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고대인들은 평범한 금속을 값비싼 금으로 만들려고 시도해 왔다. 이것이 중세로 이어지면서 우리가 아는 연금술(Alchemy)로 발전했다. 성공적인 연금술을 위해 4원소설, 점성술 등 여러 요소들이 투입되었지만,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데는 완벽히 실패했다. 물리와 화학적인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이를 증명할 만한 실험 방법조차 구축되어 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늘날 과학계에서 연금술은 과학보다는 미신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연금술의 또 다른 목적은 물질의 제련 과정과 함께 자기 자신을 더 높은 존재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이렇게 보면 연금술은 연금술사들에게 마법의 힘을 부여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과학 혁명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부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연금술 덕분에 발전한 과학은 실제로 물질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극소량의 금을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은 인류의 삶의 질을 한층 상승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도 함께 일어났다. 자원의 낭비 또한 심화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방법의 연금술이 등장했다.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 또는 새활용이다. 폐기되어야 할 물질이 그대로 버려지는 대신, 본래의 물질보다 더 가치 있는 물질로 재탄생되는 것이 업사이클링의 방법이다.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점도 연금술의 계몽 목적과 일맥상통한다. 업사이클링은 어쩌면 또 다른 의미에서 연금술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업사이클링의 본질
그렇다면 업사이클링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재활용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업사이클링은 어떠한 것의 질을 상승시키다라는 뜻의 단어 Upgrade와 재활용이라는 뜻의 단어 Recycling의 합성어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명을 다한 제품이 본래의 용도로 재사용되는 것이 아닌, 한 단계 발전하여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새로운 형태와 기능이 탄생하는 만큼, 업사이클링 과정에서는 재활용보다 디자인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94년 독일의 엔지니어인 라이너 필즈 (Reiner Pilz)다. 그는 자원 낭비 최소화와 환경보호를 촉구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업사이클링을 강조하였다.
Recycling, I call it downcycling. They smash bricks, they smash everything. What we need is upcycling, where old products are given more value, not less.
재활용, 저는 이것을 다운사이클링이라고 부릅니다. 벽돌을 부수고, 모든 것을 부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오래된 제품들이 더 적은 양이 아닌, 더 많은 양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업사이클링입니다.
필즈의 말처럼 업사이클링은 재활용, 재사용과 일부 공통된 특성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재활용은 기본적으로 폐기될 제품이 특성에 따라 분류되고, 분해되어 원료의 형태로 돌아가고, 일반적인 화학 공정을 거쳐 동일한 제품 혹은 다른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재활용된 제품들은 이전의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지닌다. 즉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의 과정을 겪으며 만들어진다.
반면 업사이클링은 폐기될 제품이 원료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창의적인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제품은 이전의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얻게 된다. 일례로 청바지를 원단으로 분해하여 담요로 제작하는 것은 재활용이자 다운사이클링이다. 하지만 청바지를 개조하여 가방으로 만드는 것은 업사이클링이다.
업사이클링의 현재: 소비 시장에 발을 내딛다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친환경적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윤리적 소비 혹은 가치 있는 소비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들이 이러한 소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Element Three and SMARI의 조사에 따르면, 제품의 지속가능성에 돈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 인터넷 사용자들은 무려 87%에 달했다.
