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사회 전반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생각을 디자인하다>.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소통,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이나 작품활동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며, 문화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와 함께 예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하지연
공간 디자이너
좋은 공간이란 무엇일까. 하드웨어가 화려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곳이 좋은 공간일까. 하지연 공간디자이너는 ‘좋은 공간이란 편안함을 주는 장소. 즉,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발길을 불러 모으는 곳’이라고 말한다.
쉬운 말 같지만, 이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그들과 소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참 피곤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연 디자이너는 그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하지연 공간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간기획과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Project m.g’ 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하지연입니다. 회사는 영국을 베이스로 하고 있어요. 영국에서 운영하다가 작년부터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지금은 잠시 한국에 와 있습니다. 주로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제가 더 관심을 가지고있는 분야는 전시 쪽이라서 전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전시 공간을 디자인 하는 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Q. 전시 콘텐츠 기획과 공간 디자인 작업이 무엇인지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저는 공간인테리어와 건축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전시장 디자인을 많이 담당했어요. 최근에 한국에서 진행한 작업이 벨기에 빈티지 장난감 전시인데, 유럽의 작은 갤러리나 박물관 소장품들을 찾아서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콘텐츠를 기획하고 수입도 하고 전시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이야기를 듣다보니 유년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학창시절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저는 학창시절에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조용했고 튀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예술에 큰 관심이 있던 학생도 아니었고요. 저는 국문학과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 원서를 쓸 때까지 당연히 국문학과에 지망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가 대학 입학 원서를 쓰기 직전에 실내환경디자인학과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Q. 갑자기 진로를 바꾸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저는 전형적인 미술 교육 과정이나 예술 교육 과정을 밟지 않은 사람 중 한명이에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한국의 교육 체계 자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자신의 전공 분야를 일찍 선택하고 준비하게 되잖아요. 인문계를 지원할지 예체능계 공부를 할지에 대한 부분이요.
저는 당시에 예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진 않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문계에서 국문학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게 됐었는데, 대학 지원을 앞두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실내환경디자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PART 2. 내가 지나온 길
Q. 런던에 베이스를 두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영국에서 창업을 하게 되셨나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한국에서 실내디자인 실무를 1년 정도를 했어요. 그 후에 유학을 갔고요. 2년 정도 공부를 했고, 그 이후에 8년 정도 실무를 영국에서 했어요. 영국에서 5년 차 정도 됐을 때, 일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갈증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냥 독립한 거죠.
제가 영국에서 굳이 창업하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실무를 쌓았고, 독립할 시기가 돼서 독립했는데 그 시점에 제가 영국에 있었던 거죠. 그런데 여건상 제가 더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긴 했어요. 왜냐하면 런던은 젊은 창업자들이 많은 도시거든요.
Q. 한국과 영국에서의 실무를 모두 경험해보셨으니까 더 잘 느끼실 것 같아요. 문화예술에 접근하는 두 나라 사람들의 모습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첫 번째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는 창업을 굉장히 이른 나이에 해요. 거의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자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요. 제가 한국에 와서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느꼈던 건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내가 평생 재미있고 의미를 느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그냥 해야만 하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게 굉장히 다른 점 같아요.
제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만난 외국 친구들은 자기가 틀려도 자신의 의견을 고집해요. 수긍하지 않아요. 끝까지 주장하고, 결국 성공해요. 빨간색이 맞는데 파란색이라고 우겨요. 끝까지 굽히지 않아요. 그런데, 결국 파란색으로 성공하더라고요. 무턱대고 우기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소신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시간이 걸리고 고집이 필요한 일인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을 교육화시키고 기업화시키다 보니까 개인의 특색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Q. 지금은 문화콘텐츠 분야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디자인을 전공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순차적으로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실내환경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그와 관련된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 생활을 했어요. 실내환경디자인학과를 졸업 하면 대부분 인테리어나 건축 분야에서 일을 해요.
특히 한국은 전공과 취업 분야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죠. 그런데, 영국은 좀 달랐어요. 인테리어도 아니고 건축도 아니고 전시도 아닌, 애매한 일들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게 한국과 영국의 다른 점 같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까 전시 기획과 전시 디자인 분야의 일을 많이 했거든요.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하다 보니까 페어 같은 디자인을 많이 했어요. 그때 제가 느낀 게 많았어요.
저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전시 콘텐츠를 의뢰받아서 그것을 공간으로 풀어주는 일만 하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답답했어요. 왜냐하면, 콘텐츠를 의뢰 하는 분들은 그 콘텐츠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공부한 분들이죠. 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이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공간으로 풀어낼 수 있는데 그 부분에서 제한이 많더라고요.
