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패션에 대한 시각이 변하고 있다. 무언가 새롭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빠르게 선도하는 것이 패션이라는 기본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소비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초고속 성장한 저가 의류 중심의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내림세다. 승승장구하던 패스트 패션의 퇴조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묘하게 궤를 같이한다. 그 사이 중고패션이 주목받고 있다. 이제 중고, 中古, secondhand는 더 이상 누가 입었던 구식의 올드패션이 아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특히 밀레니얼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나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브랜드뉴(brand new) 패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중고패션에 대해 알아본다.

 

2000년대 들어 패스트 패션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자라(ZARA), H&M 등 글로벌 스파(SPA, 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들은 기획부터 생산∙유통∙판매까지 직접 관리하며 감각적 디자인과 개도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세계 패션 시장을 석권했다. 글로벌 브랜드에 대적하고 급성장하는 시장을 잡기 위해, 각국 기업들도 저마다 토종 스파 브랜드를 선보였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한 철만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인식은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개도국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 문제가 불거지며 인권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다카(Dhaka)에서는 패스트 브랜드와 명품 옷을 만들던 공장이 무너지며 하청 노동자 1,100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UN 산하의 환경 문제 전담 국제기구 UNEP에 따르면 의류 산업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 폐수의 20%를 차지한다. 항공과 해운산업의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 많다. 자원 낭비, 쓰레기 문제와 더불어 폐기된 의류를 소각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다이옥신 등 각종 유해물질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쉽게 입고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제품이 세상의 빛도 못 보고 사라지는 과잉생산도 문제다. 연간 6,000만 톤 이상의 의류와 신발이 만들어지지만 70%는 주인을 만나지도 못한 채 쓰레기 매립장으로 직행한다. 2017년 H&M의 재고 규모는 43억 달러에 달했다.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결국 시장도 패스트 패션에 대한 사랑을 접기 시작했다. H&M과 함께 시장 성장을 주도했던 미국의 포에버21(Forever21)은 파산해 최근 매각됐다. H&M과 자라의 성장세도 한풀 꺾였다. 세계 경제 불황과 함께 공유경제 개념이 싹텄다. 소유보다는 사용에 무게를 두는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다. 다양성, 윤리적 가치 그리고 환경을 고려하는 가치 소비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이 화두로 등장했다. 중고시장이 주목받는 포인트다.

 

미국 온라인 중고 의류 유통업체 스레드업(THREDUP)이 발표한 <2019 중고 판매 보고서(Resale Report)>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미국의 중고 판매 시장은 일반 패션 소매점보다 21배 성장했다. 또한 2018년 240억 달러였던 중고시장이 2023년에는 510억 달러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이런 흐름을 형성한 주요 소비층을 밀레니얼(25~37세)과 Z세대(18~24세)로 진단했다. 이들이 소비의 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중고패션 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봤다. 특히 Z세대는 지난해 3명 중 1명 이상이 중고제품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8~29세의 이른바 인스타그램 세대는 지속가능한 제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 리세일 제품 특징에 만족한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앞으로의 성장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폈다. 오는 2028년까지 중고패션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커져 패스트 패션의 1.5배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고패션 기업의 자체 보고서지만, 의도된 장밋빛 전망으로 치부하기엔 흐름이 범상치 않다. 미국의 또 다른 중고 패션 플랫폼이자 스타트업 더 리얼리얼(The RealReal)은 지난해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나스닥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40% 급등해 화제가 됐다. 시가총액은 23억 2,000만 달러에 달했다. 2011년 만들어진 더 리얼리얼은 스레드업과 달리 중고 명품 거래를 중개한다. 중고지만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데 특화된 시스템을 운영하며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시장의 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 패션업체도 중고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패스트패션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4월 H&M 그룹은 중고 의류와 빈티지 제품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갭(GAP) 그룹은 오는 4월 스레드업과 손잡고 갭을 비롯하여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 애슬레타(ATHLETA), 자니 앤 잭(Janie and Jack) 등의 주요 매장에서 일제히 리세일 사업을 런칭한다. 대형 유통기업들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미국 고급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NORDSTROM)은 최근 중고 의류나 반품 아이템을 수선해서 재판매하는 씨 유 투머로우(See You Tomorrow) 매장을 런칭하며 리세일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메이시스(macy’s)와 JC페니(JCPenney)는 스레드업과 손잡고 중고의류를 매장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NORDSTROM의 See You Tomorrow 매장 Ⓒ NORDSTROM

중고패션이 저렴한 가격 이상의 가치로 다가오고 있다. 환경도 지키고 모두를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의식 있는 소비다. 여기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릴 수 있어 밀레니얼 등 새로운 세대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소비 행동의 의미는 단순 패션에 한정되지 않는다. 옷을 통해 밀레니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시사점을 준다. 그들의 스마트한 선택에 주목하는 이유다. 중고, 렌털 등 대안 패션이 주류 패션 문화로 잰걸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