또한 2018년 Global web Index의 조사에 따르면, 적지 않은 비율의 사람들(52%)이 환경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제조와 생산의 주체들에게 있다고 답했다. 두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환경을 생각한 제품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제품을 생산하는 주체들이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력 역시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사례를 보면 업사이클링에 대한 수요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업사이클링 시장은 재활용 시장에 비해 현저히 작다.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폐기물 재활용 시장은 53.71billion 달러 규모에 달했고, 2020년부터 2027년까지 연간 5.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중에서 재활용 시장의 규모가 큰 미국은 2010년 기준, 2,000억 달러(한화 약 220조 원)에 달하는 시장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업사이클링 시장 규모는 같은 해 1250만 달러(한화 약 138억 원)에 불과해, 재활용 시장 대비 현저히 낮은 지분을 차지하였다. 한국 역시 2015년 기준 재활용 시장의 매출은 5조 원을 기록하였지만, 주요 업사이클링 기업들의 연간 소득의 총합은 20억 원에 그쳤다. 이는 업사이클링 전문 기업들이 대부분 소규모 신생 스타트업 형태라는 점과 역사가 짧은 만큼 비즈니스 모델과 이를 둘러싼 가치 사슬의 구조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적은 공급은 역으로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프라이탁(Freitag)과 같은 사례는 이것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증명한다. 스위스 취리히를 본거지로 둔 프라이탁은 세계적인 업사이클링 기업이다. 1993년, 형제 마커스와 다니엘 프라이탁(Markus and Daniel Freitag)이 세운 이 기업은 공장에서 나온 트럭 천, 자동차 안전벨트, 자전거 폐타이어들을 모아 가방으로 재탄생시킨 것을 시작으로 현재 연간 77억 7,000만 달러(한화 약 8.5조)의 수익을 내고 있다. 직접 원료들을 수집하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의 제품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프라이탁 가방의 특징이다.
2014년에는 생분해성 섬유로 만들어진 F-abric을 출시하며 지속가능성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기업이 프라이탁처럼 폐플라스틱부터 폐천을 아우르는 원제품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리사이클링 방법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확장해 가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파타고니아처럼 업사이클링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는 기존 기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업사이클링의 미래: 물질의 잠재력을 일깨우다
이제 업사이클링 제품들은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활용플라자와 같은 지역 업사이클링 센터들이 설립되는 등, 국내 업사이클링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업사이클링 제품들의 주재료는 대부분 완성된 제품이었다. 의류, 타이어, 플라스틱병과 같은 재료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공물이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제조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동안 재활용 품목으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절대로 재활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요소들까지 새활용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래의 업사이클링은 시장의 변화를 넘어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물질에 관한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까지 제공할지도 모른다.
지푸라기를 일회용 용기로 바꾸는 힘
태국은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지어 왔다. 벼농사가 끝난 다음에는 다량의 지푸라기들이 남게 되는데, 이것이 토양에서 부패할 경우 메탄을 방출하여 온실가스 증가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경작이 완료된 땅을 불에 태웠다. 그러나 연소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잉여 볏짚은 또한 소의 여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태국에서 농사 이후 발생하는 볏짚의 양은 소들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설 만큼 많은 양이었다. 또한 볏짚은 오래전부터 건축 자재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축 기술이 발달하며 그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모로 볏짚은 처리하기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역으로 이용하여 처치 곤란한 볏짚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업가인 자루완 카무앙(Jaruan Kammuang)의 아이디어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태국 북부의 람팡 주로 돌아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다. 그것은 바로 볏짚을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볏짚을 짧게 자른 뒤 뜨거운 물에 넣어 약 4시간 동안 끓이면 펄프 형태로 변환된다. 그녀는 이 펄프를 공장에서 가공하여 쌀 종이나 생분해성 일회용 용기 형태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치앙마이 대학교와의 협업을 통해 식기 내부를 쌀 전분으로 코팅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음식의 기름이나 수분, 열 등이 식기를 손상시키는 것을 일정 시간 동안 막는 역할을 한다.
자루완 카무앙의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그녀는 현재 시장 수요 조사와 제품 품질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동시에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향후 태국 노점 시장 구조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태국의 길거리에는 수많은 노점상이 즐비해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아 준다.