그때 콘텐츠 분야까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콘텐츠 기획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죠. 기획자로서의 전문 지식이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건 아니고 제가 현장에서 실무를 하면서 차근차근히 한 계단씩 밟아온것 같아요.
Q.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문화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전시 쪽 일도 관심이 많았던 게 공간과 관련된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그런 문화콘텐츠 자체가 매력 있었던 것 같아요.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감정을 느끼기 이전에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겁없이 뛰어들었던 거 같아요. 덕분에 대가를 많이 치렀죠.
Q.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지 궁금한데요?
첫 번째는 제가 하는 문화 기획 관련 일은 순수 예술 계통이 아니에요. 반대로, 페어 디자인이나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전시 분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디자인 전시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요즘에는 꼭 순수예술이 아니거나 전문 지식을 베이스로 한 전시가 아니더라도 굉장히 다양한데, 그것을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기획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그걸 교육받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요. 실무에서 배우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이를테면 예술 업계에서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요. 어떤 자격으로 이런 크리에이팅을 하느냐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사실 경력이 짧은 것도 있고요. 그런 것들 때문에 좀 많이 힘들었죠. 지금도 그런 상태고요.
Q. 그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세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단순해요. 그냥 정말 재밌어요. 굉장히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제가 재밌고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제가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인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위기에 직면해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보니까 돌파구가 필요한데 아주 탑클라스의 디자이너가 예술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살아 남기가 어렵죠.
통합적인 기획을 하지 않으면 공간디자이너로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도 있고요. 그런 돌파구로서의 역할 때문에 저도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두 번째 이유고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저도 후배들한테 혼자서도 또는, 2인 3인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Q.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하다보면 직함도 여러 가지 일 것 같은데요? 어떤 직함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좋으세요?
저는 제 이름으로 불리는 걸 가장 좋아해요. 제가 한국 조직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저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든 후에 유학을 갔고, 실무 분야를 나이 들어서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영국에서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직함으로 불려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제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에 그게 굉장히 익숙했는데, 직함이 생기니까 발생하는 장애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같이 일하는 어린 친구들하고도 거리가 생기고 저의 클라이언트하고도 거리가 생기는 부분들이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굳이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직함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요.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디자인 실장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죠. 저는 직함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큰데 요즘은 저와 같은 생각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회사들도 생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PART 3. 작품 활동을 엿보다
Q. 최근 진행한 작품 활동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요.
제가 최근에 애정과 시간을 담아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벨기에 빈티지 장난감 전시예요. 제가 직접 벨기에에서 발굴했고, 수입도 진행했고, 한국에서 전시를 개최한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애정을 많이 갖고 있어요. 제가 벨기에로 출장을 간 적이 있어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비를 피할 겸 우연히 장난감 박물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죠. 무슨 이야기냐 하면 박물관이 앞도 뒤도 없이 정말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저는 공간을 만지는 사람이니까 그걸 보는 순간 언제라도 시간이 나면 다시 와서 박물관을 좀 정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렇게 많은 장난감을 수집한 사람이 누군지 너무 궁금했어요. 벨기에 장난감 박물관 관장님과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어요. 이후 개인적으로 관장님과 연락을 주고받다가 제가 전시를 기획하게 된 거죠.
Q. 전시를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관장님의 인생 자체가 한국에서 보는 일반적인 인생과 굉장히 달라요. 저도 그걸 보고 많이 배웠어요. 저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게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고요. 그분은 굉장히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부동산 개발을 하다가 본인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모으고 싶어서 1980년대부터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박물관도 생겼고, 전시도 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고요.
지금 나이가 86세 정도 되셨는데 지금도 오후에는 항상 아이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요.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제가 그 시기에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커리어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저희 모교에서 요청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받았던 학생들의 열기하고 너무 큰 차이가 나는 거예요.
이 분은 나이가 너무 많은데도 열정적이고 행복한데, 학교 후배들은 취업에 쫓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사회가 이 친구들을 굉장히 억압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전시를 통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취업만이 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런 효과를 많이 본 거 같아요. 전시를 본 분들도 많이 공감하시더라고요.
Q. 우연히 들린 장난감 박물관이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런 걸 보면,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보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그래서 주로 많이 돌아다녀요. 그런데, 제가 대다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전시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회사 여건이 전시만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는 상황이거든요.
