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 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시도, 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문래창작촌은 십여년 전부터 공업지대의 빈 구석을 차고 들어온 예술인들이 자발적인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곳이다. 삭막한 철강단지에 터를 잡은 예술인들은 오랜 시간 문래와 끈끈한 인연을 맺으며 마을을 둘러싼 변화를 기록해왔다. 그 기록의 결과물을 꺼내 보여주는 문래창작촌 예술인 예술제 {이웃}이 10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문래의 곳곳에서 열릴 계획이다. 이번 예술제는 문래의 예술인이 주체적으로 모인 공동체 문래마을예술인회의가 제안했으며, 그 뜻에 공감한 영등포문화재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마련되었다. 재단과 함께 예술제의 밑바탕을 그린 박지원 작가를 만나 문래와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지원 작가가 운영하는 대안예술공간 이포의 옥상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주변 철공소의 쇠 두드리는 소리가 그의 목소리와 섞여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날아왔다.

박지원 작가

Q. 대안예술공간 이포와 함께 문래창작촌에서 어떤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왔는가?

 

나는 문래가 예술인마을이라 불리는 초기 단계에, 사라질 위기의 공간을 기록하러 들어온 개인 창작가였다. 미디어 기반의 작업을 하는 작가로 여전히 활동 중이기도 하다. 이웃과 마을 생태계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 주민, 지역 사이의 교류를 만드는 공간 이포를 만들었다. 문래가 예술인마을인 만큼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실험적인 청년 예술인과 함께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자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포는 장소 특정적으로 태어난 공간의 방향성과 운영 방식, 즉 마을 예술을 기반으로 한 매개 공간이다. 공간의 태생을 버리지 못한 지 벌써 십 년이 되었다.

 

 

Q. 공간 네트워크 전시인 예술제 {이웃}을 구성하는 네 가지 공간은 어떤 곳이며, 어떤 전시가 열리는가?

 

이웃은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놓칠 수 없으며 놓쳐서도 안 되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은 문래의 예술인들이 이웃과 관계를 맺고, 문래에서 살아온 앞선 경험을 나누는 시각 예술의 공간 네트워크 전시다. 문래에는 수만 가지의 예술적 재료가 있으며, 예술인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민감한 존재다.

 

이들이 마을의 예술적 대상을 만나 기억, 경험, 상상으로 만든 장소 특정적 작업을 이포에서 만날 수 있다. 예술공간 세이는 예술인이 문래를 자유 주제로 표현하는 자율적 공간으로 구성했다. 독특하고 개성 강한 예술인들이 새로운 호흡을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스페이스 나인은 본래 물성을 주로 다루는 예술 공간이었다. 이곳이 물성과 오래된 시간성을 다룬 작품과 만나면 서로 빛날 것 같아, 다양한 재료로 시간성을 표현하는 예술인의 작업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아지트는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문화 공간이다. 우리가 만난 이웃, 기술인, 소공인, 작가의 작업실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오래된 이발소 등을 사진, 영상 같은 매체로 준비했다. 과거에도 마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사진 예술인들이 꽤 있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새롭게 들어오는 작가들이 앞선 경험과 만나며 서로 교류하길 바란다.

 

이렇게 네 개의 공간이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문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전시의 핵심은 보여주기 방식의 변화다. 신작은 많지 않지만, 새로운 공간의 컨셉에 맞게 작가와 작품을 재배치했다. 한 작가의 작품은 어느 공간에서 누구의 작품 옆에 놓였는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은 생명체처럼 해를 거듭하면서 새로 태어나야 한다. 과거의 작품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전에 없던 차원의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이포에 놓일 작품들은 문래의 패턴(Pattern)을 영상, 페인팅, 사운드 등으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모두 다른 예술적 상상력으로 문래를 아카이빙하는 셈이다.