태국은 세계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방콕 포스트는 지난 2017년 태국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과 함께 전 세계 해양쓰레기 중 60%를 배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만일 생분해성 일회용 볏짚 용기가 더욱 발전해 대중화된다면, 플라스틱 소비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노점상과 노점 상인들의 터전을 보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공해를 타일로 바꾸는 힘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은 대기 오염의 주범이다. 중국의 예술가 브라더 너트(Brother Nut)는 100일 동안 공기 중에 있는 미세먼지를 청소기로 흡입하고 압착하여 벽돌을 만들어 냈다. 공연 예술가 브라더의 작품은 대중들로 하여금 중국의 대기오염 실태에 경각심을 갖도록 일깨웠다. 인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대다수의 지역은 미세먼지 나쁨(150-200)을 기록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극도로 위험(300-500)까지 달했다. 이러한 실태를 반영하듯 인도에서도 중국의 브라더 너트와 비슷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전자가 사회적 메시지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둔 반면 후자는 위기를 자원으로 전환하여 실용적인 디자인을 고안하는 데 집중했다는 차이가 있다.
건축가 테자 시드날(Tejas Sidnal)은 뭄바이의 위치한 스타트업 카본 크래프트 디자인(Carbon Craft Design)을 설립하여 탄소 타일(Carbon Tiles)을 제작하고 있다. 타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30,000 ℓ의 공해가 필요하다. Carbon Craft Design은 MIT 미디어랩 산하 기업인 AIR-INK의 기술을 이용해 공해를 수집한다.
이렇게 모인 대기 오염 물질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탄소를 얻어내고, 얻어 낸 탄소를 대리석과 시멘트 등 건축 자재와 섞어 고체 혼합물인 슬러리(Slurry) 형태로 변형시킨다. 이후 형틀에 슬러리를 붓고 압착하여 타일을 완성한다. 이 흑백의 타일들은 각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디자인을 담은 Identile 시리즈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디자인으로 표현한 Industile 시리즈로 나누어진다.
탄소 타일은 환경 오염의 대안이 되는 동시에 인도의 도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유용한 제품이 될 수 있다. 인도는 세계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UN인구기금은 2024년, 인도가 세계 인구 1위 국가인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인구 증가 속도에 비해 주거 개발의 속도가 더딘 현 시점에서 탄소 타일은 주거 환경 개발 및 개선 측면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200년 동안 전수되어 온 인도의 장인들과 함께 전통 건축 기술을 사용하여 탄소 타일을 제작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기술 발달로 인해 설 자리가 줄어든 장인들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지역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지지대로도 발돋움할 것이다.
과일을 가방으로 바꾸는 힘
과일은 영양가가 많고 맛도 풍부하여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인기와 달리 많은 과일들이 수확 과정에서, 또는 유통 과정에서 버려지게 된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과일의 모양이다. 과일의 모양이 심미적으로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맛이나 신선도와는 상관없이 과일을 판매하는 곳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이러한 과일들을 못난이 과일이라고 부르며, 못난이 과일들만 별도로 모아 저렴하게 파는 서비스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일들을 재판매하는 행위를 넘어 아예 식품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의 코헨 미어커크(Koen Meerkerk)와 휴고 드 본(Hugo de Boon)은 푸르트레더 로테르담(Fruitleather Rotterdam)이라는 스타트업을 세워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였다. 회사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들은 못난이 과일을 가공하여 가죽 가방을 만든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폐기 단계에 놓인 과일들을 수집한 뒤, 씨를 제거하고 압착하여 퓨레를 만든다. 그런 다음 이 퓨레에 여러 재료를 첨가하여 건조시킨 뒤 얇은 판과 같은 재질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질은 실제 가죽과 흡사한 질감과 탄력성, 형태를 지닐 수 있도록 추가적인 공정 과정을 거친다. 푸르트레더 로테르담은 현재 질감과 색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신발 등 제품 자체의 스펙트럼도 확장해 가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현재진행형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업사이클링 방안이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현재의 업사이클링 시장이 가진 단점 또한 정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업사이클링 제품들은 소량으로 제작되기에 값이 비싸다.
그렇기에 이를 지불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동일 대량 생산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단가를 낮출 수 있는 방식을 끊임없이 연구해야만 한다. 또한 소비자들의 단순한 관심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확한 홍보를 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인 현실 인지를 바탕으로 업사이클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간다면, 사회 전반에서 막대한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