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들은 2020년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도쿄올림픽이 있어서다. 전통적으로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는 광고업계가 특수를 맞는다. 올림픽에 맞춰 가전제품을 포함한 다양한 신제품이 출시되고 세계인을 사로잡기 위한 글로벌 브랜드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 더욱이 국회의원 선거까지 있어 광고업계는 대박을 점쳐왔다.
이런 기대는 코로나19로 산산조각이 났다. 올림픽 연기와 함께 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미뤄졌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도 개막이 늦춰지고 축소되고 있다.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며 광고시장에서 상업광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코로나 관련 광고가 자주 보인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들은 코로나19 극복을 주제로 다양한 공익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팬데믹 극복을 위한 국내외 공익광고 캠페인 사례를 알아본다.
함께 하는 연대의 힘
공익광고는 흔히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광고로 불린다. 세계광고협회(IAA)는 공익광고를 일반 대중의 지배적 의견을 수용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활동 또는 일을 실행할 것을 권장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CSR 광고의 키워드는 ‘함께’다. 함께 힘을 모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다. IBK기업은행(함께 이겨내겠습니다), 농협(함께의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코오롱(함께해요 대한민국) 등 금융권과 그룹사의 많은 광고에 헤드라인으로 등장한다.
사실 함께 컨셉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등 주요 국난 때마다 자주 등장해 왔다.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연대의 힘으로 어려운 시기를 같이 이겨내자는 설득과 공감의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이번처럼 코로나가 사회 전반에 전방위적 위협이 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개인의 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4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캠페인 메시지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함께에만 머물지 않고 감염증 대응 추이와 이슈에 따라 접근법을 달리하는 것. 그래서 어느 때보다는 많은 CSR 광고가 집행된다.
감염증 확산 초기에는 함께 극복하자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면,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의료진의 자원봉사 활동이 이슈가 되자 이들을 응원하는 컨셉으로 변주됐다. 사태가 장기화되며 공무원 등 방역 최전선에서 확산방지에 힘쓰는 이들을 격려하고 감사를 표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현대자동차(당신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KT(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대한민국의 힘입니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드라이브 스루 검진 등 혁신적 대응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확진자가 확연히 줄어들고는 함께 이겨낸 우리 모두와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높이는 캠페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KB금융그룹(국민이 있기에 내일은 희망입니다), LG(봄이 오면 꽃이 핀다) 등이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를 준비할 때. 감염증의 진짜 피해는 바이러스 그 자체가 아니라, 코로나로 무너진 일상과 생계다. 신한금융그룹의 <Hope Together> 캠페인에 주목하는 이유다. 가장 피해가 클 수 있는 소상공인을 응원하는 광고(소상공인 여러분, 힘내세요!)를 시리즈로 선보였다. 코로나로 더욱 어려워진 우리 이웃이 희망을 품고 일어설 수 있도록 시장에, 골목상권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wadiz)와 소셜 기부 캠페인인 <대구∙경북에 희망을!>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막연한 공동체 의식 강조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며 사회적 관심과 기부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서로가 조금씩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해 공감과 차별화에 성공했다. 업의 특성과 사회적 가치를 잘 부각한 CSR 광고 캠페인이다.
크리에이티브의 힘
해외 CSR 광고 캠페인의 주요 메시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다. 코카콜라(Coca-Cola), 아우디(Audi), 맥도날드(McDonald’s) 등 많은 브랜드가 자신의 로고의 간격을 띄우고 애교 있게 비트는 위트 있는 광고를 선보였다. 코카콜라는 뉴욕 타임스퀘어(Times Square) 광고판에 글자 사이에 여백을 삽입한 로고와 함께 “단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떨어져 있는 것(Staying apart is the best way to stay united)”이라는 슬로건을 게시했다. 아우디는 로고 아래에 “거리를 유지하자(Keep distance)”고 했다.
초기에 안이한 대응으로 코로나19 창궐 1위의 불명예를 안은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심각한 확산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일한 솔루션이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보건국은 색다른 공익 캠페인을 준비했다. 쥐덫과 탁구공만으로 누구나 간격을 두는 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도록 한 비교광고다. 제목은 ‘Flatten The Curve’.
