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최근 우리나라 소매 및 유통업 가운데 큰 화두가 하나 있다면 바로 ‘큐레이션’일 것이다. 큐레이션은 사실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개념이다. 검색 한 번 만으로도 무수히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현재의 시대 가운데 사람들은 이제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그 많은 정보 가운데서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큐레이션이란 무엇일까?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예술계통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우리말로 학예원)들일 것이다. 큐레이터라하면 보통 미술관이나 박람회장에서 전시를 기획하며 전시 현장의 전반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큐레이션’ 혹은 ‘큐레이팅’은 이와 같은 그들의 업무를 가리키는 명사형 단어이다. 이 단어는 ‘보살피다’ ‘관리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cura(큐라)로부터 탄생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큐레이션의 적용이 미술 및 예술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물론 그 기본개념은 방금 위에서 살펴본 저들의 업무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그 개념의 확장과 적용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오픈북 기사 ‘서점,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다’에서도 언급된 것과 같이 서점은 이제 다양한 책을 구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특정 주제와 컨셉을 가지고 편집 배치하는 큐레이션 서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자 상거래 업계의 경우 큐레이션은 더욱이 보편화된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유명 전자 상거래 사이트인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2013년부터 큐레이션 전문 쇼핑몰인 ‘G9’를 운영하고있다. ‘G9’뿐만 아니라 많은 유통관련 업체들 또한 과거 이월상품이나 할인된 상품을 판매하던 이른바 홈쇼핑 형식의 판매전략에서 벗어나 트렌드와 소비심리를 집중 분석하여 한 가지 주제의 여러 상품들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형식의 큐레이션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큐레이션 기반의 서점 ‘스틸북스’ 매대

© 스틸북스 공식 인스타그램

그렇다면 이러한 큐레이션은 어떠한 콘텐츠까지 그 개념이 적용되고 있을까? 오늘 기사에서는 우리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큐레이션 서비스, 하지만 조금은 흔치 않은 큐레이션들을 모아 소개하고자 한다.

1. 교육 컨텐츠 큐레이션

 

사실 교육 분야만큼 다양한 컨텐츠가 존재하는 곳도 없다. 연령별 학습, 과목별 학습, 자격증, 교양교육 등 가뜩이나 교육열 높은 한국에서 교육 컨텐츠는 정말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나에게 알맞은 교육 컨텐츠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특히 처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가장 큰 고민중 하나는 우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 방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는 많은 웹사이트 중에서도 ‘KBS키즈앱’와 ‘웅진북클럽’의 경우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이러한 초보 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모바일용 어플리케이션으로 개발된 ‘KBS키즈앱’의 경우, 사용자의 성향별로 컨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이 어플리케이션에서는 간단한 성향 분류를 통해 아이들의 관심분야에 맞게 추천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이 교육 영상을 지루해하지 않고 시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다섯 가지의 대표 영역 가운데 각 성향 별로 두 가지의 영역을 선별하여 맞춤 페이지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해당 주제의 학습을 커리큘럼에 맞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뿐만 아니라 KBS 및 제휴 기관에서 제작하고 있는 교육 컨텐츠들을 주제에 맞게 (예를 들어, 식사예절 지키기) 분류하여 제공하기도 한다. 독서 교육 전문 서비스인 ‘웅진 북클럽’의 경우, 가입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출판물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명 출판사들의 실물책 및 디지털 콘텐츠들을 한데 모아 사용자의 관심 주제별로 소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서비스는 책과 관련된 애니메이션, 음악, 오디오 북 등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학습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어 부모들의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KBS키즈앱’에서 제공하는 성향별 추천 컨텐츠
‘웅진북클럽’ 소개글

나아가 학습 유형을 제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교육 데이터 큐레이션 서비스인 ‘베티(Betea)’는 자신의 학습 유형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학습법을 소개한다. 명문대에 재학중인 학생 수천 명의 학습경험 데이터를 수집하여 그 데이터를 그룹별로 유형화한 뒤, 사용자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설문을 통해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학습 성공 전략을 추천한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인터넷 강의 및 강사 가운데 사용자의 학습 성향에 맞는 강사를 추천하는 서비스 또한 제공하고 있다. 베티는 앞으로도 고유의 데이터마이닝 기술을 가지고 지역 교육 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지역별 학생들의 교육정책을 제안하는 교육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베티(Betea)’에서 제공하는 학습 성향검사