네트워크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문래의 기록들

Q. 네트워크 전시인 {이웃}은 또 다른 네트워크를 낳을 것이다. 문래창작촌의 작가이자 공간 운영자로서, 이곳에 어떤 사람이 더해지길 원하는가?

 

작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예술 장르의 매체를 바라보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시선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 교류와 만남의 장이 열리면, 마을에서 세계로 열리는 길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공공의 정책과 기관이 문래와 만나면서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다. 예술인들이 문래에서 겪은 이웃과의 만남, 지지고, 볶고, 싸우고, 웃고 울었던 성숙의 시간이 있었기에 공공 정책을 적절한 시기에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책이 움직이는 것도 십여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Q. 단번에 움직일 수 없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과거에는 예술인이 수혜자 혹은 동원의 대상, 사업의 정책적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업의 주체다. 마을의 예술인들이 예술을 매개로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이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Q. 지금까지 문래에서 어떤 이웃을 만나왔는가?

 

별의별 이웃들을 다 만나봤지만, 나는 주로 공장 사장님들을 더 좋아한다. 내 평생에 마을을 이렇게 진하게 느껴본 적은 처음이다. 힘들게 하는 이들도 많았고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하려 한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완전한 행복감을 느꼈다. 작가, 이웃, 작업의 내용으로 손님을 맞는 일은 내게 큰 기쁨이다.

 

 

Q. {이웃}은 지금 문래의 행보를 보여주는 전시다. 작가가 생각하는 문래의 과거, 현재, 미래는?

 

과거는, 멋모르던 과거의 일이 년이 정말 좋았다. 술집 하나 없고, 이웃 작가들 작업실을 전전하며 밥 나눠 먹고, 골목길에 자기 작업들 내놓고, 팔지도 않고 서로 교환하고 놀았던 날것의 과거였다. 자율공동체처럼 예술인 스스로가 만드는 활력이 참 좋았다.

 

현재는, 공공 정책과 외부의 관심 등 예술인 마을을 둘러싼 주변의 변수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마을이 변했다. 건물주는 예술인이나 소상공인, 기술자 대신 술집 같은 유흥시설만 받으려 한다. 문래에 오래 살던 이들이 마을을 정리하고, 빚으로 공간을 운영하던 이들이 문을 닫는다. 그게 젠트리피케이션이고, 문래의 현재다. 문래가 관광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도 있다. 이포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런 변화와 위기에 대응하고자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전시를 해왔고, {이웃} 역시 같은 맥락의 움직임이다. 물론 마을예술인을 위한 지원 체계를 선회 시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미래에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마을의 변화,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웃의 고통을 지속해서 돌봐야 한다. 어느 날 눈 떠보면 십여 년간 형님 동생 하던 공장 사장님이 사라진다. 그런 변화를 극복해야 한다. 예술가는 예술로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불안정한 창작 활동의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예술로 먹고 살 수 있는 문래가 되길 바란다. 대관료를 받지 않는 이포도 올해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월세 걱정이 없지만, 그 전에는 참 어려웠다. 예술가가 공공에 기여하는 가치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소공인들 또한 과거와 달리 정교하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소공인, 예술가, 국가의 올바른 정책이 협동해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송기연 작가의 작품. 문래의 예술인들이 원하는 이웃의 모습이 담겨있다

Q. 예술인마을이 관객들, 그리고 문래의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길 바라는가?

 

이렇게 남아있는 공간이 전국에 얼마 없다. 관객에게 바라건대 이 마을에 예술인들이 사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의 예술 활동을 통해 문래를 새롭고 가치 있게 보아주길 희망한다. 예술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가치를 생산해내는 일어야 한다. 그게 예술가가 세상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로 마을의 가치를 더 높여야, 마을이 당면한 위태로운 삶의 조건들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 그렇기에 가치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면 둥지를 내몰리고 쫓겨나는 험악한 꼴을 당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사실 마을도 어렵고, 이웃도 어렵고, 사람도 힘들다. 하지만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다정한 게 이웃이다. 예술제 {이웃}이 작가에게는 이웃 만들기의 경험과 실천을, 관객에게는 예술인마을이란 장소와 소중한 예술적 경험을 선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