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화두가 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 배경에는 산업혁명이 있다. 내연기관과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삼은 2차 산업혁명은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고 문명에 거대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경제와 사회 전반에 있어 연착륙에 성공한 국가들은 늘어난 세수 덕분에 사회 복지 및 국가 시스템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있었고, 자연스레 지속가능한 건강한 발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은 2011년 제레미 리프킨이 자신의 저서에서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를 키워드로 3차 산업혁명을 처음 개념화했던 것이 지속가능성 문제가 대두된 시발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그보다 한참 전인 1970년대 초반이었다. 1972년, 저명한 학자들과 정치인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 로마클럽의 연구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가 발간되었으며, 그 보고서에는 모두가 성장에만 몰두했던 당시의 정세가 유지된다면 인구증가, 환경오염, 자원고갈을 이유로 100년 이내에 지구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 예견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여러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그전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았던 환경 문제 그리고 건강한 개발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활발히 이어졌고, 시간이 흘러 2015년 UN에서는 17개 항목의 지속가능개발목표를 채택하여 세계 모든 국가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공표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2000년대 이후 많은 기업 또한 그들의 경영활동이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방향을 맞추고 있다. 세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시대의 위기에 공감하며 기업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논의된 초창기에는 경영 활동 과정에서 환경과 사회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는 수준에서 행하는 보상적 차원의 사회 기여 활동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영 비전 자체를 지속가능한 발전에 두고 있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업 혹은 브랜드의 정체성(identity)을 설정할 때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이윤 추구에 앞서 사회, 더 나아가 세계의 이로움을 추구한다. 이 글에서는 해외 브랜드 중 그러한 대표적 사례들을 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에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COOP 조합원들 Ⓒ COOP 블로그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Co-operative Group_영국

코업그룹은 슈퍼마켓, 장례사업, 보험업 등을 경영하는 영국 최대의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다. 특히 식료품 시장만 따져 보면 영국 전체 리테일 브랜드 가운데 시장점유율 6위를 자리하고 있다. 코업그룹의 영어명 Co-operativ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협동조합’인데, 모든 브랜드명과 상표에 그 줄임말인 COOP을 그대로 사용하여 경영활동 모든 곳에서 기업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이러한 배경에서 코업그룹이 최근 주목하는 지속가능성의 가치 중 하나는 경영 활동에 포함된 모든 조합원과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의 안녕(well-being)이다. 기업의 성격상 주주에 의해 기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기업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조합원들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조직에 대한 헌신이 가능할 때 기업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조직원들의 안녕은 결국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발전에 이로움을 더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코업그룹은 조합원들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조합원들이 회사의 모든 경영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한다.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조합원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 덕에 조합원들은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캐릭터 디자인, 애플리케이션 구축 등 분야와 상관없이 모든 경영 활동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최근의 팬데믹 상황 가운데서도 코업그룹은 조합원들의 신체 및 정서적 안녕을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24시간 무료 심리 및 건강 상담과 가정 재무 설계 서비스까지 지원한다. 또한 건강 유지를 위해 조합원 본인과 가족에 대한 운동시설 멤버십을 제공하고, 심지어 수면 질 관리, 식단 관리 등에 대한 정보와 연계 서비스 또한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코업그룹은 조합원들이 개인의 안녕을 바탕으로 각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장한다. 조합원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한 펀드 조성, 커뮤니티 센터 지원, 지역 농수산물 거래, 교육 문제 개선, 지역사회 웰빙 지수 리서치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이 모든 활동의 주축이 된다.

 

코업 그룹의 경영 활동은 전반적으로 전사적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 이들은 최근에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플라스틱이나 탄소 중립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굶주림 종결: Tetra Pak_스웨덴

테트라팩은 회사명이자 브랜드명이자 제품명이다. 이름만 들으면 과연 무슨 제품인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재활용 시 플라스틱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종이류에 버려야 했던 그 냉장 주스 용기가 바로 테트라팩이다. 테트라팩의 용기는 종이 코팅 기술과 진공 패키지 시스템을 사용한다. 그 때문에 종이를 사용함에도 음식물, 특히 음료 장기 보관을 가능하게 하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용기로 평가받고 있다. 우유와 같이 상하기 쉬운 제품이나 신선도가 중요한 과일 주스 브랜드 등이 주요 고객사다.

 

테트라팩은 문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을 십분 활용한다. 특히이들이 중점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아동 빈곤에 관한 것이다. 테트라팩은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하여 영양실조 문제가 심각한 국가의 아동들에게 장기 보관이 가능한 우유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어린이 영양 불균형 문제를 돕기 위해 우유 급식이 시작되었듯, 우유는 국가 식량 부족 문제로 영양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꼽힌다. 테트라 팩에 담긴 우유는 상온에서 6개월까지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냉장고가 없거나 실온에서 제품 보관 기간이 길어져도 섭취 시 문제가 없다는 큰 장점이 있다.

