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라는 뜻의 비엔날레(Biennale)는 1895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당대 예술적 담론이 공유되는 국제 미술 전시로 자리 잡았다. 태생적으로 글로벌 이벤트인 만큼 초국적인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하지만, 1990년을 전후로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점차 개최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갖춘 행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비엔날레는 지역의 위치를 신선하게 지정하는 장으로서 새로운 지역성을 창출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는다. 여기서 지역성은 국제성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지역성은 늘 타자와의 직면과 교섭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9월 3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린 2022부산비엔날레 또한 다변화하는 사회상을 미술이란 틀로 바라보면서 부산이라는 지역을 역사적으로 탐색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전시 제목은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이다. 부산을 응축한 단어, 물결은 오랜 세월 부산으로 유입되고 밀려났던 사람들과 요동치는 역사에 대한 표현이자 세계와의 상호 연결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삶에 침투한 기술의 모습을 은유하고, 해안 언덕으로 이루어진 부산의 지형을 함축한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대륙과 해양의 접점이라는 부산의 장소적 특징을 활용하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2022부산비엔날레 전시 공간 역시 부산이라는 지역을 잘 드러내는 부산현대미술관,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 총 네 곳으로 선정되었다.
비엔날레의 주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 부산현대미술관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에 있다. 이곳은 다양한 생물종의 터전이자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1980~199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섬의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자 한때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기도 했을 만큼, 부산의 도시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생태 환경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주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 부산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를 아우르는 주제로 작품이 구성되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지리적 특성을 정체성 확립의 중심에 두고 크게 네 가지의 전시 주제를 제시했다. 이주, 여성, 도시 생태계, 기술 변화와 로컬리티가 그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보이는 필리다 발로(Phyllida Barlow)의 <무제: 블루캐처; 2022>는 작가가 부산비엔날레를 위해 새롭게 만든 신작으로, 부산의 어선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그물들로 만든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이 작품은 오랫동안 잊힌 유적이나 바다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난파선의 흔적처럼 보인다. 작가는 산업적 재료를 사용해 만든 작품을 통해 부산의 바다와 노동,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다.
땅과 물의 역사를 추적하는 오토봉 엥캉가(Otobong Nkanga)의 설치도 부산비엔날레의 주제 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작가는 인간과 땅, 생명으로부터 파생되는 관계와 갈등에 주목해 생태와 환경,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다루어 왔는데,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대지와 인간의 상호연결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부드러운 돌, 부드러운 침대>와 <먼 곳에서 흔적을 남기다>라는 작품에서 기다란 끈을 사용하여 유리, 나무,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여러 조각들을 연결한다. 작가는 각 요소가 서로 떨어진 지점 사이를 통과하고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인간 외적인 존재들의 상호관계성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부산항 제1부두는 부산을 외부와 연결하는 관문이자 이주민들의 통로가 된 곳이다. 이곳에는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의 경제와 노동, 이주와 관련된 장소적 맥락이 녹아 있다. 2021년에 개최된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문과 폭행으로 다친 시민들이 치료받던 옛 국군광주병원을 전시장 중 한 곳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이처럼 부산비엔날레 역시 지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곳을 전시장소로 삼음으로써 장소 특정적 미술을 실천하는 장이 되었다.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은 장소의 의미가 곧 작품의 핵심적인 의미를 형성하는 미술로,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부산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동시대 사회적 현상에 목소리를 더하는 장소 특정성을 지니게 된다.
부산항 제1부두에 설치된 작품 중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는 현남의 <연환계>가 있다. 연환계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 등장하는 책략 중 하나로, 고리를 잇는 여러 가지 계책을 의미하는 말이다. 전 지구적 통신 체계인 해저 케이블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크고 작은 조각들이 구멍을 통과하는 사슬로 이어지고, 서로 연결되어 공중에 떠 있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각각의 조각들은 서로를 지탱하고 있지만, 하나가 끊어지면 전체가 흐트러지는 위태로운 상태를 보여준다. 제1부두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녹슨 배의 닻을 사용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무역과 여객의 수송로로 기능했던 부산항의 역사를 드러낸다.
영도 전시장 또한 장소적 특성이 돋보였다. 영도는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애환이 깃든 섬이자 가족과의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던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1930년대부터는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근대조선공업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6.25 전쟁 이후 어업 종사자가 몰려들면서 선박 관련 업체들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엔날레 전시장은 영도에 위치한 송강중공업 폐공장 건물에 마련되었는데, 이미래의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2022)는 이곳을 압도하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미래는 시멘트, 레진, 철, 석고 등 건설 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재료를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로, 대규모 설치를 통해 신체가 작품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 소모되는 감각을 다룬다.
작품이 설치된 송강중공업 공장은 태풍으로 인해 건물의 지붕과 벽체의 일부가 날아간 채 복구되지 않은 채로 있었는데, 이미래는 골조가 드러난 건물을 작업의 일부이자 배경으로 사용하면서 영도의 산업 생태계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항구 도시인 부산은 인구의 대부분이 타지에서 유입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디아스포라와 이주민들의 삶, 언어와 문화 상실의 경험을 다양한 예술적 실천으로 풀어냈다. 비엔날레 전시장 중 한 곳인 초량은 이주와 노동을 상징하는 곳으로서, 산과 언덕 위에 빼곡히 자리 잡은 부산의 거주지 풍경을 담아낸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초량의 언덕에 위치한 집 한 채를 전시장으로 사용하면서 유기적 네트워크를 지닌 부산의 오랜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김해주 전시 감독은 전시 제목에 우리가 들어간 이유를 물결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작용이 공동이라는 조건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부산의 산업화 과정에 기여했으나 그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에 주목했다. 부산 지역의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여성 목소리를 내세우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RBSC)은 부산의 해조류, 맨손 어업, 갯바위 지형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취를 감추어 가는 주변부의 존재들을 불러들이며 각각의 존재가 만드는 감각, 노동, 믿음의 이야기를 연결했고, 문지영은 가부장 중심의 가족 속에서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을 그리며 서로가 주는 위로를 회화로 표현했다. 이러한 관점은 부산 지역의 여성 노동자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여성들과 연대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2022부산비엔날레는 본 전시 외에도 사전 준비 프로그램, 큐레토리얼 워크숍, 뱃노래 프로젝트, 저널, 퍼블릭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특히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부표들이라는 카테고리는 비엔날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부산의 지역, 역사, 사건, 문화를 리서치 형식으로 제시했다. 다양한 정보와 교육 프로그램들은 급격하게 산업화된 부산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25개국 작가의 239점 작품으로 꾸며진 2022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이 갖는 특수한 물리적 환경과 인문적 환경으로서의 지역성이 돋보인 전시였다. 미술관과 갤러리 등 제한된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삼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부산비엔날레만의 작품들을 통해 지역적 정체성을 부각했다. 이를 통해 하나의 중심이 아닌 다원화된 중심을 추구하며,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를 지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