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래픽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6천930만 달러(약 787억 원)에 낙찰됐다. 생존 작가 중 제프 쿤스(Jeff Koons, 1955~)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낙찰가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실물이 아닌 디지털 파일이었다는 사실이다. 해당 거래에는 NFT 방식이 적용되었는데 NFT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실제 미술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향후 미술 시장이 NFT로 재편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NFT란 무엇인가
NFT(Non-Fungible Token)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의미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 NFT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중앙집권화된 금융 시스템의 위험성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체인 형태로 연결, 수많은 컴퓨터에 데이터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중앙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가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데이터 위·변조가 거의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에는 다양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그만큼 활용 범위도 넓다. 블록체인 기술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가상화폐다. 가상화폐는 대체 가능한 토큰과 대체 불가능한 토큰으로 나뉜다. 먼저 비트코인을 비롯한 일반적인 가상화폐는 대체 가능한 토큰에 속한다. 내가 가진 비트코인 1개와 다른 사람이 가진 비트코인 1개는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서로 맞바꿀 수 있다. 반면 대체 불가능한 토큰인 NFT는 다른 코인과 바꿀 수 없다. NFT에는 데이터 생성일이나 창작 과정, 창작자 서명 등이 포함되어 개별 NFT의 가치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즉 NFT에는 거래 내역과 소유권 등을 기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NFT가 각광받는 이유도 소유권 증명에 있다. 트위터 CEO 잭 도시(Jack Dorsey)의 첫 트윗이 경매를 통해 290만 달러(약 32억 7천만 원)에 팔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누군가 그의 트윗을 복제해 붙여넣기 한다면 실제 잭 도시가 작성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NFT를 적용하면 트윗 생성 시기, 소유자 등이 적용돼 원본을 증명할 수 있다. 복제하더라도 원본은 하나밖에 없기에 희소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NFT 거래는 어렵지 않다. NFT 작품 구매를 위해서는 먼저 전자 지갑을 만들어야 한다. 물건을 살 때 지갑에 있는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듯, 전자지갑 안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를 충전하여 결제하면 된다. NFT 작품을 파는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 같은 플랫폼에서 작품을 고른 뒤 전자지갑을 이용해 지불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든 디지털 작품을 NFT로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상화폐 지갑을 NFT 서비스에 연결한 뒤 원본을 보증하고, 가격과 로열티 비율을 설정하면 된다. 실물 작품도 스캔 등의 방식으로 디지털화해 NFT에 연결할 수 있다. 판매 등록 사이트에서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NFT 미술품 현황과 규모
NFT는 2014년 P2P 금융 서비스 업체에 의해 처음 상용화되어 2016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술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향후 미술 시장을 재편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가상화폐 미술 시장 데이터 분석 회사인 크립토아트(Cryptoart)에 따르면, 지금까지 거래된 NFT 미술품은 약 10만여 점에 이른다. 금액으로도 2천220억 원어치에 달한다.
비플의 그림뿐 아니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Grimes)가 자신의 디지털 회화 10점을 65억 원에 판매했고, 지난 3월에는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가 <멍청이(Morons)>라는 그림을 NFT로 변환해 경매로 내놓은 뒤 진짜 그림은 불태웠다. 영국 출신의 화가 트레버 존스(Trevor Jones, 1970~)는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을 패러디한 비트코인 엔젤로 지속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경매 기업 소더비는 디지털 아티스트 pak의 <더 펑저블(The Fungible)>, <더 픽셀(The Pixel)> 등의 작품을 총 1천630만 달러(약 182억 원)에 판매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17일 미술 투자 서비스 기업인 피카프로젝트가 첫 NFT 미술품 경매를 열었다. 마리킴의 작품 <Missing and Found>가 288 이더리움에 낙찰됐다. 한화로 약 6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도 NFT 시장에 뛰어들 의사가 있음을 밝힌 상태다.
NFT 미술품 시장 전망
미술계에는 NFT를 통해 작품의 희소성에 대한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입장과 함께 NFT의 인기가 과대평가됐다는 비판적 시각이 공존한다. 유명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최근 비플의 디지털 그림이 비싼 가격에 팔린 것을 두고 사진을 봤는데, 그건 어리석은(silly) 작은 것들처럼 보였다라면서 실제로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NFT에 대해 국제적인 도둑놈과 사기꾼(International crooks and swindlers)이라고도 언급했다. NFT를 활용한 미술품의 평균 가격이 최고점보다 70% 폭락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가격이 지나치게 고평가되었다는 거품 논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반대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가장 큰 장점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의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NFT를 이용하면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에 직접 가치를 매기고 판매해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미술품이 거래될 때마다 원작자에게 수익이 배분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신진 작가들은 미술 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유통하기가 어려웠다. NFT 미술품 거래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유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예술품에 접근하기가 용이해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에 드는 미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미술품 투자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다면 향후 NFT가 대중적 대체투자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메타버스(Metaverse)의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NFT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같은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주로 가상현실로 불리던 개념이 근래 들어 메타버스라는 용어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뒤를 잇는 가상현실 공간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메타버스는 단순 유행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일상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활발해진 NFT 미술품 거래도 메타버스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NFT 미술품 경매를 가상공간에서 진행한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상반되는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다양한 기술들은 현실과 가상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조만간 내가 소장한 디지털 그림을 온라인 전시장에 대여해 주는 방식으로 재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일화를 통해 자신이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나비의 꿈속에 존재하는 것인지 묻는다. 이처럼 이제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워졌다. 우리는 흔히 가상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실재를 떠올리지만, 프랑스의 미디어 철학자인 피에르 레비(Pierre Levy)는 실재가 아닌 현실을 가상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본다. 레비는 가상성을 허구의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잠재적 역량을 품고 있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은 비록 현실이 아닐지라도 인간의 지각과 상호작용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 개념인 것이다.
NFT 미술도 실재와 가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hyperreal)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세계가 가상일 수도 있고, 가상이 실재일 수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지각된 현실일 뿐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NFT 미술도 기존의 미술과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실재와 가상이 혼재하듯, 가상의 공간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한 것에 가깝다. 앞으로 NFT 미술은 어떻게 진화할까? NFT 미술 시장이 기존 미술 시장과 공존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