© 베티 홈페이지

2. 시 큐레이션

 

시는 짧지만 강렬한 힘이 있다. 특히, 짧은 분량으로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컨텐츠를 꼽자면 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를 읽다 보면 함축된 그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오은 시인은 시를 통해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발견하며, 일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를 시작으로 가깝게는 개인의 취향에서 멀게는 세계관까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를 쉽게 접하지 못한다. 더 정확히는 시를 찾아 읽을 여유를 본인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시를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의 뜻을 해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시를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시를 읽지 않는다. 하지만 시중에 출판된 시집과 시는 셀 수 없이 많다. 얼마전부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시 큐레이션 서비스가 등장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사람들이 시를 일상에서 더욱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시의적절한 시를 매일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큐레이션 서비스들은 시를 매개로 하여 관련 문화 컨텐츠까지 함께 소개함으로써 문화 컨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 큐레이션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기반의 시 큐레이션 서비스 ‘시요일’이다. 국내 대표 출판사인 창비가 제공하는 ‘시요일’은 기본적으로 매일 한편의 시를 모바일로 배달해준다. 뿐만 아니라,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 테마별 검색을 통해 나의 기분에 맞게, 또는 목적에 맞게 시를 추천 받을 수도 있다. 가장 주목 할 만한 서비스는 바로 ‘시요일의 선택’이라는 메뉴인데, 주제별로 선정된 하나의 시를 소개해주고 그 시와 관련된 책, 에세이, 영화 등을 함께 소개 받을 수 있다. 이 메뉴 하나면 그 날 하루의 문화 생활은 풍족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시요일’ 테마별 추천시 화면

© 시요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시와 미술을 접목시킨 큐레이션도 존재한다. 사비나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명옥 관장은 2017년 흥미로운 책 하나를 발간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미술과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온 시를 하나로 묶어 소개하는 책 ‘시를 좋아하세요’(이봄 펴냄)를 펴낸 것이다. 이명옥 관장은 오랜 시간 지인들에게 일주일 한 편씩 시를 추천해왔는데, 이 책은 이러한 활동을 발전시켜 시와 함께 관련된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방식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미술 전문가이다 보니 작품에 대한 해석 수준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의 출판사인 이봄에서는 2017년 책 출간 당시 이벤트 형식으로 한 달간 온라인을 통해 시와 그림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참가자들로 하여금 아주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시인 중에는 신현림 시인이 이러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신현림 시인은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와 같은 여러 저서를 통해 그림과 시를 함께 엮어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명옥 관장이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시와 그림을 엮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신현림 시인은 보다 경험적이며 통찰적으로 시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아직도 시가 멀게만 느껴진다면, 그리고 아직도 시를 읽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이러한 큐레이션들은 분명 당신과 시의 거리를 좁혀주는 좋은 도우미가 되어줄 것이다.

3. 음식 큐레이션

 

검색엔진에서 본인이 사는 곳 근처 번화가의 이름을 넣어 ‘OO동 맛집’으로 검색해보자. 아마도 수십 수백 가지의 검색 결과가 나올 것이다. 웰빙과 욜로라는 트렌드 아래, 미식이 뜨거운 키워드로 부상한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모든 이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이다. 기왕 비슷한 음식이라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맛집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는 음식점들 각자의 노력은 치열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음식점에 대한 사용자 리뷰를 중요하게 여기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아가는 음식점일수록 방문했던 손님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대표 메뉴에 대한 정보를 빠짐 없이 챙겨간다.

 

그래도 여전히 먹을 음식은 너무나도 많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래서 이제는 음식 큐레이션도 등장했다. 사실 음식 큐레이션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은 아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어머니가 나물 가게 혹은 생선 가게를 들렀을 때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하는걸 종종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요즘 맛있는 걸로 사장님이 알아서 담아주세요”. 음식 큐레이션은 이러한 어머니의 주문과 일맥상통하다.