 

현재 지원 국가 중 하나인 부룬디에서는 58%의 국민이 영양실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영양실조 문제가 부룬디 아동들의 학습 능력 저하와 학교 자퇴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테트라팩은 유엔세계식량계획(WFP) 그리고 고객사인 우유 제조사와 연계하여 자신들의 용기가 사용된 우유 제품을 이와 같은 국가에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당 국가의 아동들은 건강한 영양 상태를 바탕으로 학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아동 빈곤에 대한 관심은 식품을 어디서나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는 테트라팩의 경영 이념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경영 철학은 테트라팩 전체 조직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특별한 활동을 새로 지어내기보다, 회사의 전반적 근간이 되는 기술을 활용하여 세계 빈곤 문제,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테트라 팩은 건강한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례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테트라팩 제품 이미지 Ⓒ Tetra Pak
개발도상국 아동들의 영양 불균형과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우유를 지원하는 테트라팩 Ⓒ Tetra Pak

산업, 혁신, 공공시설: Sustana_미국

서스타나는 오로지 지속가능성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다. 브랜드와 제품은 물론이고 기업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지속가능성으로 삼고 있다. 이 회사는 각종 폐섬유를 재활용한 종이, 미용 티슈, 그리고 포장재 생산을 주력 사업으로 한다. 서스타나는 스스로를 지구를, 도시를, 사회를 건강히 유지하기 위해 재활용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폐기물을 수집하고, 그 폐기물을 이용해 새 제품을 만들므로 이윤을 추구하는 생산활동 자체가 환경과 사회를 보존하는 일이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용수와 에너지도 최소한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존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사실 지속가능성은 서스타나 기업의 설립 이념이자 정신이며 달성 목표가 된다. 그렇기에 서스타나는 최선을 다해 생산 활동만 해도 지구를 살리는 데 일조한다. 또한 이들은 경영 조직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환경적 책무(Stewardship)에 대해 강조한다. 순환 경제 관점에서 제품 생산 시 자원이 순환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불필요한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조직이 자신의 환경적 책무를 다할 때,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전하고 경제를 지속 성장시킬 수 있는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스타나의 관점은 많은 경영인들에게 도전이 된다. 이전 세대 기업들의 경영활동은 소비자의 최대 만족을 지향한다는 명목하에 많은 문제를 외면했다. 환경 문제와 노동 착취 등은 마치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문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서스타나와 같은 회사들에게 있어서 이는 관점의 오류이다.

 

서스타나의 관점에서 보면 진보한 기술은 소비자의 만족을 채움과 동시에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불필요한 에너지의 사용과 쓰레기를 줄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생산과 파괴는 항상 등가 교환이다. 무언가가 새로 만들어지려면 그에 필요한 재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파괴의 속도를 늦춰 세상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서스타나처럼 말이다.

서스타나의 폐지 분류 작업 Ⓒ Sustana 지속가능성 리포트
서스타나의 폐지 분류 작업 Ⓒ Sustana 지속가능성 리포트

깨끗한 물과 위생: SATO Project by Lixil_일본

화장실 관련 문제는 개발도상국에게 있어 꼭 해결해야 할 개인 위생 문제 중 하나이다. 현대식 화장실에서는 물이 핵심이다. 그러나 여전히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들이 많기에 현대식 화장실을 설치하기가 어렵다. 개발도상국 주민들 중에는 마땅한 화장실이 없어 야외에서 배변을 보는 경우가 많다. 야외 배변은 배설물이 정화되지 않고 땅과 강물에 흘러들게 되어 토양과 수질 오염을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야외 배변 과정에서 질병에 감염될 수도 있는데, 한 해 5세 미만 아동 50만여 명이 열악한 화장실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욕실용품 브랜드 American Standard를 소유한 일본의 릭실그룹은 가지고 있는 기술력을 동원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릭실은 기업의 사업 방향성에 맞추어 기존의 변기보다 80% 이상 적은 물로도 수세(물로 씻어 내림)가 가능한 SATO 화장실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SATO 시스템은 소량의 물만 확보되면 사용할 수 있게끔 고안되었으며, 적은 양의 물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악취를 방지하고, 해충이 알을 낳지 못하도록 배관 입구에 자동 마개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별 특성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호환 유닛을 제작하여 어느 상황에서도 화장실 설치가 쉽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SATO 프로젝트를 통한 화장실 보급은 릭실과 민간재단, 국제기구, 그리고 지역정부와의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릭실은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게이츠재단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SATO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게이츠재단에서는 화장실 개발에 대한 투자를 이끌었고, 릭실에서는 기술 개발과 상품화를 담당했다. 많은 국제기구와 지역 정부의 도움으로 각 지역에 청결한 화장실 보급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었고, 화장실의 실제 설치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첫 사업이 시작된 이후로, 현재 38개국에 510만 개가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릭실은 SATO 프로젝트를 하나의 사업부로 만들어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기부를 통한 무료 배급이 아닌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각 개발도상국마다 파트너 업체를 두고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부를 통한 배급은 누군가의 후원을 기다려야 하지만, 비즈니스로 진행하면 개발도상국의 경제에도 도움이 되기에 여러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SATO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개발하여 어떤 국가에서도 보급이 어렵지 않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기술로 위생 문제를 돕고, 사업 모델을 마련하여 경제에도 보탬이 되니 지속가능성에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적은 물로도 수세가 가능하도록 고안된 SATO의 화장실 시스템 Ⓒ SATO toilet 인스타그램
인도 시장을 위해 설계된 SATO V-trap 연결 시스템 Ⓒ Lixil

지속가능성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 기업을 포함한 모든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물론 우리 시대에 지구가 갑작스레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 후손들이 이미 병들어 버린 환경과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면, 또한 발전이 아닌 복구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된다면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잘못이다. 그리고 많은 지표들은 지금의 이 시대가 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자원을 소모해야만 하는 모든 생산 활동은 더욱 그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그리고 생산 활동의 중심에 있는 많은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을 사업에 도움이 되는 홍보수단으로 여기기보다 본인들의 경영 철학과 브랜드의 가치가 정말 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을 더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혹여나 기업의 경영 활동이 모종의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사업 모델이라면, 적어도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로 그 파괴를 복구하고 어떤 형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찾아야 한다. 충분한 기술과 자본을 보유하고도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시대에 대한 공감 능력 결여다.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돕는 것을 의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통의 우리는 아픔을 안아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와 벗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