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요즘 명동, 홍대, 강남역, 압구정 등 서울 번화가에서 빈 점포들을 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지속된 불황과 쇼핑 패러다임이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바뀐 결과다. 물론 가장 큰 직격탄을 던진 건 팬데믹, 코로나19다.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감염병 탓에 매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었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가 무색할 정도로 치솟는 임대료까지 더해져 이중고를 앓고 있다.

 

온라인 시대에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오프라인 매장. 그 와중에 비대면, 비접촉의 파고를 넘어서며 코로나 시대에도 소비자의 니즈를 파고든 매장들이 있다. 창의적 발상으로 오프라인 매장 성공기를 만들어 가는 브랜드들의 대담한 도전을 살펴본다.

더현대 서울의 워터폴 가든 Ⓒ 직접 촬영
LG전자 베스트샵 무인 매장 전경 Ⓒ 직접 촬영

백 가지 새로운 경험, 더현대 서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은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온라인 유통업체는 18.4% 증가한 반면,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준대규모점포(SSM)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3.6%나 감소했다. 그중 백화점의 부진이 눈에 띈다. 전체 유통시장에서의 매출 비중이 줄었으며 매출 감소 폭은 9.8%로 가장 컸다. 특히 유통시장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편의점에서조차 매출이 역전됐다.

 

현대백화점은 강남에 백화점 시대를 연 압구정 본점, 수도권 최대 백화점인 판교점 등 그간 고급화와 대형화 전략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운영하지 않기에 경쟁사인 롯데나 신세계에 비해 백화점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현대에게 온라인 시장으로의 급격한 쏠림 현상과 오프라인 매장의 침체는 더욱 큰 위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은 새로운 컨셉의 대규모 백화점 출점으로 위기 국면 전환에 나섰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백화점그룹이 올 2월 여의도에 개점한 더현대 서울(The Hyundai Seoul) 이야기다.

 

현대백화점의 야심작인 만큼 더현대 서울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움을 제시한다. 압도적인 개방감과 자연 채광, 그리고 도심 속 정원이 그 열쇠다. 그동안 시계, 창문 등 쇼핑에 방해되는 요소는 일단 배제한다는 백화점의 기존 문법을 깬 파격이다. 현대는 이를 도심 속 자연주의를 콘셉트로 한 리테일 테라피(Retail Therapy), 즉 쇼핑을 통한 힐링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출발점은 공간 디자인 혁신이다. 우선 매장 면적을 과감히 포기했다. 고객들이 편히 휴식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고객 동선도 넓혔다. 전체 영업 면적의 절반가량을 매장이 아닌 실내 조경이나 고객 휴식 공간 등으로 꾸몄다. 기둥은 최대한 없앴다. 시야는 물론 걷는 데 거칠 것이 없다. 통로의 너비는 유모차 8개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다.

 

자연 친화형 백화점에 걸맞게 모든 층에서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천장은 모두 유리다. 채광을 위해 천장부터 1층까지 건물 전체를 오픈시키는 건축 기법을 도입했다. 1층 매장에서도 햇살을 맞으며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시간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혁신적 공간 설계의 압권은 5층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Sounds Forest)다. 3,300㎡(1,000평)에 천연 잔디와 30여 그루의 나무와 꽃을 심었다. 전체 높이만 아파트 6층에 해당하는 20m에 달한다. 다른 한쪽에는 12m 높이의 인공 폭포 워터폴 가든(Waterfall Garden)이 더해져 전체 공간의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룬다. 인공폭포 맨 위의 뽕나무가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더현대 서울의 조경은 인공으로 만들었지만, 진짜 숲에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국내 첫 자연 친화형 백화점 전략은 대성공인 듯하다. 코로나임에도 개장과 동시에 방역 당국을 긴장시킬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그 자체의 구전 효과도 컸다. 도시인에게 삶의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백화점 같지 않은 백화점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의 쇼핑몰에, 낯선 카니발에 참가한 듯한 이국적 경험을 안겼다. 그리고 그 경험은 쇼핑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사람들은 색다른 새 공간에 쉽게 동화되었다.

 

언택트로는 느끼기 어려운 경험이 현대백화점의 브랜드 선호도를 높이고 공감의 가치를 더했다. 현대백화점이 그동안 추구해 온 새로운 생활 문화 제안을 더현대 서울이 충실히 이었다. 고품격 포지셔닝은 고객들 마음에 이미 자리 잡은 듯하다.

‘무인’이 ‘유인’의 가장 큰 무기, LG전자 베스트샵

LG전자는 코로나19 확산과 비대면을 선호하는 언택트 문화에 맞춰 지난 5월 말부터 판매매장 LG전자 베스트샵을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간 아이스크림 등 식음료 매장이나 편의점을 비롯해 유통업계에 무인화 바람이 불고 있긴 했지만, 고가의 전자제품 매장을 무인으로 운영한 사례는 LG전자가 처음이다.

 

무인 LG전자 베스트샵은 서울 서초, 강서, 금천 등 서울 지역의 6개 매장을 포함해 인천 부평, 경기 일산, 부산 사상 등 모두 9곳이다. 주간 시간에는 일반 유인 매장으로 운영하다 직원들이 퇴근한 후 오후 8시 반부터는 무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무인 매장은 영업시간에 방문이 어려운 직장인이 퇴근 후 늦은 저녁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요즘과 같은 찜통더위와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것을 피해 원하는 제품을 조용히 꼼꼼하게 살펴보기에 좋다. 고객은 매장 입구에서 QR코드를 스캔한 후 본인 인증과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과정을 거친 후 입장이 가능하다.