 

대표적인 음식 큐레이션은 일식집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오마카세’이다.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철이 따로 있는 생선회의 경우 손님이 제철 생선을 전부 파악하지 못하기에 세프에게 주문을 일임하고 셰프는 그 때에 가장 신선한 재료로 생선회를 만들어 제공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과거에는 일부 고급 호텔 일식집에서만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되었지만, 최근에는 ‘스시유키’, ‘스시치하루’ 등 규모와 가격대에 상관없이 다양한 종류의 일식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오마카세 형식의 서비스는 최근 들어 많은 종류의 음식점들로 번져나가고 있다. 일식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의 재료를 한꺼번에 다루는 고깃집들 또한 이러한 서비스를 최근 선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오마카세식 고깃집에서는 다양한 부위를 셰프의 전문성에 따라 여러 가지의 조리법으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음식점을 찾은 손님들은 그날 마다 준비된 고기의 부위가 다르기 때문에 셰프들이 선보이는 요리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즐거움도 가지게 된다.

오마카세 한우 레스토랑 ‘본앤브레드’ 매장 전경
오마카세 일식집 ‘스시치하루’ 매장 전경

직접 요리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또한 존재한다. 2015년 첫 선을 보이며 큰 화제가 된 마켓컬리의 경우, 그저 유명한 식재료들을 한데 모아놓는 플랫폼 방식의 운영이 아니라 기존 대형 유통업체와 같이 식품 카테고리별 전문 MD(머천다이저)를 두고 공급처들을 관리하면서 자체적으로 선별한 유기농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마켓컬리는 기존 아무 식품 매장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맛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조금은 색다르며, 기존에 알고 있는 상식을 재정의한 재료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검증되지 않은 최상급의 비싼 1++ 한우를 소개하기보다 조금 더 숙련된 도축업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형한 1+ 등급의 한우를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소개하는 형식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들이 소개하는 상품들을 믿고 주문할 수 있게 된다. 오프라인 큐레이션 매장으로는 CJ올리브마켓에서 운영하는 ‘올리브 그로서리’가 주목을 끈다. 올리브 그로서리의 경우 한 번의 선택으로 한 끼를 해먹을 수 있는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매대별로 소비자 성향에 맞게 한 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게끔 진열해 놓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퇴근 후 혼자 사는 직장들을 위한 저녁메뉴’와 같은 컨셉을 가지고 요리 레시피와 함께 식재료들을 매대 별로 다르게 구성하여 제시한다.

마켓컬리의 큐레이션 페이지 (면 제품)

마켓컬리 홈페이지

만약 당신도 오늘 무엇을 먹을지 혹은 무엇을 해먹어야 할지 ‘결정 장애’를 겪고 있다면, 앞서 소개된 큐레이션 서비스들을 이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을 마치며…

 

큐레이션이 유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너무 많은 양의 정보와 너무 다양한 자원(resource)이 우리의 현명한 선택을 방해하는 현실 때문이다. 따라서 큐레이션은 현대의 우리에게 어찌보면 필수 불가결의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경제학자이자 디지털 퍼블리싱 콘텐츠 기업 카넬로(Canelo)의 발행인인 마이클 바스카는 그의 책에서 현대의 큐레이션을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원하는 것을 가려내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해석했을 때, 지금의 큐레이션은 특정한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방대한 양을 가진 어떤 한 콘텐츠를 편집 및 재생산하여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서비스 행위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소비 목적과 부합한 큐레이션은 우리가 정보를 찾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을 절약시켜줄 뿐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해주는 좋은 창구가 되어준다.

 

하지만 분명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어떠한 컨텐츠의 소비에 있어서도 우리는 능동적 소비자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큐레이션은 결국 큰 범주에서 보았을 때 정보 제공자의 틀짓기(프레이밍, framing)다. 우리의 귀찮음과 부주의로 인해 큐레이션을 맹신하게 된다면 이는 결국 제공자에게 우리의 선택권을 통째로 가져다 주는 것과 다름 없다. 비록 그것이 엄선되고 선별된 정보라 할지라도 수용자가 주체적으로 그 정보를 해석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현명한 소비는 결국 소비자의 손에 달려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