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1942~) 작가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서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붓을 쥔 두 팔을 쭉 뻗어 원을 그리고, 화면을 등진 채 선을 긋는다. 붓에 물감을 묻힌 채 팔의 길이만큼 표현하는데, 그의 시각은 캔버스를 향해있지 않다. 즉, 보지 않은 상태에서 드로잉을 진행한다. 작가는 손목이나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한 채 건빵을 먹는 행위를 보여주고, 손에 백묵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며 선을 잇는다.

 

이건용은 서구 미술이 유입되기 시작하던 1960년대, 국제적인 미술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바탕으로 실험적인 예술을 전개해 나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간 이건용은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등으로 대변되는 추상미술의 흐름 속에서 실험미술 작가로만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LEE KUN-YONG 이건용 : BODYSCAPE》를 개최하고, 키아프 서울(KIAF SEOUL) 2021 등 아트페어에서 미술 시장을 달구며 회화 분야에서도 다시금 블루칩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가 실험미술 작가로 자주 언급된 이유는 1960년대 한국 전위예술을 이끌었던 A.G.(Avant-Garde, 1969-1975)와 ST(Space and Time, 1971-1981)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이다. A.G.는 서구의 새로운 미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한국 화단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A.G.가 관념과 개념적인 것들을 강조했다면, ST 그룹은 학술적이고 철학적인 부분에 주목했다. 이건용은 동기동창이었던 김복영(1942~)과 함께 ST를 조직해 1971년 창립 전부터 약 10년간 그룹 활동을 지속했다. 그의 구체적인 실험도 주로 ST 구성원들과의 전시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건용이 《S.T.》 제4회전(1975)에서 선보인 <건빵 먹기>는 그의 예술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건빵을 먹는 행위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건빵을 집어먹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팔목, 팔꿈치, 어깨, 겨드랑이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은 채 건빵을 집어먹는다. 점차 제약을 추가하고 팔을 전혀 구부릴 수 없게 되자 건빵을 얼굴 위로 던져 입으로 받아먹으려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작가가 이런 행위예술을 한 이유는 신체의 제약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신체적 굴레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건빵을 손으로 집어 먹는 다분히 일상적인 행위를 삶에서 분리하고 행위를 사건화하여 세계를 탐구한 것이다.

 

여기서 사건화라는 표현은 이벤트(event)라는 용어와 연결된다. 이벤트는 이건용 행위미술의 핵심 키워드다. 이벤트는 본래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뜻인데, 미술에서의 이벤트에는 의도성이 개입되지 않는 해프닝 개념이 추가된다. 해프닝은 1950년대 말 미국의 예술가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1927~ 2006)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미리 짜인 대본에 따라 진행되는 퍼포먼스를 일컫는다.

 

이벤트와 해프닝은 모두 퍼포먼스 범주에 속하지만, 이벤트는 해프닝과 비교했을 때 의도성이 적고 비계획적이다. 즉, 이벤트는 의도하지 않은 해프닝이라 볼 수 있다. 이건용은 서구의 이벤트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행위를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이라고 이름 붙였다. 로지컬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이벤트에 논리를 더한 것이다.

이건용, <건빵 먹기>, 1975,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이건용, <장소의 논리>, 1975, 테이트모던(Tate Modern)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장소의 논리>는 그의 이벤트-로지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건용은 운동장에 서서 들고 온 막대기로 둥근 원을 그린 다음, 원의 안에서는 여기, 원의 앞에서는 거기, 원의 밖에서는 저기라고 말한다. 언어라는 논리적 기호를 이용해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신체의 움직임을 탐구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신체와 언어는 주변 상황을 조건 짓는 요소가 되며, 예술가의 신체와 세계는 연결된다.

 

자신의 신체와 세계를 연결하기 위한 작품 <신체 드로잉>은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에 있다. 이건용의 작업에서 신체는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동시에 주체화하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그는 스스로의 몸을 타자화함으로써 관념이나 선입견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신체 드로잉>에서 작가는 자신의 신체를 제한하는 상황을 스스로 설정한 뒤 그 안에서 드로잉을 수행한다. <신체 드로잉>의 유형은 대략 7개 정도로 구분되는데, 화면의 앞, 뒤, 옆에서 시각을 제한하는 방법, 팔에 깁스를 하거나 다리 사이에 팔을 넣는 방법, 양팔이나 어깨를 축으로 삼는 방법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신체적 회화로도 불리는 그의 <신체 드로잉> 연작은 신체적 행위와 회화를 결합해 드로잉으로 나타낸 그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1976년 선보인 <신체 드로잉 76-1>에서 그는 자신의 키에 맞춰 170cm 높이로 자른 나무판 뒤에서 드로잉을 수행한다. 작가는 나무판의 앞쪽으로 팔을 뻗어 손이 닿는 범위까지 선 긋기를 시도하는데, 자신의 키에 맞춰 나무판을 준비했기 때문에 작가의 시각은 완전히 차단된다. 나무판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선을 다 그으면 그 선의 길이만큼 판을 톱으로 베어낸다. 이렇게 하면 처음보다 팔이 나무판 뒤로 조금 더 넘어가므로 점점 더 긴 선을 그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반복적으로 선을 긋고 나무판을 잘라가는 작업은 이건용이 신체를 다루는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되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나 완벽하고 싶은 욕망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필요가 있다고 봐요.

– 이건용, 『흔들리는 선』 수록 인터뷰 中 –

이건용, <Bodyscape 76-7-2021>, 2021, Acrylic on canvas, 91X116.8cm © 갤러리 현대
이건용, <Bodyscape 76-3-2021>, 2021, Acrylic on canvas, 130.3X162.2cm © 갤러리 현대

과거에는 드로잉이 작품 제작에 앞서 실행되는 부수적인 작업이었다면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은 그 자체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드로잉이 지니는 즉흥성과 단순성은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미술사적으로도 열린 결말을 가진 표현 수단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건용의 작품 세계에서 볼 수 있듯 드로잉은 신체를 드러내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으며, 작가의 신체와 세계를 연결 짓는 매개체가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건용의 예술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체다. 작가가 자신의 <신체 드로잉> 작업을 현신(現身)이라는 단어로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미술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1941~)는 신체를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며 가려져야 할 대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존적 위기 속에서 신체는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강박적인 신체를 드로잉으로 표현한 이건용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의 현존하는 삶을 꺼내 보인다. 평면에 선을 긋는 행위로써 신체에 흔적을 남기고 또 지워내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