공간과 인테리어 개보수 작업도 많이 하고 있어요. 코워킹 스페이스(협업공간)나 최근에 많이 했던 건 치매센터이런 것들을 어메니티 기준에서 봤을 때 복합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전시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일이고 앞으로 갈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 공간 기획이라는 게 꼭 전시는 아니고 전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치매센터 같은 경우도 한국에서는 계속 기능적으로만 풀어냈는데 저희는 도서관을 도입한다거나 공간에 재료를 조금 더 부드럽게 풀거나 어메니티화 시키는 작업을 많이 하고 싶고 또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시만으로는 보기는 어려운데, 그래서 밖에서 보면 복잡해 보여요. 하지만, 저는 공간 기획이라는 맥락에서는 비슷하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요.
Q. 공간을 개보수하거나 설계하는 디자이너들은 공간을 어떤 콘텐츠로 채워줘야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할 것 같아요.
맞아요.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어떤 콘텐츠로 채울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Q. 전시 기획 외에 공간 기획도 함께 하고 계신가요?
아직 오픈이 안 된 프로젝트이긴 한데, 코워킹 스페이스(협업공간)를 리노베이션 하는 작업이라든지, 재생 프로젝트에 가까운 버려진 공간들, 또는 사용도가 떨어진 건물들을 개보수해서 코워킹 스페이스(협업공간)를 만들거나 노인들을 위한 전문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노인시설이라고 하면 기능성에만 충실했죠. 요즘에는 어르신들도 공간에 와서 문화 활동도 하고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어메니티화 된 의료공간을 원하세요. 그런 작업을 일명 기획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하고 있어요.
Q. 공간에 콘텐츠를 채운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기획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설계라든지 디자인 용역으로 계약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희가 하는 일에 카테고리가 정의되지 않은 거죠.
그런데 분명 필요는 있고, 그런 부분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길게는 두세 달이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심지어는 프로젝트가 다 끝났는데 프로젝트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요.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최근 1, 2년 사이에 점점 나아지고 있고 이런 업무를 이해하시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상황인 거 같아요.
PART 4. 좋은 공간에 대해 고민하다
Q. 공간에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게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단순히 공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사회 자체가 점점 문화콘텐츠화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식사를 한 끼 먹더라도 밥만 먹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는 시대잖아요.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활동을 하길 원하는 시대인 거죠. 예를 들어서, 병원에 가더라도 그냥 단순히 앉아서 진료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치유를 받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원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복합화되는 거죠.
이건 공간에만 국한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식음 공간에서도 마찬가지고 학교도 마찬가지고 도서관도 마찬가지고. 모든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큰 방향인 거 같아요. 그래서 기획업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거 같아요.
Q. 그렇다면 한 공간을 콘텐츠로 채울 때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제가 선호하는 방식은 편안함이에요. 예를 들면, 의료 환경도 내 집처럼 편안한 환경으로 구성해드리는 것. 레스토랑이라도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갈 법한 그런 정도의 편안함을 디자인하는 편이고요. 특별히 독특함을 추구한다거나 지나치게 튀는 공간을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Q. 그런 공간을 기획하실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 궁금해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아니더라고요. 시간도 없고 워낙 바쁘다 보니까요.
저는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대부분 현대인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정보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대화인 것 같아요. 저도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하고 일부러 만나서 교류도 많이 해요. 그 핵심에는 제가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어요.
Q. 공간을 기획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추구하는지 궁금해요.
모든 공간의 복합 어메니티화가 제가 찾고 있는 키워드고요. 그래서 공간의 종류는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저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전시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하드웨어인 건축물 공간만 하고 싶지는 않고, 그 안에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연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대학교 건물이라도 브랜드가 다 들어가 있잖아요. 그것도 복합화의 일종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학교가 됐든 오피스 공간이 됐든, 노인들이 거주하는 실버타운이 됐든 어메니티가 복합화된 형태로 디자인을 계속 기획하고 디자인 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방향이에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특징을 잘 살린 사례가 있나요?
런던에 있는 센트럴세인트마틴학교 본교가 킹스크로스에 있어요. 그게 만들어진 지 몇 년 안 됐어요. 제가 그걸 보고 좋다고 생각했어요. 작게 흐르는 개천 바로 옆에 있고, 앞마당에 안에 공간이 있어요.
첫 번째 포인트는 마당에 분수대를 설치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분수대가 아니고 바닥에서 물줄기가 오르고 내리는 형태에요. 그래서 여름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거기에서 놀아요. 어린아이들은 물놀이를 하죠. 그렇게 지역 주민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게 첫 번째 포인트에요.
