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린다. 다크투어리즘은 서구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논의되었는데, 국내에서 종종 ‘어두운’이라는 이름 때문에 야간에 진행되는 관광 프로그램으로 잘못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대중적이라고 할만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다크투어리즘은 전쟁, 재난과 참사, 테러와 고문 등 반인륜적 행위가 있었던 장소를 소재지로 삼는 관광을 의미한다. 유무형의 역사 자원이 지닌 비극적, 부정적 측면을 주요 콘텐츠로 개발하여, 과거의 특정 사건, 사고에 대해 이해를 넓히고 나아가 반성적 관점과 교훈을 전달한다. 대표적인 해외사례로는 뉴욕 9.11 메모리얼파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현장, 캄보디아 프놈펜 킬링필드 등이 있다. 국내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5.18민주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강렬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실 자체가 방문객들에게 바로 의미 있는 경험이나 인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건, 사고를 이루는 수많은 이의 고통을, 그저 지나간 일 또는 남의 일로 ‘구경’하게만 하는 위험이 있다. 과거의,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본 글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을 띤 세 곳의 다크투어리즘 관광지를 소개하며 각각의 사례에서 눈에 띄는 전략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앨커트래즈 교도소
미국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위치한 앨커트래즈 섬에는 1934년부터 1964년까지 운영된 앨커트래즈 연방 교도소가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앨커트래즈 교도소는 당대 미국 전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 살인마, 탈옥수를 모아 관리했던 곳으로 그 내부의 실상이 얼마나 거칠고 끔찍했을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다. 명랑한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닿을 듯 보이는 거리에 있어 재소자들의 탈출 욕구를 더욱 자극했는데, 섬이 대륙까지 약 2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그 사이로 식인 상어 떼가 지나다녔기에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탈옥에 성공한 이가 없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어떻게 앨커트래즈 교도소가 다크투어리즘의 사례인지 갸우뚱한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다크투어리즘의 사례는 한국사 특성상 보통 전쟁과 분단, 일제강점기의 참상을 소재로 한 교훈적인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반면 이 경우는 재소자 인권 보장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는 해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교도소’라는 별명이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범죄 판타지만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학계에서 상정하는 다크투어리즘의 범위는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상세화되어있으며 제법 상업적인 사례도 포함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다크투어리즘의 기원이 ‘죽음에 대한 고찰’과 깊이 닿아있고, 생과 사, 그 사이를 메우는 재해와 고통은 인간에게 오랫동안 매력물이어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앨커트래즈 교도소는 방문객을 위한 오디오 가이드 투어가 그곳에서의 경험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입구에서 대여할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가 뭐 그리 특별한가 싶겠지만, 진가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있다. 일반적인 관광지 오디오 가이드는 전시물에 표시된 번호에 상응하는 음성 파일을 사용자가 선택하고 이동할 때마다 그 일을 반복해야 한다. 반면에, 이곳에서는 입구에서 가이드를 재생하기 시작하면 ‘왼쪽을 보아라’, ‘앞으로 죽 걸으라’, ‘지금 자리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등 방문객에게 직접 진행 경로를 안내하면서 각 위치에서 보이는 전시물에 대해 재소자 및 교도소 관리인의 목소리를 곁들여 설명해준다. 연도에 따른 거시적 설명은 물론 개개인의 선명한 에피소드를 들으며 걷는, 마치 원테이크 영상을 감상하는 듯한 이 경험은 수년이 지나도 방문객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2. 부헨발트 강제 집단 수용소
부헨발트 수용소는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튀링겐주 바이마르에서 운영된 나치 수용소다. 독일 내 존재했던 나치 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했는데, 나치 정권의 주 표적이었던 유대인뿐만 아니라 나치를 반대했던 운동가, 성직자, 소련군 포로, 집시, 동성애자, 아동 등 약 25만여 명이 이곳에 갇혀 지냈다. 나치 정권의 전체주의적 만행, 강제 노동, 생체실험, 굶주림과 질병 등으로 수감자들이 죄 없이 죽어 나가는 동안, 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진 바이마르 시내의 주민들은 정치적 암막 때문에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 참상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 공간 및 상설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비워둠’을 하나의 전략으로 활용한다. 직접 방문해보면, 몇 개의 건물들을 제외하면 넓은 부지는 대부분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감자들이 머무르던 막사(Barrack)들이 모두 불타 사라 졌기 때문인데, 그 자리를 어설픈 재현물로 채우기보다 기존 건물의 외곽을 단정하게 암석으로 표시해 둠으로써 각 건물의 볼륨과 그곳을 지나다니던 이들의 동선 따위를 방문객이 스스로 상상하게끔 만든다. 또 막사, 식당, 실험실, 고문실 등 각 건물이 있었던 위치마다 그에 대한 설명을 작은 안내 푯말로 적어두어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곳곳에 암석을 활용한 공공미술 작품 또는 감각적인 추모비를 설치해두었다. 이미 너무도 충분히 잔혹한 시간을 안은 공간인 만큼, 그것이 지나간 이후의 묵직한 공기 자체를 잘 느낄 수 있도록 고려했다는 인상이다.
