경마다 그에 적합한 성격상,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를 요구한다. 즉,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에 점점 정의하기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이러한 사회를 하나의 연극 무대에 비유했다. 인간의 사회생활을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그의 이론인 극작술(Dramaturgy)은 곧 개인의 특성보다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상호작용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무대를 기준으로 무대 앞은 전면부, 무대 뒤는 후면부로 나뉘고 이것이 곧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무대 전면부, 즉 사회생활을 할 때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를 하면서 자신을 통제하고 타인의 지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노력한다. 반면, 무대 후면부에서는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역할을 수행하도록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멀티 페르소나를 요구하는 현대사회는 이러한 연극 무대가 여러 개로 증가했으며, 그만큼 배우가 후면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지게 되었다.
코로나는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비유적인 뜻에서나 현실에서나 연극 무대는 감염의 위험으로 인해 하나둘씩 취소되었고, 후면부에 있는 시간은 기약 없이 점점 길어졌다. 타인과 교류도 줄어들어 인상 관리의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사회에서 맡은 역할로 형성된 자아가 조금씩 흔들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레이블링 게임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놓인 개인의 정체성에 지지대를 만들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게 되었다. 더불어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레이블링 게임, 그 이면의 이유
표면적으로 레이블링 게임의 대유행은 코로나로부터 기인하였으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코로나가 유행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레이블링 게임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였는데, 이 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와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다. MZ세대는 디지털 기기 및 영상 매체에 친숙하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경험 혹은 소비를 우선시하며, 미래보다는 현재 상황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면서도 자신의 성향을 공유하며,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양면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MZ세대의 특성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맞물려 더욱 두드러진다. IMF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이미 저성장으로 인한 부(富) 축적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자산관리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경우에는 부족한 자원으로 뿌리 깊은 사회적 경쟁구조,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문제가 합쳐져 MZ세대의 심리적 부담감을 더하고 있다. 코로나는 이러한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매개체가 되었다. 실제 2020년 20대 고용률은 55.7%로, 전년 대비 2.5%로 수치가 지속해서 하향하고 있다. 장기간 경제불황과 더불어 불안정한 사회적 안전망 체계가 그들에게 상당한 고립감을 안겨주고 있다.
레이블링 게임은 여러 방면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MZ세대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하는 그들이, 그들의 놀이터인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이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또한, 알기 어려웠던 자신의 성격을 게임을 통해 나온 특정한 유형에 맞춤으로써 일종의 안정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길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유형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레이블링 게임은 코로나 이전에 축적된 사회 변동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의 복합적인 작용에 코로나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 융합되어 나타난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레이블링 게임과 소비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레이블링 게임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형에 맞춰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소비 형태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구매한 상품을 통해 취향을 알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통해 구매 상품을 정하는 것으로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테스트를 통해 자사 판매하는 제품을 광고하거나 출시하기 전, 제품 혹은 서비스를 레이블링 게임으로 홍보하여 소비자들을 선점하는 마케팅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존 레이블을 활용하다
많은 기업이 기존의 레이블링 게임을 사용하여 제품・서비스를 홍보하고 있고, 그중에서 대부분 MBTI 결과를 활용하여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MBTI 유형에 맞춘 음료수를 추천하는데, ISFJ 유형에는 부드럽고 은은한 맛의 음료를 추천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한 플랫폼에서는 온라인 기반 선물 서비스 기능을 한시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MBTI에 근거한 16개의 유형과 더불어 4가지의 하위 분류방식(NT, NF, SJ, SP)을 사용하였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NF 유형을 위해 윤리적인 선물을 추천하거나, 유형의 앞뒤 글자를 조합하여 (IS, TJ)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알려진 지 30년도 넘은 MBTI 마케팅이 급속도로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MBTI 이전부터 별자리나 혈액형을 이용한 레이블링 게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여 단순 재미 목적이 컸다. 그러나 MBTI는 칼 융(Carl Jung)의 성격 이론을 차용하여 개발된, 어느 정도의 정교함과 신뢰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궁극적으로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무료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된 결정적 이유라 생각한다.
기업들은 16personalities라는 사이트의 결과를 활용하여 자사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형태로 변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네 가지 하위 분류방식(NT, NF, SJ, SP)과 A(Assertive), T(Turbulent)의 추가 분류 모두 기존 MBTI 검사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유형 공유도 대부분 이 사이트에 근거한 것이다. 별도의 신청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약식으로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접근성의 벽을 낮추었고, MBTI 방식이 보편화할 수 있도록 도화선이 되어준 셈이다.
새로운 레이블을 만들어 내다
몇몇 기업들은 레이블링 게임을 자사의 핵심 마케팅 전략으로 삼기 위해 직접 레이블링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 생산성 앱은 식물 유형 테스트를 통해 주어진 상황에 따른 선택의 연속된 결괏값을 종합하여, 하나의 식물 유형을 매칭시킨다. 결과에 맞는 최종 유형과 함께 개인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친구 유형을 함께 제시하며 서비스의 최종 목표를 실현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한 유통 업체는 음식을 소재로 테스트를 고안하였다. 방식은 위와 마찬가지로 요리와 관련된 상황들을 보여주고,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음식 유형을 제시한다. 테스트 종료 후 타 유형과 궁합과 함께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실제 상품 판매로 이어지는 목표를 실행시키고자 하였다.
새로운 레이블링 게임들의 특징은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MBTI의 알파벳 유형 대신, 더욱 친근하면서 사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물을 유형화시켜 재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공통으로 심리 테스트를 위한 일종의 가상 상황을 전개하는데, 이러한 점이 MBTI의 문항들과 일정 부분 유사성을 보여 이 역시 MBTI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새롭게 탄생한 기업 맞춤형 레이블링 게임은 심리 테스트의 높은 접근성과 함께 발전하게 되었으며, 소비 진입 단계의 장벽 역시 자연스럽게 낮추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노골적인 광고로 소비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대신,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광고의 느낌을 감소시키는 방식을 통해 구매・이용으로 이끄는 것이 새로운 전략이 된 것이다.
이처럼 레이블링 게임은 대유행을 거치며 그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간소화에 얽힌 배경적 맥락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대유행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고, 새로운 마케팅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치면 독이 되듯이, 과도한 레이블링 게임은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성격과 취향은 입체적이고, 따라서 무조건 하나의 라벨만으로는 정의될 수 없다. 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자칫하면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낙인을 찍는 모순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는 사람의 선택을 한정 지어버리는 리스크의 가능성도 있다. 현재 레이블링 게임은 일상화되었지만, 비즈니스에서는 베타 테스트의 목적으로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의 과도한 몰입으로 인해 수반될 수 있는 부작용을 올바르게 인지하고,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레이블링 게임은 더욱더 효과적이면서도, 사회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역을 확장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