두 번째는 학교 건물도 굉장히 디자인을 잘 했는데, 1층에 상업시설이 들어가 있거든요. 햄버거 가게도 있고, 커리 음식점도 있고 다양한데 학생들이 먹는 음식점이 아니에요. 굉장히 고급화되어 있어요. 보통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학교 식당을 이용하잖아요. 그런데 학교 식당에서는 대부분 점심까지만 먹죠. 저녁에는 나가서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가잖아요.
결국에는 대학생들도 문화적인 수준의 욕구가 있는데 그걸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정말 유행에 맞고 런던의 이스트런던에서나 볼 것 같은 음식점들이 들어와 있으니까 학생들한테는 학교에서는 밥을 먹는 게 트렌디한 일이 된 거예요.
그런 식으로 복합화가 굳이 기능을 복합화시킨다기보다는 그 기능에서 발생하는 수준을 복합화시키는 것도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예를 들어서 학교 리노베이션을 하거나 신축 건물 중에서 잘 된 사례를 꼽자면 센트럴세인트마틴학교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의 복합화가 제가 생각하는 복합화예요. 기능을 결부시키는 것도 있지만 그 기능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레벨을 섞어주는 것. 그래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PART 5. 문화예술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다
Q. 예술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술에 국한되기보다 문화, 예술과 문화, 더 나아가서 인문학까지 포함해서 그런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디자인이다 보니까 사람들과 많이 부딪혀요. 왜냐하면 이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누군가가 저한테 질문했을 때 명쾌한 대답을 줄 수 없는 경우가 거의 90%예요. 그렇다면 저희가 하는 활동이 쓸모가 없는 활동이라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 질문을 저도 지난 수년 간 해왔어요. 결론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공간에 들어갔는데 공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했다. 이게 기본인 것 같거든요. 모든 디자인이 기능적으로만 풀자면 사실 너무나 단순하죠. 그렇지 않다는 건 인간이 문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기능성이나 생명에 관련된 필요 외에 충족시킬 수 있는 걸 풀어가는 게 문화이자 예술이고,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Q. 영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한국의 예술 교육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에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미술 교육이 어떠한지는 잘 몰라요. 제가 직접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고, 제가 경험한 대학에서의 디자인 교육을 생각해서 말씀 드릴게요.
저는 대학 시절을 굉장히 재밌게 보냈어요. 제가 졸업한 학교의 실내환경디자인학과 1회 졸업생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커리큘럼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를 했고, 그래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더 자유로웠고 저 스스로 돌파구를 찾았던 것 같고요. 제가 작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젊은 디자이너들, 1~3년 차 정도 되는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창의 커리어 관련 교육을 한 적이 있어요.
첫 시간에 디자이너로서의 매니페스토를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일종의 사명서 같은 것이죠. 그런데 학생도 아니고 디자이너 실무를 하는 분들인데 적지 못하더라고요. 사명서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고, 본인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분도 계셨어요.
사명 없이 일한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에요. 학업 분야에서 기술이나 테크닉은 많이 가르치는데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 찾아야 하는 문제인데 국내 교육 환경이 그렇지 못하니까 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도 있나요?
제가 지나온 길이 쉽지는 않았어요. 사실 굉장히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죠. 매일 매일 제 앞에 쌓여 있는 일이 너무 많고, 부딪혀서 깨야 될 것도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보상이나 결과물이 충분하게 돌아오지 않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을 많이 번다. 내 직책이 이렇다. 남들이 봤을 때 부러워하는 무언가를 가졌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크지 않아요.
그런 삶을 원한다면 문화예술 계통의 일을 하더라도 다른 방향을 찾으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드러나는 것이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외에 주어지는 보상은 굉장히 커요. 예를 들면 내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도 있죠. 그런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저는 무조건 부딪혀보라고 이야기해요.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사실 도전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내 도전에 대한 결과물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면 그냥 도전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 업무적인 부분에서 ‘콘텐츠를 다룰 때 이런 부분은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보는 시선하고 100가지 더 다른 시선이 있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 분명히 A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B부터 Z까지 너무나 많은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콘텐츠를 정의할 때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의견을 다 반영할 수는 없지만 다른 시선을 참고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문제들이 어떤 때는 안전사고로 이어지기도 해요. 제가 봤을때 콘텐츠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인지하고 디자인했을 경우와 아닌 경우는 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안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시선, 의견도 꼭 참고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PART 6. 공식질문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의 역할은?”
Q. 나 자신에게 공간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하시나요?
제 삶의 방식인 것 같아요. 제 직업이라기보다 그냥 하지연이라는 사람의 삶의 방식인 거죠.
Q. 마지막 질문입니다.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삶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요. 저는 굉장히 평범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가 보여주는 것은 ‘저 사람은 좀 특이하게 산다’는 인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