급증하는 확진자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의 기울기를 떨어뜨려 평평하게 낮추자는 메시지다. 영상은 약간의 간격이 우리 모두를 다 함께 더 안전하게 한다는 카피로 마무리된다. 조회수가 1백만을 넘기며 많은 사람의 끄덕임을 이끌었다. 그러나 한 번의 재미로 넘기기엔 코로나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도 깊다.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무력감, 고립감 등 정신적 지침이 커지면서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는 캠페인들이 등장했다.
먼저 버드와이저(Budweiser)의 <원팀(One Team)> 캠페인이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공동체 대응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광고다. 버드와이저는 미국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다. 그동안 낙관주의와 개척정신 등 미국의 정신을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포지셔닝해왔다. 그에 걸맞게 올림픽 등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후원하고 있다. 특히 메이저리그, NBA와 함께 가장 미국적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주요 스폰서다.
캠페인 영상은 텅 빈 그라운드와 황량한 거리 등 멈춰버린 일상을 흑백으로 보여준다. 코로나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 적십자 요원, 군인, 자원봉사자 그리고 집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는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은 컬러로 대비된다. 메인 카피는 “이번 시즌 우리는 모두 한팀입니다”. 이어 ‘코로나 사태 기간 경기장을 미국 적십자사의 헌혈센터로 이용하게 하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영웅들을 위해 스포츠 투자를 적십자로 이전하고 있다’는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캠페인 기획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부터 오늘의 뉴노멀(New Normal)에서 일하는 식료품점 점원까지, 우리는 모두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원팀으로 활약해야 할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버드와이저는 미국 적십자사에 5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경기장을 임시 헌혈센터로 활용하도록 도왔다. 또한 손 소독제 병을 생산해 자체 물류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통하고 있다. <원팀> 캠페인 페이지에서도 코로나와의 싸움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적십자사 헌혈센터 웹사이트를 함께 링크하고 있다. <원팀> 캠페인은 묵직한 호소와 함께 버드와이저가 프로스포츠의 스폰서인 것처럼 코로나 싸움에서도 든든한 후원자 겸 선수로 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 캠페인은 숨은그림찾기 같은 재미도 준다. 내레이션에 나오는 단어와 영상의 컬러 색은 버드와이저가 후원하는 NBA와 메이저리그 팀을 은연중 연결하고 있다.
다음은 이케아(IKEA)의 CSR 광고 캠페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등이 일반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집에 대한 인식이 새삼 새로워졌다. 한 건축가는 코로나로 인해 집이 과부하로 신음한다고 평했다.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학교생활을 대신하며 그동안의 역할과 의무에 새로운 기능과 기대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이케아는 세계 최대의 홈퍼니싱 회사답게 현재 상황을 광고의 메인 메시지로 정리했다. “나는 집입니다”로 시작한 광고는 집을 의인화해서 그동안 우리가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들려준다.
가족의 탄생, 아이들의 술래잡기, 지치고 힘들 때, 자고 쉴 때 등 집안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전한다. 매 순간 묵묵히 우리 곁에 있던 집이 주인인 우리에게 환기해준다. 그리고 희로애락 일생을 같이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할 것을 맹세(?)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광고에서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를 넉넉히 맞아주고, 포근하게 품어주는 공간이다. 가장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곳임을 알린다. 그래서 집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을 이케아 광고는 이야기한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집의 존재와 가치를 나지막이 전해 여운을 준다. 명확한 컨셉과 감성적 메시지로 ‘집에 관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이케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전달하고 있다.
팬데믹 극복을 위한 CSR 광고 캠페인을 국내는 인쇄 광고, 해외는 영상 광고 중심으로 살펴봤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인식은 문화와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등 아시아권은 접촉에 비교적 관대하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개인주의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서구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이러한 배경이 CSR 광고에도 깔려있다. 국내 기업들이 공동체의 힘을 강조한 메시지에 충실했다면, 해외 기업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무게들 두고 크리에이티브로 승부한 CSR 광고가 눈에 띈다.
광고의 톤앤매너는 조금씩 다르지만, 지구촌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이번 사태의 조기 종식을 바라는 메시지는 모두가 같다. 모쪼록 광고가 지쳐가는 일상에 작은 위안과 희망을 주는 공감의 메신저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