 

무인 매장은 TV, 냉장고, 청소기 등 생활가전에서부터 노트북, 모니터 등 LG전자의 다양한 제품들을 상담 직원이 없어 자유롭게 구경하고 시연할 수 있다. 프리미엄 라인으로 판매가가 1,100만 원에 달하는 LG시그니처 냉장고의 이곳저곳을 살펴볼 수도 있고, 관람하는 동안 입고 간 옷을 트롬 스타일러에서 테스트해 볼 수도 있다. 마치 매장 전체를 전세 낸 것처럼 말이다.

 

제품에 대한 상세 정보가 필요하면 층마다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된다. 무인 매장답게 자율주행 로봇 클로이(CLOi)가 카탈로그를 싣고 매장 곳곳을 돌아다닌다. 때로는 방문객을 안내하기도 한다. 아직 현장에서 바로 제품을 구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 매장의 카카오톡 채널에서 일대일 상담 메뉴를 통해 제품 정보, 매장 이용 방법 등을 문의하면 바로 알려준다. 또 직원과의 대면 상담이 필요하면 키오스크로 직원이 근무하는 시간에 다시 방문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예약하면 된다.

 

LG전자는 온라인에 익숙하고 오프라인 매장 방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MZ세대의 취향을 고려했다. 그동안 판매 직원의 부담스러운 시선(?), 과도한 설명이나 구매 권유에 언짢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 편히 나만의 제품 탐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고가의 가전제품을 온라인으로만 검색해서 구매하기에는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직접 실물을 보고 만져보고 최종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매장의 콘셉트를 바꿨다. 발생의 전환이다. 고객에게 브랜드에 대한 새로움과 신뢰성을 안겨 주는 트렌디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LG전자가 보여준 언택트 스토어의 과감한 시도가 더 인상 깊은 이유다.

체험 그 이상의 가치, 밀레

서울 서초동 조용한 주택가에는 특별한 빨래방이 있다. 독일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밀레(Miele)의 세탁기기를 갖추고 지난해 6월 문을 연 어반런드렛(URBAN LAUNDERETTE) 1호점이다. 어반런드렛은 120여 년 전통의 밀레가 상업용 드럼세탁기와 의류 건조기를 독점 공급하는 차별화된 시스템의 무인 빨래방이다. 밀레만의 고유한 세탁과 건조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빨래부터 건조까지의 전 과정을 키오스크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다. KEEP CLEAN & GREEN의 슬로건처럼 천연, 친환경, 무독성, 생분해 등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특별한 세탁문화를 제공한다.

 

최근 몇 년간 셀프 빨래방이 곳곳에 생겼다.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세탁 관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4천6백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셀프 빨래방은 1인 가구 증가와 주상복합아파트 등 주거 공간의 변화로 급증했다. 거기에 황사, 미세먼지와 고온다습한 날씨 등 기후와 환경적인 요인이 더해졌다.

 

빨랫감을 집 밖으로 갖고 나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다 보니 빨래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가격 경쟁 위주의 레드오션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밀레코리아와 국내 파트너사인 ㈜제이피이노베이션은 여기에 착안해 하이엔드 세탁 서비스를 선보였다.

 

어반런드렛은 지속가능하고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고품격 셀프 세탁 브랜드를 지향한다. 소비자 니즈에 맞는 새로운 세탁 코스를 자체 개발했다. 울이나 패딩 소재의 의류부터 극세사, 구스 이불까지 세탁물의 소재와 형태별 맞춤 세탁 코스를 제공한다. 열에 의한 섬유 수축을 방지하기 위한 국내 최초 무열 건조 코스도 도입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고성능의 프로페셔널 세탁기와 건조기로 세탁물 손상과 구김을 최소화했다.

 

어반런드렛에서 사용하는 모든 제품은 가능한 한 자연적으로 생분해되는 친환경 원료를 사용한다. 빨래 봉투 또한 100%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 매장에서 사용되는 프리미엄 세제 라인도 세척력과 향기 등을 직접 체험해 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비영리 재단법인 서울그린트러스트와 협약을 맺고 수익금의 일부를 환경보호 캠페인에 기부한다.

 

어반런드렛은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높은 선호도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주목한다. 특히 고급 주거 상권에 부합하도록 호텔 또는 카페와 같은 미니멀한 인테리어와 럭셔리한 세탁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천연 아로마 오일 향과 함께 세탁하는 동안 밀레 커피 머신으로 음료를 즐기고,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했다. 마치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빨래방이 아닌, 세탁 카페 같은 느낌을 준다.

 

일반 빨래방과의 확실한 차별화로 우리의 또 다른 일상인 빨래하는 과정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한다. 좀 더 여유 있는 차별화된 세탁문화의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다. 누구나 선망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밀레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자연히 따라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생존을 위한 오프라인 매장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온라인 업체와 전략적 제휴, 숍인숍 확대, 제품 라인업 변화와 재배치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약효가 오래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매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통채널이다.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을 스마트폰과 PC 앞에서 박차고 나서게 할 만한 힘이 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전하고 고객과 특별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의 가치는 여전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성공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지금의 브랜드들은 가격과 편리함을 넘어 공감각의 만족을 끌어낼 수 있다면,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브랜드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통의 미래에도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