3. 제주 4.3 평화기념공원
제주도 전역이 냉전으로 인한 참극이 벌어진 무대였다는 사실을 여행객들은 얼마나 의식할까? 국내에서 다크투어리즘에 대한 소개가 처음 시작된 것도 사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연구 및 진상규명 운동의 일환이었다. 1940-50년대에 걸쳐 미 군정 체제 아래 ‘빨갱이 섬’으로 딱지가 붙은 제주도는 약 7년 7개월 동안 연이은 무력충돌과 정부의 과도한 진압 속에 섬 전체에 걸쳐 토벌작전이 시행되었고, 그 결과 당시 주민 1/10가량인 3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수많은 민간인이 경찰과 군대에 의해 무차별로 살해당했으나,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중심에 정치적 이념 갈등이 자리한 까닭에 70여 년이 지난 최근까지 희생자 가족에 대한 정부의 보상이나 국제사회에서의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4.3사건이라 총칭되는 이 기간에 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관덕정, 곤을동, 다랑쉬굴, 큰넓궤 등 섬 곳곳에 위치한 대표적 학살터를 연결한 제주 4.3길들이 개발되었다. 노랑, 파랑 리본이 제주 올레길을 안내한다면 4.3길에서는 빨강, 하양 리본이 방향을 표시한다. 하지만 지리적 여건 때문에 차가 없으면 닿지 못할 곳이 장소가 많고, 도착하더라도 거대한 표지석 또는 전형적인 안내 푯말만 서 있지 아예 무엇을 보아야할지조차 난감할 때도 있다. 시 차원에서 이 길을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관리,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제주시에 위치한 4.3평화기념공원은 이러한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한다. 특히 공원 내에 있는 4.3평화기념관은 광복 전후 냉전이 사회에 끼친 영향, 4.3사건의 발발과 전개,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이야기를 전시의 형태로 잘 구현한 사례다. 전시는 무장대를 피해 중산간 지방에 숨어 지내야 했던 제주 주민들의 암흑 같던 시절을 비유하여 동굴에 들어가고 나오는 듯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방마다 유물과 문헌 자료를 질서정연하게 전시해놓은 한편, 건축적인 현대미술 작품, 조형물, 멀티미디어 시각자료를 동원해 전체 전시 흐름에 율동감을 더해 지루할 틈이 없다. 전시의 끝에는 이러한 끔찍한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방문객들이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평화의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작은 참여 창구를 열어두었다.
그래서, 지나간 기억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올해 1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선체 활용 방안 공모전’을 주최했다. 시간이 흘러 지난 8월 22일, 선체조사위원회는 한 건축과 대학생이 제안한 설계도를 따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임야를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선체 원형을 복원해 시각적, 체험적 추모공간으로 재구성한다는 방안이다.
특정 사건, 사고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남긴 충격과 메시지가 클 수록, 분명히 이 일을 오래 기억하고 생각할 방도가 필요하다. 대상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효과적인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으로 정교하고 겸손한 사고가 요구된다. 정치적으로 특정세력에게만 유리하도록 설명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일련의 과정들이 소비되기만 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지식적으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기술하려면 말이다. 앞서 소개한 세 곳의 다크투어리즘 장소들처럼, 앞으로도 내밀하고도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다양한 모양으로 깃든 또 다른 장소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